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①에 이어서)
-철수의 과거도 궁금하다. 박사가 죽고 난 이후 몇 달 간 철수는 어떻게 살아왔나?
▶철수를 만든 박사가 죽은 뒤에 3~4개월이 있다가 순이네가 이사를 왔다. 처음 박사가 죽는 장면에서 자물쇠 세 개 중 마지막 자물쇠를 열다가 죽잖나. 철수는 힘으로 그걸 밀고 나갔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마지막 자물쇠만 휘어 있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밖에 나가지 못했는데 냄새가 이상하고 며칠이 지나니 파리가 들끓어서 내다봤더니 사람이 죽어 있는 것이다. 철수는 도망 나온 순간 난생 처음으로 그 방을 벗어났다.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밤이면 방으로 돌아오고, 산속을 다니고 멧돼지도 만나고 정씨네 집도 보고.
철수는 사람들을 다 신이라고 생각했다. 학대받은 기억 때문에 너무 무서워하는 것이다. 순이가 이사 온 날도 나가 있다가 와보니 뭔가 이상한 것이다. 경계를 하면서 집을 살펴보다가 순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철수를 두려워하지만 사실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철수였겠다.
▶그렇다. 예전에 비둘기를 한 마리 키운 적이 있는데 나를 경계하면서도 새장을 열어 두면 날아갔다가 꼭 다시 집으로 돌아오더라. 이곳이 집이라는 걸 자기도 아는 것이다. 철수도 집이니까 그 방으로 계속 돌아왔다. 순이와 순이 엄마(장영남 분)가 빨래를 널고 있을 때도 그래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아마 '쟤네들 뭐하는 거지?'하고 생각했을 것 같다.
-순이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냉담한 성격이다. 순이의 성격의 원천은?
▶순이는 순자(김향기 분) 만큼이나 밝은 아이였다. 아빠와 엄마가 순이를 정말 예뻐했다. 그러다가 순이가 폐병에 걸리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굉장히 부자였는 데 병원비며 다른 비용들이 계속 들어가면서 학교도 못 다니게 되고, 아빠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가족의 불행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신이 우울해 할 수록 가족들은 더 신경쓰고 잘해주니까 그런 가족도 싫은 것이다. 불행을 이끄는 나에게 왜 잘해 주느냐는 심정이다. 그런 안 좋은 죄의식이 싹트고 있는데 아빠가 빚을 지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빠를 자기가 죽였다는 생각에 마음을 닫게 됐다. 그러면서 결벽증도 생겼다.

-순이는 결국 또 한 번 철수를 두고 현실로 돌아간다. 철수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 것은 있는데 밝힐 수는 없다.(웃음) 관객들의 몫이 아닐까. 관객들이 살아온 경험에 의해서 판단을 내리실 것 같다. 순이가 떠났다는 걸 눈치 채고 떠날 수도 있고 여전히 기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다 맞는 결말이다.
-영화의 결말이 지금 극장 버전과 박보영으로 변하는 장면으로 두 가지를 촬영했다고 들었다.
▶박보영 버전을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너무나 바란다. 극장에 걸릴 수 있는 버전이 생기면 좋은데 안된다면 DVD에라도 들어갔으면 좋겠다.
지금 버전이 아쉽지는 않다. 두 가지 버전이 주는 정서적인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할머니는 굉장히 여성적인, 다분히 순이의 입장에서의 마음이다. 내가 이 모습을 하고 이렇게 늙었는데도 나를 기다려주고 예쁘다고 해주다니. 박보영이 나오는 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둘 만의 장면이 되는 것 같다. 예전의 예뻤던 마음이 만나는 것이다.
-지난 부산영화제에서 원래는 '늑대소녀'였다고 했다. 늑대소녀는 어떤 분위기의 영화였나?
▶전혀 달랐다. '늑대소녀'였을 때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늑대인간이 아니라 야생에서 자라서 사회성이 발달되지 않은 소녀의 이야기였다. 너무 잔인해서 제작은 되지 못했다. 아마 '늑대소녀'였다면 박보영을 캐스팅 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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