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맨’ 사촌서 독립선언...슈퍼 히어로 파워는 부족

DC를 대표하는 여성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슈퍼걸이 새로운 DC유니버스 영화의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1959년 코믹스에 처음 등장한 슈퍼걸은 1984년 영화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방영된 TV 시리즈를 통해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2023년 ‘플래시’에서는 흑발 숏컷과 수트 차림으로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난 모습을 선보였고, 2026년 ‘슈퍼걸’은 원작 캐릭터를 바탕으로 동시대적인 여성 히어로를 그려낸다.
고향 크립톤 행성의 멸망 이후 지구에서 살아가는 카라 조엘(밀리 알콕)은 사촌인 슈퍼맨의 염려에도 지구에 적응하지 못한 채 은하계를 떠돌며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주 해적단에게 부모를 잃은 소녀 리사(리브 이들리)를 만나 그녀를 돕기로 결심한다. 여기에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현상금 사냥꾼 로보(제이슨 모모아)까지 합류하면서 세 사람은 우주 해적단에 맞선다.

지난해 개봉한 ‘슈퍼맨’ 마지막 장면에서 술에 취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슈퍼걸이 1년 만에 솔로 무비의 주인공이 됐다. DC 코믹스 ‘슈퍼걸: 우먼 오브 투모로우’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고향을 잃은 상실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안고 살아가는 카라가 한 소녀를 돕는 여정을 통해 다시 슈퍼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두 여성이 폭력적인 남성 집단에 맞서고, 복수와 힘의 올바른 사용을 함께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주제의식도 가볍지 않다.
DC유니버스의 슈퍼걸을 맡은 배우는 호주 출신의 밀리 알콕이다.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 프리퀄인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서 주인공 라에니라 타르가리엔의 어린 시절을 맡아 전 세계에 얼굴을 알렸다. 이 역할로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여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DC 슈퍼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얼굴이 된 밀리 알콕은 기존 TV 시리즈의 밝고 낙천적인 슈퍼걸보다 상처와 방황, 반항기를 품은 젊은 히어로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슈퍼걸’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DC 캐릭터는 로보다. 굵은 사슬을 무기로 쓰고 폭주족처럼 오토바이를 타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제이슨 모모아가 원작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다만 아쿠아맨에 이어 또 다른 DC 대표 캐릭터를 연기해 관객의 몰입을 다소 방해한다. 배우 역시 아쿠아맨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남아 있는 탓에 로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불리하게 작용한다.
DC 유니버스의 두 번째 영화 ‘슈퍼걸’은 시대에 걸맞은 캐스팅과 주제의식을 갖췄지만 이를 서사적으로 확장하려는 야심은 크지 않다. 카라와 리사가 힘을 합쳐 우주 해적에 맞선다는 큰 줄기 외에 서사를 확장하는 에피소드가 부족해 전개가 단조롭게 반복된다. 초반에는 새로운 세대의 히어로처럼 보였던 카라는 고민을 거듭할수록 익숙한 슈퍼히어로 공식으로 회귀하고, 우주해적단 수장 역시 탐욕과 잔혹함으로 채워진 절대 악에 머물러 입체적인 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액션 연출 역시 CG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장면 전환도 매끄럽지 못해 완성도를 뚝 떨어뜨린다.

연출은 ‘아이, 토냐’(2018)와 디즈니 실사 영화 ‘크루엘라’(2021)를 만든 크레이그 질레스피 감독이 맡았다. 전작에서 강점을 보여준 인물의 심리 묘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카라에게도 이어진다. 하지만 영화를 지배하는 은하계의 분위기와 외계 캐릭터들은 제작자 제임스 건의 특유의 색채가 지나치게 드러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연출자의 개성과 새롭게 출발하는 ‘슈퍼맨’ 시리즈의 인상을 희석하는 점은 아쉽다.
슈퍼맨과 슈퍼걸을 앞세운 DC유니버스의 출발 전략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세계관의 기반을 구축하고 새로운 DC 영화의 방향성까지 제시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차기작으로는 ‘배트맨’ 시리즈의 빌런 클레이페이스를 주인공으로 한 동명 영화와 제임스 건이 연출하는 ‘슈퍼맨’ 시리즈인 ‘맨 오브 투모로우’가 예정되어 있다. ‘원더우먼’도 개발 중이다. 제임스 건이 이끄는 DC의 성공 여부는 하나의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각 감독의 개성과 장르적 색깔을 얼마나 조화롭게 살려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정유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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