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년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문근영, 두말할 나위 없는 연기를 선보인 전혜진, 자상함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보여준 김해숙, 통통 튀는 모습으로 성인 연기로 넘어온 진지희.
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사도'를 빛낸 여인들이다.
16일 개봉하는 '사도'는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이준익 감독은 익히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도세자 이야기를,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 풀었다. 또 영조와 사도세자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다양한 주위 인물들에게 고루 이야기를 심어 영화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사도'의 여인들은 일등공신들이다. 아들을 위해 남편을 버린 혜경궁 역할의 문근영, 사랑하는 아들을 남편에게 죽이라고 말해야만 했던 영빈 역할의 전혜진, 영조 왕위 계승에 큰 힘을 쏟은 대왕대비이며 보위를 이을 사도세자를 끔찍이 아꼈던 인원왕후 역할의 김해숙, 영조가 아끼는 딸이자 세손 보위에 앞장 선 화완옹주 역의 진지희 등등.
'사도'는 뒤주에 갇혀 죽는 하나의 사건으로만 이야기를 끌고 나갔기에 이 여인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었어야만 했다. 배우들은 역사 속 기록이 스크린으로 걸어 나온 듯 더 좋을 수 없이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문근영에게 '사도'란 사실 꽃놀이패가 아니었다. 2006년 '사랑따윈 필요없어' 이후 8년 만에 영화 복귀작이지만 주연도 아니며, 영빈보다도 작은 역할이었다. 하지만 문근영은 어릴 적부터 혜경궁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며 이준익 감독의 '사도'라는 배에 흔쾌히 올라탔다. 어린 정조를 지키기 위해 남편을 버린 혜경궁 역할을 문근영은 그렁그렁한 눈과 단호한 어조로 잘 소화해냈다.
전혜진은 '사도'의 발견이다. 극단 차이무 출신으로 연극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전혜진이지만 영화에선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었다. 이선균의 아내로 오히려 더 알려졌었다. 그랬던 전혜진은 '사도'에서 영빈 역을 맡아 빛을 발했다. 영조의 후궁인 영빈은 사도세자의 친 어머니로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했다. 아들이 보위를 이을 테니 찬란한 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엄한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을 빚자 누구보다 마음을 졸여야 했다. 결국 영빈은 어린 손자만이라도 보전하기 위해 아들을 죽이라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전혜진은 그 엄청난 마음의 갈등을 영화 속에서 차분히 쌓다가 마지막에 폭발시킨다. 전혜진이 문근영과 끌어안고 오열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
김해숙은 영화 속에서 늘 새로운 어머니를 그리려 했다. 이번에는 영조의 양어머니이자 사도를 아끼는 대왕대비 인원왕후 역을 맡았다. 궁궐의 법도를 지키는 카리스마에, 사도세자를 아끼는 자애로운 할머니. 김해숙은 사도세자를 미워하는데까지 이른 영조를 꺾기 위해 왕이 왕 자리를 내놓겠다고 하자 "윤허한다"고 말한다. 김해숙과 영조 역할의 송강호와 맞대결은 진검대결 같은 긴장감마저 감돌게 한다.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빵꾸똥꾸'로 아역 이미지가 짙었던 진지희는 '사도'에서 통통 튀는 매력을 간직한 채 성인 연기자로 가능성을 내보였다. 역사 속 화완옹주는 아버지 영조의 사랑을 무기로 사도세자의 자리를 흔들었던 인물. 진지희는 '사도'에서 사랑받는 막내딸이자 한편으론 아버지와 오빠의 갈등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세손(정조)을 돕는 인물로 재해석했다.
'사도'에는 이 밖에도 영화를 빛낸 여인들이 넘쳐난다. 박명신은 남편에게 총애를 잃은 지 오래지만 그래도 사도세자를 지키려 애쓰는 정성왕후 역할을 맡았다. 시앗(첩)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 안는다지만 그럼에도 후궁인 영빈과 우애를 잃지 않는 속 깊은 중전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정순왕후 역할의 서예지와 내인 문소원 역할의 박소담도 눈에 띈다. 이 빛나는 신예들은 비록 비중은 크지 않지만 한국영화의 미래를 밝힐 기대주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준익 감독은 여느 사극이라면 궁중 여인 암투극으로도 그릴 법한 사도세자 이야기를 각자의 여인들에게 사연을 주면서 중심을 잃지 않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영화가 관객과 만나면 '사도'의 여인들에 대한 상찬이 끊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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