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옅은 핑크로 물든 화면, 하얀 잠옷을 입고 줄지어 선 소녀들 사이 한 소녀가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불안을 호소한다. 온화한 표정이지만 어딘지 서늘한 냉기가 풍기는 완벽한 미녀가 그녀 앞에 서 있다.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감독 이해영·제작 청년필름 비밀의화원, 이하 '경성학교')의 포스터다. 기묘한 아름다움으로 공포심을 자극하는 한 장의 이미지는 오는 18일 개봉을 앞둔,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영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 비주얼-보는 맛이 남다르다
'경성학교'는 일제 치하인 1938년 외딴 산자락의 여학생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을 다룬다. 흡사 감옥이나 군대를 연상시키는 아름답지만 숨막히는 학교의 소녀들은 우수 학생에 선발되면 도쿄에 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규율에 따른다. '경성학교'를 구상하며 초록 잎이 흐드러진 아름다운 풍경에 놓인 한 소녀가 손에 시뻘건 피를 묻힌 채 서 있는 이미지를 떠올렸다는 이해영 감독은 공들인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꿈꾸던 비주얼을 그려 보였다. 올해 나온 한국 영화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나무로 빽빽한 산길을 오르는 검은 클래식카를 부감으로 잡은 오프닝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음영 짙은 화면 속에서도 천과 목재의 질감까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교실과 기숙사, 부서지는 햇살 사이로 초록 잎과 붉은 꽃잎이 어우러진 숲길, 그리고 말간 소녀들의 꿈결 같은 이미지는 '경성학교' 그 자체다.

# 소녀 박보영 vs 여인 엄지원
10대 여학생 연기가 맞춤옷처럼 들어맞는 외모의 소유자이면서 사랑스러운 매력과 안정적인 연기력을 겸비한 박보영은 '경성학교'에 꼭 맞는 주인공이다. 친구가 건넨 커다란 빨간 사탕을 볼이 톡 튀어나오게 무는 한 장면만으로도 짧은 탄식이 나오게 만드는. 그는 폐병에 걸려 버려지다시피 전학 온 여학생 시즈코 역을 맡았다. 자신과 같은 여학생이 있었다는 이유로 반 아이들에게 외면받던 그녀는 든든한 친구 카나에(박소담 분)에게 마음을 열며 이상한 학교에 조금씩 적응하지만 점점 더 이상한 일을 목격해간다. 박보영은 이 갈 곳 없는 소녀의 낙심, 불안, 공포와 광기를 물 흐르듯 그려내며 뜻밖의 전개를 보이는 극을 단단하게 극을 붙든다.
그 대척점에 있는 이가 엄지원이다. 그녀가 맡은 교장은 미스터리한 학교의 비밀을 쥔 인물. 소녀들의 불안과 달리 늘 확신에 가득한 모습이다. 빈틈없는 매무새로 무장한 엄지원은 여느 악녀나 여전사와는 전혀 다른 카리스마로 극의 전반을 장악한다. 베일 듯 날렵하게 그린 눈썹과 입술선, 흐트러짐 없는 표정은 미술, 분장과 함께 너무 철저해서 숨이 막히는 극의 분위기를 더한다. 일본어 대사도 마찬가지. 3분이면 헤어와 분장을 끝냈다는 전작 '소원'을 생각하면 엄지원의 변신이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 발견! 기대만발 뉴페이스
박보영 외에 아직은 낯선 신인들로 채워진 소녀 군단은 '경성학교'를 더욱 주목하게 한다. 많지 않은 분량에도 시선을 붙드는 젊은 여배우들이 상당하다. 특히 박보영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카나에 역의 박소담은 첫 상업영화 주연작임에도 안정적인 연기와 흡인력으로 눈길을 끈다. 소녀 이미지에 꼭 들어맞는 동양적인 마스크와 가녀린 몸, 힘 있는 목소리가 독특하다. 그녀의 다음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이밖에도 발작을 일으키는 키히라 역 주보비, 박보영과 대립하는 여학생 유카 역 공예지 등도 돋보이는 배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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