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스무 살이 돌아오면, 그 때 그 시절 연인과 다시 만난다면, 익숙함에 젖게 될까, 거리를 두게 될까. 이탈리아에서라면. 남편과 아내도 아이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라면 어떻게 될까.
'경의선'의 박흥식 감독은 '두번 째 스물'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탈리아에서 재회한 중년의 남녀. 남자는 아내와 아이가 있다. 여자는 남편과 사별했다. 둘은 다시 스물로 돌아간 듯 웃고 떠든다. 같이 잔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탈리아는 추억이자 박제된 시간을 되돌린 여행이다.
이태란은 주인공 민하를 맡았다. 박흥식 감독을 빼닮은 남자 민구는 김승우가 맡았다. 이태란은 "멜로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역할과 나이도 같았고. 특히 마지막 민하의 선택이 좋았다"고 말했다. 촬영한 지 1년이 훌쩍 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가 다시 자료를 꺼내보며 "맞아, 이랬지"라고 했다는 이태란과 만났다.
-왜 '두 번째 스물'을 하게 됐나.
▶배우로서 멜로를 보여드릴 기회가 많지 않았다. 주인공과 나이도 똑같고. 멜로를 연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민하의 선택도 좋았고. 개봉이 너무 갑자기 잡혀서 되게 당황했다. 지난해 3월에 이탈리아에서 거의 90% 분량을 찍었으니깐. 드디어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자료를 찾아보다가 "그래, 이랬지"라고 새록새록 떠오르더라.
-중년 남녀의 흔한 불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중년의 두 남녀가 이탈리아에서 여행을 하면서 사랑한다는 게 시나리오를 보면서부터 예술적인 느낌이 들었다. 잔잔하고 좋았다.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 누구나 꿈 꿀 수 있는 사랑이 주제니깐. 서로 사랑했고 편했던 사람이나 그만큼 친근한 느낌이기도 하고. 그 감정을 100% 이해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스무살 때 연애하다 다시 만난 사람과 사랑을 하게 된다는 것이니. 글쎄 이 영화는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나간다. 서로 오해도 풀고. 그런 부분이 다르다.
-민하가 주체적인 여성이란 점이 더 끌렸나. TV드라마에선 수동적으로 내몰리다가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역할을 최근에 많이 했으니.
▶그랬을 수도 있다. 데뷔할 때는 주체적인 여성 역할을 많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으니깐. 결혼 이후에 생각이 좀 달라진 것 같다. 결혼한 지 1년만에 촬영을 했다. 그 전과 이해도가 달라졌다. 너무 다른 남자와 생활하다보니 이해와 감정의 폭이 넓어진 것 같다. 서로 맞춰가고 서로 입장을 생각하게 되더라. 그런 부분이 영화 선택에 도움을 준 것 같다.

-베드신도 있는데. 결혼한지 1년이 안 된 시점에 제안을 받았기에 걱정도 됐을텐데.
▶물론이다. 그 부분 때문에 시나리오를 덮기도 했다. 그런데 신랑이 연기니 걱정말고 갖다오라고 해주더라. 정말 고마웠다. 베드신은 시나리오로 읽었을 때는 이야기의 연장선상이니 편안했는데 막상 현장에 가니깐 되게 예민해지더라. 복잡한 생각이 얽혀지더라.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조율했다. (노출 수위나) 그런 부분은 서로 조심스러워서 크게 부딪히지는 않았다. 상대역인 김승우 선배가 감독님과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더라. 그런 모습이 감사했다. 만일 둘 사이를 조율하려 했다면 힘들었을 것 같았다.
베드신 촬영을 앞두고 배우로서 자격이 없나란 생각까지 들었다. 되게 힘들었다. 신랑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도 들었고. 그래서 베드신 촬영 전날 이탈리아에서 신랑에서 전화를 했다. "내일 촬영이다. 드디어 자"라고 했다. 그랬더니 신랑이 "잘해, 할 수 있어"라고 해주더라. 너무 아무런 일도 아닌 것처럼 무심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 똑 같이 진지했더라면 더 힘들었을텐데, 정말 감사했다.
-TV드라마를 주로 하면 생활형 연기자로 보는 시선이 있다. 그래서 TV드라마를 주로 하는 배우들이 영화를 갈망하는 경향도 있는데.
▶한 때는 그런 데 매달린 적도 있다. 이미연 언니와 영화 '어깨너머의 연인'을 하고 난 뒤 인터뷰 중에 그런 생각에 눈물을 터뜨린 적도 있다. 지금은 덤덤하다. 영화든 드라마든 똑 같은 작품이고, 나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깐. 이제는 여유롭다. TV드라마를 더 많이 해서 더 편하기도 하고.
-윤여정, 김해숙처럼 TV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는 배우들도 있는데.
▶(배우라면) 누구나 다 꿈꾼다. 그렇게 되고 싶다. 정말 존경한다. 열린 마음으로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당연히 있다. 그래도 요즘은 영화배우들도 TV에 많이 나온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한다. 정우성이 쇼프로에 나와서 망가지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누군가의 연인을 연기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두 번째 스물'이 더 반가웠나.
▶워낙 선택받는 직업이다보니 젊어서는 저런 거 나도 할 수 있는데 내가 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얼마 전 '아가씨'를 봤는데 김태리라는 배우가 정말 잘 하더라. 어릴 적에는 나도 잘 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여유가 생겼다. 롱런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다. 나이 들어가면서 맡게 되는 역할도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언젠가는 할머니 역할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스물' 촬영 여건이 쉽지 않았다던데.
▶숙소만 9군데 이동을 해야 했다. 최소한의 스태프로 한달 동안 23회차를 찍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 민감해 했다. 다행히 김승우 오빠가 현장을 자신있게 이끌어줘서 믿고 따라갈 수 있었다.
-영화는 독립영화를 많이 했는데 메인스트림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나.
▶그러면 감사하겠지만 단편이든 독립영화든 다 감사하다. '두 번째 스물' 때는 너무 힘들어서 불평하는 마음도 들었다. 왜 좀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을까란 생각이 들더라. 다음에는 어떤 영화든 더 감사할 것이다.
-영화 속 의상이 전부 본인 의상이라던데.
▶원래 면티에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다 의상을 나보고 준비하라고 하더라. 영상에서 보여지는 게 있으니 면티에 청바지를 입고 나올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백화점에서 즐겁게 쇼핑을 했다. 살면서 가장 많은 쇼핑을 한 것 같다. 출연료보다 몇 배 들었다.
-요즘 특별히 행복한 일이 있다면.
▶얼마 전 토이푸들 한 마리를 입양했다. 원래 강아지를 키우는 걸 너무 싫어했다. 어쩔 수 없이 떠안았는데 너무 너무 사랑스럽다. 생명을 키운다는 게 실감난다. 이 친구는 말을 못하니 이제는 말을 하는 내 자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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