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한국영화는 상반기 아주 어려웠지만 여름 시장을 거쳐 하반기 기사회생했다. 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영화계였지만 올해는 유달리 혹독했다. 특히 가장 눈에 띈 변화는 관객의 보수화가 흥행으로 입증됐다는 것. 2015년 한국영화 10대 뉴스를 정리하며 관객 변화에 대해 같이 짚었다.
6. 韓영화 칸-베를린-베니스 등 3대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무산
올해 한국영화는 칸과 베를린, 베니스 등 이른바 3대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영화가 세계 3대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지 못한 건 최근 한국영화 제작 흐름과 연관됐다.
작가주의 혹은 작가 성향이 짙은 영화 제작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두 차례 초청받았던 임상수 감독이 올해 신작 '나의 절친 악당들'을 한국 투자배급사가 아닌 이십세기폭스와 손잡고 내놓은 건, 현재 한국영화 제작 흐름과도 관련 있다.
투자배급사가 급증해 한국영화 제작 편수도 같이 늘었지만, 갈수록 상업적인 성향만 쫓는 반면 실험적이거나 작가 성향이 짙은 영화 제작은 줄고 있다. 관객 성향 변화도 분명한 원인이지만, 도전 자체가 줄어든 탓도 크다.
2016년에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나홍진 감독의 '곡성' 등이 개봉하기에 3대 영화제 경쟁 진출을 노려볼 만은 하다. 그렇지만 이미 검증된 감독들의 신작이지 현재 한국영화계 흐름과는 동떨어진 일이다. 그나마 '곡성'은 이십세기폭스 코리아가 돈을 댔다.
7. 이병헌의 성공적인 귀환..'내부자들' 흥행
올해 이병헌 삼부작은 한국영화계의 화두였다. 이병헌이 출연한 '협녀' '내부자들' '터미네이터-제네시스', 세 편이 언제 개봉할지에 촉각이 곤두세워졌던 것.
당초 '협녀'는 지난해 12월, '내부자들'은 지난 5월 개봉을 염두에 뒀지만 이병헌 협박사건 여파로 개봉일정이 표류했었다. 할리우드 영화인 '터미네이터'만 일찌감치 개봉을 확정했었다.
'터미네이터-제네시스'는 324만명이 들었지만 이병헌 비중이 크지 않았다. 이병헌은 액체로 변하는 터미네이터 T-2000으로 출연했었다. '협녀'는 여름시장에 100억대 영화로 개봉했는데도 불구하고 43만명이라는 기록적인 흥행참패를 거뒀다. 때문에 이병헌이 악재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소리들이 나왔었다. 하지만 워낙 영화 완성도가 떨어진 탓이지 이병헌 연기는 흠 잡을 게 없다는 평들이 지배적이었다.
11월 개봉한 '내부자들'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600만명을 동원하며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다. '내부자들'로 이병헌은 한국 상업영화에 온전하게 복귀한 셈이 됐다.
이병헌은 내년에도 할리우드와 한국을 오가며 영화 활동을 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알 파치노, 안소니 홉킨스랑 같이 찍은 '비욘드 디시트'와 크리스 프랫, 덴젤 워싱턴과 같이 작업한 '황야의 7인'이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영화 차기작도 조만간 확정할 계획이다.
8. 대종상 파행에 파행..남녀 주연상 후보 전원 불참
11월20일 열린 제52회 대종상은 주요 부문 수상자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최악의 시상식으로 기록됐다. 이번 대종상은 파행으로 얼룩져왔던 역대 대종상 시상식에서도 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이번 대종상은 참석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겠다는 이른바 대리수상 불가 방침을 밝혀 일찌감치 논란에 휩싸였다. 주요 부문 후보를 시상식 일주일 앞두고 발표하고 섭외에 들어가는 등 상식 밖의 행보로 남녀 주연상 후보 전원이 불참했다. 배우 뿐 아니라 감독, 스태프도 대거 불참했다.
'국제시장'이 작품상과 감독상 등 10관왕에 올랐지만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 공정성 논란에도 휘말렸다. 대종상이 내년에는 제대로 열릴지, 열리기는 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9. 이터널 선샤인 흥행..재개봉 열풍
올해 영화계에 두드러진 경향 하나는 재개봉 열풍이었다. 개봉한지 10년이 지난 영화들이 잇따라 극장에 다시 내걸렸다. 이 중 '이터널 선샤인'은 2005년 개봉 당시 17만명 밖에 동원하지 못했지만 재개봉으로 본 상영 때보다 더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아 영화계 안팎의 시선을 모았다.
'이터널 선샤인' 흥행은 관객층 변화와 관련이 깊다. 최근 4050 세대 관객이 급증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20대 관객이 20년이 지나 다시 극장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 영화 재개봉은,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망보다는, 돌아온 중장년 관객층을 위한 맞춤형 상품에 가깝다.
당초 과거 영화 재개봉은 IPTV 및 VOD 서비스를 위해 진행됐다. 판권 확보 차원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틈새시장 공략이 되고 있다.
갈수록 커지고 있는 IPTV시장은 여러 틈새시장을 만들고 있다. 과거 80년대 비디오 대여 시장이 컸던 시절, 00부인 시리즈가 유행했던 것처럼 최근에는 IPTV 시장을 겨냥한 00엄마 시리즈 등 에로영화가 속속 제작되고 있다.
에로영화 시장은 일인 가구 증가와 맞물려 있고, 복고 영화 재개봉은 중년 관객 증가와 맞물려 있다. 관객 성향 변화는 당분간 한국영화 지형도에 계속 영향을 줄 것 같다. 관객성향 변화는 <10.'검은 사제들' 흥행..그래도 새로움에 대한 갈망>으로 마무리한다.
10. '검은 사제들' 흥행..그래도 새로움에 대한 갈증
11월5일 개봉한 '검은 사제들', 그리고 2주 뒤에 개봉한 '내부자들'은 최근 관객 취향을 비교할 수 있는 지표들이다.
'검은 사제들'은 한국영화에 드문 엑소시즘을 영화화했다. 사제복을 입은 강동원에 대한 기대가 영화 흥행에 작용하긴 했지만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영화 흥행에 가장 일조했다. '검은 사제들'은 강동원이란 스타파워, 2030여성 관객들의 취향 저격, 새로움에 대한 갈망 등이 한 데 어우러져 흥행에 성공했다.
여전히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게 '검은 사제들' 흥행으로 입증된 것. '검은 사제들' 흥행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과 2030 여성 관객들의 선호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스타 파워에 기대야 한다는 점에서 변하고 있는 관객 취향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걸 입증했다.
한편으론 '내부자들'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인데도 '검은 사제들'을 넘어 흥행하고 있다는 점도 눈 여겨 볼 지점이다. 새롭지 않고, 전형적인 남성영화 구조를 갖고 있는 '내부자들'은 이병헌과 조승우 백윤식이라는 멀티 캐스팅, 대리만족, 중장년층 남성관객 유입 등이 영화 흥행에 일조했다.
대비되는 두 영화의 흥행, 그리고 낯선 영화보다는 익숙한 영화가 더 흥행한다는 점은, 향후 한국영화 제작 흐름에 분명한 경향으로 자리 잡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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