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해 가을,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개들의 전쟁'의 김대명을 만났었다. 당시 포털사이트에 프로필도 없었던 김대명은 "물음표가 남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인상적인 말을 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1년 만에 만난 김대명, 정말로 물음표가 뜰 수밖에 없는 역할로 돌아왔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주인공 하정우와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던 테러범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김대명이었던 것.
자신의 출연작을 내 영화라 밝힐 수 없었던 슬픈 사연의 '더 테러 라이브', 영화가 500만 관객을 넘기고 나서야 "내가 바로 테러범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만나자마자 나온 말은 "참 답답했겠다"는 것이었다. 엔딩크레딧에는 테러범 목소리로 김대명이라는 이름이 당당하게 올라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자신이 테러범 목소리를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릴 수는 없었다. 관객들 사이에서는 테러범의 목소리를 두고 송새벽과 신하균이 거론되기도 했다.
"말하고 싶긴 했죠. 저도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너무 결정적인 스포일러여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크레딧을 보통 끝까지는 안보잖아요. 송새벽 선배님이나 신하균 선배님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고요. 혹시 제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어요."

테러범의 목소리를 연기한 김대명, 전화하는 뒷모습이나 손 정도는 화면에 나올 법도 한데 그는 철저히 목소리만 출연했다. 심지어 녹음도 촬영을 모두 마친 후에 진행했다. 하정우의 리액션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연기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가 녹음을 할 때가 이미 촬영을 마치고 1차 편집본이 나온 상태였어요. 하고 싶은 욕심은 있었는데 부담도 있었어요. 일단 분량이 너무 많은 거예요!(웃음). 지금까지 영화에서 이렇게 출연한 배우는 없었잖아요. 보통 뒷모습이라도 나오고 하관이라고 나오는데 이건 철저하게 스튜디오에서만 하니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개들의 전쟁' 때와는 분명히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김대명의 목소리를 두고 관객들 사이에서도 평이 나뉘었다. 누가 들어도 50대의 목소리는 아니라서 후반의 반전을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는 반응도 있었고, 오히려 어른 같기도 하고 아이 같기도 한 모호함이 좋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처음부터 감독님과 반전을 생각하지 말자고 했어요. 반전을 노린 것이었다면 아예 50대 배우를 캐스팅 했겠죠. 그런데 그렇게 하는 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전화 목소리도 여러 가지 버전이 존재했다. 김대명이 보여준 시나리오에는 분단위로 만들어진 주인공의 감정 그래프와 함께 메모들이 가득했다. 김병우 감독의 꼼꼼한 연출과 김대명의 철저한 준비가 시나리오에서 묻어났다.
"처음에 감독님을 만났을 때 보여주신 영상이 MBC '100분토론'이었어요. 광우병에 대한 토론이었는데 시청자 연결하는 코너에서 어떤 분이 굉장히 진지하게 '쇠고기 삶아 먹으면 되지 않냐'하는데 패널들이 다들 당황해서 굉장히 기이한 긴장감이 생기는 거예요. 감독님이 생각한 모티프가 바로 이 장면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굉장히 어려가지 버전이 있었어요. 더 어린아이 같은 것도 있었고, 더 나이든 것 같은 것도 있었고요. 그걸 맞추기 위해 2달 동안 계속 논의를 했어요."

'개들의 전쟁'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을 내놓은 김대명, 1년 사이에 달라진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는 "여전한 것 같다"고 겸손하게 답했지만 분명 영화계에서 그를 보는 시선을 달라졌다. 김대명을 보고 "이 배우가 그 사람이냐?"라고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 물음표가 남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은 두려울 때도 있어요. 어느 순간 벽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벽에 부딪혔을 때 부수고 나갈 뭔가가 있겠지만 앞으로 달려가는 지금도 그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제가 가진 걸 다 알아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아직까지는 물음표를 찍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을 고민해봐야죠."
물음표를 계속 남길 수 있을지 두렵다면 아예 느낌표가 찍히는 배우는 어떤가. 김대명에게 물었다. 그는 "그것도 괜찮은데요? 물음표에서 느낌표로!"라고 반겼다. 지금은 다음이 더욱 궁금해지는 신예지만 언젠가는 '김대명'하면 '아!'하고 반색하게 되는 배우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 날이 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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