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철수 감독의 유작인 '녹색의자 2013-러브 컨셉츄얼리(이하 '녹색의자')'가 부산국제영화제 박철수 추모전을 통해 관객에게 첫 선을 보였다. 고인은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영화의 두 배우 진혜경(30)과 김도성(19)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녹색의자'에서 문희를 연기한 진혜경과 주원 역을 맡은 김도성을 부산영화제가 한창인 영화의 전당에서 만났다. 생방송을 막 마치고 온 두사람은 여전히 긴장감을 안고 있었다. 고인에 대한 믿음으로 영화를 시작했다는 진혜경과 김도성, 이제는 영화 알리기를 책임지며 그 믿음에 보답하고 있다.
고인의 비보를 들은 것은 지난 2월. 영화의 사운드 작업만 남아있는 상황에서 소식을 접했던 두 배우는 슬픔과 동시에 걱정을 함께 안게 됐다. 감독의 유작인 '녹색의자'가 과연 개봉할 수 있을지, 감독의 빈자리를 자신들이 채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탓이다.
"돌아가신 날도 저와 안부 문자를 주고받았어요. 정말 믿을 수가 없었어요. 연락을 받자마자 부랴부랴 달려갔죠. 그 때는 영화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나중에야 영화는 어떻게 될까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께서 굉장히 애착을 보이셨던 영화였어요. 감독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 저희 둘이 이걸 전할 수 있을까,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책임감이 무거웠어요."(진혜경)

고등학교 3학년 겨울, 자신의 첫 영화 '녹색의자'를 촬영한 김도성은 박철수 감독이 유독 챙겼던 배우다. 그는 촬영 중 박 감독의 배려에 눈물을 흘릴 뻔 했던 사연을 밝히기도 했다.
"감독님이 무뚝뚝 하시면서도 몰래 챙겨주시고 몰래 사랑을 주셨던 것 같아요. 촬영 첫 날 제가 긴장도 하고 실수도 많이 해서 굉장히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멀리서 '주원아, 화이팅!'하고 외치시는 거예요. 눈물이 왈칵 나려고 하는데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몰래 밥 먹고 음료수 사먹으라고 동전도 챙겨주시곤 했어요."(김도성)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얘기를 못했어요. 사실 문희는 제가 많이 매달려서 캐스팅 된 것이었는데 감독님은 2% 부족하다고 하시면서도 끝까지 저를 믿어주셨어요. 감독님이 찍고 싶게끔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얘기하는데 목이 매여서 감사하다는 말을 못했어요. 끝나고 나서 선물과 함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제가 아버지가 안계시니까 감독님을 아버지로 모시겠다고 전하고 싶었는데." (진혜경)
지금은 박철수 감독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두 배우 모두 '녹색의자'의 출연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30대 초반의 미술학원 선생님과 19살 제자의 사랑을 그린 '녹색의자'는 농염한 정사신도 묘사되어 있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정사신을 찍어 봤다는 진혜경은 물론이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김도성도 부담이 상당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고3이었어요. 제주도에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이건 못하겠다' 싶어서 포기했어요. 그때 영화 스태프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함께 하던 스태프들이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때 딱 다시 할 수 없겠냐고 연락을 받았어요. 정사신이요? 솔직히 처음에는 '땡잡았다' 했어요(웃음). 막상 촬영하려니까 모든 것이 다 떨렸어요. 털이 뽑힌 닭처럼. 힘들었고 스트레스도 엄청났어요. 잠도 못자고. 찍고 나니까 진짜 값진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김도성)
"저도 그런 쪽으로는 숙맥이거든요. 클럽도 안가보고 미팅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도성이를 만나자마자 '너 혹시 경험 있니?'라고 물어봤어요. 나이는 어리지만 리드를 받으면 어떨까 싶었죠(웃음). 연애 경험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제가 리드해야 했죠. 힘들었어요. 저도 정사신은 처음이었고 도성이도 얼어 있었고요. 달달 떠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괜히 '누나인데 어때?'하면서 분위기를 풀려고 했어요."(진혜경)

그렇게 고생하며 찍은 '녹색의자',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통해 처음으로 극장에서 만나게 됐다.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두 사람, 그래도 부산영화제에 배우 자격으로 참가하게 된 것은 처음 느끼는 기쁨이었다.
"영화를 큰 화면으로 처음 봤는데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때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는데 지금 보니까 왜 이렇게 어색하고 예쁘지도 않은지. 아쉬워요."(진혜경)
"저는 처음 봤을 때부터 약간 창피한 게 있었어요. 워낙 연기가 어색해서 주변사람들에게 떳떳하지도 못했고, 저에게도 실망했었는데 GV를 하고 하니까 뿌듯한 게 더 많았어요. 부산영화제에 와서 느낀 건 딱 세 가지예요. 신기하고 설레고 두렵기도 하고요. 지금은 엄마에게 이렇게 효도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해요. 숙제도 많아졌지만요."(김도성)
이제 막 필모그라피를 쌓아가고 있는 진혜경과 김도성,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진혜경은 '58년 개띠 노총각 김감독 서울 위드 러브'를 촬영하고 있단다. 김도성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서울에서 영화 시사회와 홍보에 나선다.
"영화만 봐도 제가 서툰 걸 아실 거예요. 욕을 하셔도 괜찮으니 가능성을 봐주시면 좋겠어요.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김도성)
"이 영화를 보실 때 노출에 대한 기대로 보실까봐 걱정이 들었어요. 그런 시점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봐주시면 좋겠어요. 감독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말이죠. 에로티시즘의 완결편이 아니라 로맨틱 성장드라마라고 생각해요. 어느 순간 '내가 전에는 이런 삶을 원하지 않았는데'라고 느낄 때가 있잖아요? 그런 걸 돌아보고 떠올릴 수 있는 영화였으면 해요."(진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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