
'성대를 보는 순간 달라지는 디렉팅.'

데뷔 쇼케이스와 앨범 녹음 마무리를 앞둔 한 보컬과 함께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평소 고음을 시원하게 소화해 '노래 잘하는 멤버'로 평가받는 친구였지만, 유독 저음에서는 소리가 허하게 새고 불안정했다.
목 컨디션이 좋지 않은 시기와 겹치면서 그동안은 컨디션의 문제인지 발성 습관의 문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후두 내시경과 성대 진동 검사를 통해 직접 확인한 저음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음이 내려가면서 성대가 벌어지고 후두안의 연골이 틀어지는게 보였다. 화면 속 모습은 내 눈에 마치 얇은 알루미늄 캔을 옆으로 비틀어 찌그러뜨리는 것처럼 보였다. '목이 좋지 않아 저음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여겼던 현상을 발성 습관까지 포함해 다시 볼 근거가 생겼다.
자신의 성대를 직접 본 것은 보컬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말로 설명할 때는 쉽게 체감하지 못했던 발성 습관을 화면으로 확인한 뒤에는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라졌다. 여기에 검사 화면을 바탕으로 한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설명이 더해지면서, 귀로만 듣던 자신의 소리를 몸의 움직임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었다. 훈련의 출발점도 그만큼 구체적이 됐다.
검사 이후 개인 레슨을 시작했다. 이미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오랜 기간 트레이닝을 받아온 보컬이었지만, 나와의 첫 개인 레슨은 새로운 테크닉을 더하는 대신 가성과 저음을 다시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했다.
높은 음역을 능숙하게 소화하는 보컬에게 왜 가성과 저음부터 다시 시작했을까. 실용음악에서 가성은 진성으로 내기 어려운 높은 음을 대신하는 소리에 그치지 않는다. 진성과 가성을 오가며 음색과 질감을 바꾸는 것 자체가 중요한 표현 방식이다. 최근 대중음악에서는 가볍게 말하거나 흥얼거리는 듯한 보컬의 질감도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이른바 '베드룸 사운드(Bedroom sound)'가 익숙해지면서 힘 있게 고음을 쏘아 올리는 것과는 또 다른 방향의 보컬 매력도 중요해졌다. 가성을 얼마나 세련되고 매력적인 음색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도 그중 하나다.

또 하나 눈여겨본 것은 고음과 중·저음의 관계였다. 보컬을 지도하다 보면 고음의 결과는 상당히 좋은데 중·저음에서는 다른 발성 패턴이 개입하는 경우가 있다. 이 보컬 역시 저음과 중음은 불안정했지만 고음에서는 오히려 좋은 소리의 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가 두드러지는 저음만 반복하기보다 이미 잘 만들어지고 있는 고음의 감각을 기준으로 중음과 저음으로 거슬러 내려오는 방식을 사용했다. 고음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의 감각을 유지하면서 음역을 낮춰가자 저음에서 불필요하게 힘을 쓰던 패턴이 줄고 전체적인 소리도 한결 정돈됐다. 발성은 반드시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만 만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잘되는 음역이 있다면 그곳에서 답을 찾아 반대 방향으로 연결해볼 수도 있다.
여기서 기본 발성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실용음악은 언제나 정갈하고 반듯한 소리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거칠게 긁기도 하고, 숨을 많이 섞기도 하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소리를 왜곡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느냐'만이 아니라 필요할 때 선택해서 쓰고, 다시 편안한 소리로 돌아올 수 있느냐이다. 이를 위해 기본 발성이 하나의 디폴트값으로 필요하다. 기본은 표현을 제한하는 규칙이 아니라, 표현의 선택지를 넓히는 기반이다.
이날의 경험은 '목 상태'와 '발성 습관'을 같은 문제로 묶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목소리를 직업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현재 성대가 어떤 상태인지, 반복되는 문제가 컨디션 때문인지 발성 습관과 관련되어 있는지 구분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병원과 트레이닝이 서로 다른 정보를 제공한다.
이비인후과에서는 검사 장비를 통해 성대의 의학적 상태를 확인한다. 보컬 트레이닝에서는 실제 소리를 들으며 음역과 발성 패턴, 노래할 때의 습관을 다룬다. 병원에서 성대를 본다고 노래 습관이 저절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트레이너가 소리를 오래 들었다고 성대의 의학적 상태까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두 영역의 역할을 구분하는 것이 직업 보컬의 목소리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목 관리에는 새로운 비법보다 이미 알고 있는 기본이 많다.
충분한 수면과 수분 섭취, 과도하게 사용하는 발성법 수정, 노래시작전 워밍업과 자기전 워밍다운, 공연이나 녹음을 앞두고 음성 사용량을 조절하는 것 등이다. 너무 당연해서 쉽게 지나치는 것들이지만, 직업적으로 목소리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그 기본을 꾸준히 지키는 것 자체가 관리다.
보컬 트레이닝에서는 자신의 소리를 잘 듣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목소리를 업으로 삼아 오랫동안 무대에 서야 한다면 듣는 것만큼 그 소리가 자신의 몸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 좋은 소리를 만드는 기술과 그 소리를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관리는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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