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신세계'(2013)의 이중구는 박성웅(41)의 터닝포인트다. 187cm의 위풍당당한 체구, 가면같은 얼굴로 서늘한 남성미를 뿜던 조직의 2인자 박성웅의 존재감은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넘버3'(1997)의 단역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지 무려 17년째. 그간 드라마 '태왕사신기'(2007)가 10년 가까이 대표작이었던 배우가 뒤늦게 물을 만났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박성웅은 아직 절반도 채 지나지 않은 2014년에만 무려 4편의 영화를 내놨다. '찌라시:위험한 소문'에선 냉혹한 해결사로, '역린'에서는 왕을 보필하는 충신 홍국영으로, '하이힐'에선 패기 넘치는 검사로 나왔다. 그리고 11일 개봉을 앞둔 '황제를 위하여'(감독 박상준)에서는 폭력조직 보스 정상하로 분했다. 프로필 상 이중구와 가장 비슷한 역할을 다시 맡았지만 박성웅은 여유로웠다.
햇살이 따갑게 내려쬐기 시작한 6월의 삼청동. 일단 이중구 식으로 한 말씀 요청했다. 박성웅는 기꺼이 응했다.
"인터뷰하기 좋은 날씨네…. 인터뷰는 해 드릴게."
-요즘 대세다. 실감이 나나.
▶처음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너 같은 얼굴은 안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장동건 원빈 그런 친구들이 한창 나오던 때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만 배우 하는 것 아니니까 하면서 내 갈 길 갔다. 요즘은 '40대 남자배우 전성시대'라고 하면서 '우는 남자' 장동건, '하이힐' 차승원에 나를 넣어주더라. 이게 꿈이야 생시야. 아무 생각 없이 재지 않고 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또 다른 후배들이 날 보면서 연기를 하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다.
-터닝 포인트는 누가 뭐래도 '신세계'다. 중구 홀릭도 상당하더라. 그 전엔 대표작이 '태왕사신기'였는데. 그 당시에도 자신만만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배역이랑 같이 가는 거다. '태왕사신기'에서 맡았던 주무치가 소극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좋아하는 달비 앞에서만 머뭇머뭇 하는 거지. 어렵지는 않았다. 왜냐면 좋아하는 여자니까.(웃음) (박성웅은 '태왕사신기'에서 달비 역을 맡았던 신은정과 이듬해인 2008년 결혼했다.) 그것을 넘을 수 있는 작품을 만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또 '신세계'를 뛰어넘을 작품이 있을까' 한다. 또 있을 거다. '신세계'는 작년 12월 이후 이상하게 폭발적으로 호응이 있더라. 케이블 채널에 '신세계'가 풀리고 난 후가 아닐까. 다행히도 당시 거의 편집이 안 됐다.

-거친 남자의 대명사가 됐다. 영화에서 직접 마구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은 별로 없었는데도.
▶실제로는 비폭력주의자다. 우리 가족만 안 건드린다면야, 나는 무슨 시비를 걸어도 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래야 한다는 걸 배우 하면서 알게 됐다. 이순재 선생님이 방송에서 하신 말씀이 있다. 젊었을 때 사람들이 막 욕을 해도 '감사합니다' 하면서 자리를 뜨셨다더라. 그게 배우의 지혜라고 하셨는데, 뒤늦게 '아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셨구나' 깨달았다. 제 목표야 평생 배우로 살다가 죽는 거니까 계속 그렇게 해야지. 배우 하기 전엔 거칠지 않았냐고? 사람들이 시비를 못 걸었다.(웃음)
-'황제를 위하여'에서 드디어 본격 액션을 선보이는 느낌이다. 액션스쿨 출신의 액션이 제대로 보인다.
▶기분이 남달랐다. 조금 보여드려서 아쉽다. 언젠가 길게 액션하는 작품이 오겠지. 액션스쿨에서 1998년도부터 1년6개월을 배웠다. 이후에도 혼자 트레이닝 하고 그랬다. 이번 작품을 찍으려고 다시 액션스쿨에 가서 훈련을 받는데, 한번 보여줬더니 '선배님 저기서 쉬십시오' 그러더라.(웃음) 그 예전에 나중에 언젠가는 써먹으리라는 생각으로 다니긴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게 16년 전이다. 이렇게 덕을 보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 땐 정말 힘들었다. 군대보다 더 힘들었다. 처음엔 맞는 것밖에 못했다. 한참 피하는 것만 하고, 또 한참을 낙법만 하고 그랬다. 낙법 해보라고 집어던지고 하면 다리 부러지는 줄 알았다.
