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①)에서 계속
-대부분의 장면에서 이병헌과 호흡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 2번째 호흡이다. (이엘은 당시 광해의 후궁 안개시 역을 맡았다.)
▶이병헌 선배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매력이었다. 처음 '광해' 할 때 잘 못해서 창피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제대로 만회하리라, 선배님의 기억 속에 있는 예전의 저를 지워버려야겠다 생각도 했다.(웃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광해' 때 사극 대사를 소화하는 게 쉽지 않았다. 더욱이 추창민 감독님이 워낙 꼼꼼하시기도 하고. 이병헌 선배님뿐인가, 김명곤 신정근 선생님까지 계셨는데, 저 때문에 열다섯 테이크 씩 기다려 주셨다. 정말 그대로 없어져버리고 싶었다. 증발해버리고 싶은 느낌이었다. 옆에서 웃으면서 '한 번만 더 해봐'라고 격려해 주시는데, 눈도 못 쳐다보겠고 그랬다.
-이번엔 어땠나.
▶이번엔 '광해' 때보다는 덜 떨었다. 자동차 안에서 이병헌 선배님이랑 둘이 찍을 때도 팔걸이를 넘어가 째려보기도 했고. '광해' 때는 대사 하기 급급하고 동작 하기 바빴는데, '내부자들' 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다행이다.(웃음)
-안상구와 주은혜는 과거 이들 둘 사이에 '썸' 비슷한 관계가 있었구나 싶은 오묘한 사이이기도 하다.
▶과거 연예기획사 시절 소속사 대표와 연예인 이상의 '썸'이 있지 않았을까 전제하고 캐릭터를 잡아 갔다. 그런 관계라면 좀 더 동등한 선에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디 오리지널'에 등장하는, 아파트에 찾아가 청소 좀 하라며 커튼을 걷는 신이 첫 촬영이었다. 옆에서 인상 쓰고 장난치고 하면서 촬영했는데 찍고나니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나오면서 '나 뭐했니' 이랬다. 세 보이려고 일부러 오버하고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다행히 의도대로 나왔더라. 감독님께서도 많이 잡아주셨다. '너보다 연기 잘하는 사람도 다 그래' 이러시면서. 대사는 후시 녹음으로 다시 해야 했지만 그나마 첫 촬영을 잘 넘겼다.
-다시 만난 이병헌은 어떻던가.
▶예전보다 더 많이 풀어주시고 배려해 주시고 농담도 더 많이 해주셨다. 덕분에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촬영에서는 제가 예상하지 못한 장난을 좋아하셔서, 촬영하는 중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선에서 이런저런 변화를 작게라도 주신다. 그 덕에 주마담과 안상구의 관계가 더 친밀해 보이기도 하고, 저도 웃으면서 더 릴랙스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면 저도 '요 정도는 해봐도 되겠구나' 하면서 시도할 수 있는 게 생기고.

-확장판에는 주은혜의 분량도 일부 추가됐다. 만족스러울 것 같다.
▶본편은 아쉬움이 있었다. 고만큼밖에 안 나오는데 혈혈단신 찾아가 목숨 걸고 협박하는 주은혜라니 좀 오버스럽지 않나. 과연 저걸로 설득이 될까 했다. 또 주은혜가 안상구를 행동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데 그것 역시 설득이 될까 싶었다. 그걸 해소할 수 있는 장면들이 '디 오리지널'에 나와 안상구와 주은혜가 그만큼 쿵짝이 맞고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게 보여서 좋았다. 연인이 아니고 그것이 사랑의 감정이 아니더라도 인간적으로 통하는 사이라는 게 전달된 느낌이다. 꼭 제 분량이 아니더라도 언론사 편집실 부분 등이 강조돼 저희 영화를 지탱하는 삼각형의 한 축에 힘이 실린 것 같아 좋았다.
-그간 개성있는 얼굴 때문에 강한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센 얼굴이 콤플렉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으니까. 그래도 찾아주시는 분이 많이 계시고 주야장천 센 것만 한 게 아니라 중간중간 다른 모습을 했으니까, 이제는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 분장 지워내고 맨얼굴로 내가 연기를 순하게 하고 다른 연기를 하면 얼굴도 달라보이지 않을까.
-워낙 '내부자들'이 잘 돼 이엘이 곧 주은혜인 것처럼, 또 주은혜가 곧 이엘인 것처럼 받아들인 관객들도 있을 거다.
▶설명드리자면, 제가 주은혜랑은 좀 다른 사람입니다.(웃음) 이엘은 간 떨려서 주은혜처럼은 못 한다. 물론 물렁하진 않지만 그 여자처럼 사지에 홀로 가 목숨 걸고 협박하는 강단은 없다. 저는 사실 덤벙거리고, 먹는 것 좋아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트레이닝복 입고 뒹굴거리면서 팝콘 튀겨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콩비지에 밥 비벼 먹는 것도 좋아한다. (웃음) 하지만 비슷한 점도 확실히 있다. 의리. 끝까지 의리를 지키려고 하는 건 비슷하다.
-얼마 전에는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도 출연했다. 예능 신고식을 독한 프로그램으로 치른 셈이다. 할만하던가.
▶못 하겠더라.(웃음) 녹화 전날 밤에도 그랬다. '나 어디서 무슨 일 안 나니'. 내일이라도 무슨 일이 생겨서 녹화장에 못 가게 됐으면 싶고, 또 증발돼서 없어지고 싶고.(웃음) 녹화 때 보니 그게 너무너무 힘든 자리더라. 예능으로 치면 도 대회, 전국 체전도 안 거치고 올림픽부터 뛴 셈이랄까. MC 네 분 얼굴밖에 생각이 안 난다. 재밌긴 했는데 왜 재미있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
-하지만 '내부자들'을 보고 이엘이 주은혜처럼 차갑고 센 사람인 줄 알았던 분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갔다.
▶너무 차갑고 센 역할들만 하긴 했다. 예능이야 워낙 재미있고 저를 알리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저는 원래 안 이렇습니다. 원래 헐렁헐렁한 애입니다' 하고 보여드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를 보시다 보면 영화 속 캐릭터가 예전만큼 보이지 않을 것도 같다. 생각만 많아진다.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또 알아주실 것이라 믿는다. 제가 그렇게 시크하고 차갑고 도시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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