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느 계약 분쟁과 같이 화장품 위탁생산 분쟁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당사자들은 서로 전혀 다른 계약을 기억한다. 발주자는 "배양액을 넣기로 했다"고 하고, 제조사는 "그런 말은 들은 적 없다"고 한다. 물론 법원은 그 사이에서 문서를 가장 중요시한다.
발주자는 특정 배양액이 제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점에 대해 제품명이 배양액을 연상시키고 계약 이후 관련 이메일과 문자도 오갔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계약서에 배양액 첨가 여부와 함유량이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고 그 교신이 모두 계약 체결 이후의 것이라는 점을 들어 약정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다른 사건에서 유사한 사실관계로 발주자가 원고가 되어 제기한 사건에서도 결론은 다르지 않았다. 법원은 그가 화장품 유통 경험이 있는 전문 사업자라는 점, 정작 다른 업체와는 배양액과 그 비율을 명시한 계약을 체결한 점을 근거로 기망과 착오를 모두 배척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전문 사업자'라는 평가다. 인플루언서라 해도 이미 상품을 판매해 본 경험이 있다면 법정에서는 소비자가 아니라 사업자로 취급된다. 스스로 확인했어야 할 사항을 확인하지 않은 책임이 본인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문서가 없으면 계약 자체가 없는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구두 계약도 인정될 수 있으나 입증이 어려울 뿐더러 이와 같은 상거래에서는 더욱 인정되기 어렵다). 어느 발주자는 내용증명까지 보내 샘플 제작을 요청했지만, 법원은 그 문서에 화장품의 구체적인 내용과 제조방법, 가격이 없다는 이유로 계약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본인이 작성한 메모와 상담 지침서는 상대방 확인이 없어 증거가 되지 못했다. 요식행위처럼 보이는 발주서 한 장이 실제로는 청구권의 근거였던 셈이다. 같은 사건에서 법원은 기본계약 자체가 수년 전 이미 종료되었다고도 보았다. 계약기간과 자동연장, 종료 사유를 적어 두지 않으면 계약이 살아 있는지조차 다투게 된다.

상대방을 잘못 아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형 제조사의 이름이 오갔다고 해서 그 공장과 계약한 것은 아니다. 한 사건에서는 중간 회사가 따로 제조사와 OEM 계약을 맺어 납품한 구조였고, 법원은 계약에 관여한 사람이 실제 제조사의 대리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공장에는 한 푼도 청구하지 못했다. 중간 유통사가 자력이 없으면 사실상 회수할 곳이 사라진다. 대형 제조사의 이름이 발주자와 체결한 계약서의 당사자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단지 그 이름이 오갔다는 이유로 안심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발주는 서면으로 하고, 성분과 함량은 수치로 적고, 확정 샘플은 잘 보관해 두는 것이 좋다. 계약의 끝을 적어 두는 것도 중요하이다. 계약기간과 종료 사유가 비어 있으면, 분쟁이 생겼을 때 계약이 아직 유효한지부터 다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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