-이민기와는 퍽 다정해 보이더라. 극중에서도 무한 애정을 쏟는다.
▶민기는 좋은 동생이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무한 사랑이지. 술 먹다가 친해졌다. 주량은 컨디션 마다 다른데, 우리 와이프는 '한 병을 먹어도 안 취하는 게 술을 잘 먹는 것이지 3명을 먹고 취하면 잘 먹는 게 아니다'라고 한다. 물론 남자들은 잘 안 그런다. 민기랑은 항상 만취하게 먹었다.(웃음) 재는 것이 없으니까. 촬영장에서도 민기가 없을 때는 심심하고 그랬다. 알고보면 민기가 상남자다.
-영화가 공개된 뒤엔 이민기와 이태임의 베드신이 화제가 됐다.
▶극장에서 처음 봤다. 찍을 때 없었으니 그러지 않았겠나. 게다가 그때 태임이가 바로 옆자리였다. 얘가 쑥스러워 하지 않을까 괜히 신경이 쓰였다. 몸이 계속 반대쪽으로 가더라. 민기가 '제대로 했다'고 했었는데, 제대로 했더라.
-차기작인 '무뢰한'에서는 본인이 전도연과 베드신이 있다던데. '살인의뢰'에서는 알몸 격투신이 있다고.
▶뭐낙 전도연씨가 베드신 선배라. 이끌어주시는 대로 하려고 한다. 베드신이 처음은 아니다. '백야행' 때 손예진씨와 베드신이 있기는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건 초등학생용이다. (웃음) '살인의뢰'에선 다 벗고 하는 격투신이 있어서 요새 닭고기를 먹고 있다.
-예전엔 비주얼이 별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지만 남성적인 비주얼, 당당한 체구는 큰 강점이기도 하다. 또래 배우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점이기도 하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저희 식구들이 다 크다. 예전 첫 소속사 사장님이 살을 빼라고 빼라고 했는데 못 뺀 거다. 부모님을 만나고 오더니 '아이고 웅아 미안하다' 그러시더라.(웃음) 형은 키가 192cm다. 비주얼은 사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그 때는 좀 촌스러웠다고 할까. 보기 괜찮았던 때는 있어도 느낌은 없었던 거다. 2001년 'KT'라는 영화를 찍을 때 한창 비주얼이 좋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속 빈 강정처럼 겉모습만 번드르 했던 거지. 이마의 삼(三)자 주름이 예전엔 너무 싫었는데 생각이 바뀌더라. 연륜이 싸이니 하나하나 다 배우로서 무기가 되는 것 같다. 물론 비주얼보다는 연기로 변해가야지.

-천천히 꾸준히 지금에 왔다. 어떤 배우를 꿈꾸나.
▶처음부터 주인공만 했다면 지금은 딱 은퇴했을 거다. 저는 꿈이 최민식 형, 황정민 형, 설경구 형처럼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는, 작품을 오래 해도 보여줄 게 더 많은 배우이고 싶다. 믿고 보러 오셨을 때 실망시키지 않는. 또 50대가 되어서도 관리를 잘 해서 섹시한 중년이고픈 마음도 있다. 브래드 피트, 조지 클루니 형님들이 다 저보다 10살, 12살 더 많다. 머리 희끗희끗해도 섹시하지 않나.
-'신세계' 이중구의 여파일까. 줄곧 남성성 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하고 있다. 이미지가 소비된다는 걱정은 안 하나.
▶얼마나 됐다고. 이제 1년 됐다. 상관없다. 이중구랑 똑같이 하려고 해도 그렇게 안 된다. 나도 센 역할만 오니까 걱정은 했다. 이런 이미지로 소진된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두려움은 없다. 어차피 다 다르지 않나. '찌라시'에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군인 출신이었고, '역린'은 어차피 사극이고, '하이힐'은 검사고, '황제를 위하여'는 같은 조폭 보스라고 해도 잘 웃는다. 사투리도 쓰고. 연말엔 코미디도 있다. 그러니 괜찮다. 나중에, 작품으로 보여드릴게!
김현록 rok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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