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이 꼬리처럼 긴 잠에서 막 깨어난 표정이다. 짧은 치마를 아랑곳하지 않고 두 다리를 의자 위로 성큼 올린다. 텅빈 허공을 물끄레 쳐다보다 이름을 부르면 냉큼 시선을 맞춘다.
"최강희씨"
최강희는 고양이를 꿈꾼다. 언젠가 연인을 만나면 고양이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높은 곳을 좋아하고, 무리짓지 않고, 좀 더 무심하며, 우아한...
그런 그녀가 '내사랑'(감독 이한, 제작 오죤필름)을 만났다. 작품 속에서 최강희는 지하철에 털썩 주저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1년 동안 사귀어 온 남자친구에게 아직은 자격미달이라며 테스트를 실시한다. 미래를 그리는 그림일기도 쓴다.
언뜻 최강희 자신과 닮았다.
"정말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다만 난 상상으로만 그치는 것을 훨씬 자유롭게 표현하는 역이죠. 그래서 정말 편하게 연기했어요."
'내사랑'이 서로 다른 네 커플의 사랑을 담은 영화라 최강희의 비중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액자 속의 인물처럼 과거에만 존재하는 인물이다. '달콤살벌한 연인' 이후 1년이 지난 뒤 만난 작품인데 등장도 적고, 캐릭터도 비슷하다.
하지만 최강희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조금 나와도 존재감이 있으면 돼요. 1년 동안 공백기가 있었지만 아쉬움은 없어요. 조급해 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어, 벌써 1년이 지났네. 한 게 없네' 이런 식이에요."
1년 동안 쉬면서 최강희는 나름대로 바빴다. 쇼핑몰을 하면서 박스를 싸는데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그 다음에는 포토샵에 빠졌다. 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최강희는 한 번 빠지면 푹 빠졌다가 또 금방 빠져나온다고 말했다.
사실 최강희는 '달콤살벌한 연인'과 '내사랑' 사이 몇 개의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사정에 못하게 됐을 때 한번쯤은 남탓을 하련만 최강희는 딱히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사실 불만을 스스로 정리하는 편이에요. 그게 문제죠. 그것 때문에 나를 하찮게 생각하는 '거지병'에도 걸렸어요. 말로는 남을 탓하더라도 집에 와서는 모두 내탓이야라고 머리를 싸매죠."
데뷔한 지 벌써 11년. 긴 시간을 보냈지만 최강희는 안티가 딱히 없다. 좋은 의미만은 아니다. 그녀 역시 잘 알고 있다.
"안티가 별로 없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죠. 예쁘고 유명하면 안티가 많은 법이잖아요. 남자애들이 좋아하면 안티가 많고. 내 팬들이 많다고 하는데 다 날 닮아서 그런지 너무 조용해서 눈에 보이지가 않아요."
'4차원 소녀'라고 불리던 최강희는 요즘은 '날개없는 천사'라고 불린다. 골수기증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헌혈도 많이 해서 30번 이상 헌혈한 사람에게 주는 헌혈유공장 은장도 받았다.
그 때문에 요즘 최강희의 머리는 복잡하다.
헌혈이야 어릴 적부터 취미였다. 헌혈을 한 뒤 물을 마시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아서 그 때마다 회개하는 게 일과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착한 일'이 되어버렸다.
원래 많이 가지는 걸 싫어한다. 오르골과 피규어만 빼고. 그래서 주는 걸 좋아한다. 이건 그냥 최강희의 성향이다. 그런데 어느순간 사람들이 이상하다고만 하던 최강희를 착하다고만 부른다.
"착하다 착하다 하는 사람이 어느순간 실수를 하면 막 몰아세우잖아요. 나도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요. 난 착한 생각도 가끔 하지만 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같지만 최강희도 결국 땅에 발을 디딘 사람이다. 그녀 역시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강희는 말한다.
"웃는 얼굴이 예뻐도 좋아하는 사람이 무표정한 얼굴이 예쁘다고 하면 그렇게 하기 마련이잖아요. 나에겐 팬들이 좋아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들이 나를 이상하다,착하다,라고 하면 좀 더 생각하게 되겠죠."

최강희는 낯을 많이 가린다. 편가르기도 좋아한다. 한 번 내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싫은 소리를 들어도 도리도리한다. 단지 마음속으로 "좋다"라고 하기가 너무 드물다. 그래서 "좋다"라는 사람을 만나기란 개기일식처럼 기적 같은 순간이다.
그녀는 '내사랑'에서 감우성을 만난게 기적같은 순간이었다.
"감을 마음 속으로 지목했어요. "좋다". 그래서 '내사랑'이 행복했죠. 어려운 순간은 너무 짧게 촬영이 끝났다는 거. 이제 사람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올해 나이 서른. 최강희는 더이상 '4차원'도, 더군다나 '소녀'도 아니다. 어리다고 용서받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배우로서도 한 단계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예전에는 스킨, 로션도 안했어요. 전 자연정화를 믿는다고 외치고 다녔죠.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크림까지 바르고 자는 내가 이상해요."
"내가 더이상 보여줄게 없을 때 대중이 나를 지겹다고 말하면 아예 이 길을 떠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거, 마음이 가는 걸 하고 싶어요."
지구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최강희는 돌아오는 봄부터는 그동안 타고 다녔던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탈 생각이다. 지구에 나쁘지만 편해서 사용했던 것들도 차츰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최강희는 최강희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느리지만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야, 이제 골인이야. 이런게 아니고. 컨디션이 좋으면 달릴 수도 있죠. 지금은 달리고 싶을 때라 내년에는 더 많은 걸 하고 싶어요."
아마도 최강희는 지구를 너무 사랑해서 날개를 잃어버린 외계 고양이인 것 같다. 그런 그녀가 달리는 모습은 '내사랑'이 개봉하는 19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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