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조세희의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도입부에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이다. 영화 '여교사'(감독 김태용)은 지옥에 사는 사람이, 천국에 사는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뺏기는 이야기다.
'여교사'의 고등학교 계약직 교사 효주(김하늘 분)는 정교사 자리 하나만을 보고 일상을 버틴다. 글을 쓴다며 10년째 백수인 남자친구까지 먹여 살리며 계약직으로 일한 효주는 내년 자신이 정교사 자리를 맡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정교사 한 명이 출산으로 자리를 비우자, 효주는 그 선생님의 빈자리를 채워 담임 업무를 맡게 된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담임을 맡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그에게 선택의 기회는 없다. 교감선생님은 계약직 교사들을 모아놓고는 계약 심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며 "정교사가 되기 전까지 결혼이나 임신은 생각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짧은 단면을 통해 이 사회에서 하나의 부품이 돼 버린 효주의 모습을 본다. 일손이 필요할 때는 의견도 묻지 않고 투입 시키지만, 인간의 권리인 행복추구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는 묵살 당한다. 정규직은 임신하면 축하받지만, 계약직은 학교를 나가야 한다. 학교라는 한 공간 간에 교사라는 똑같은 이름으로 살면서도 정규직과 계약직이라는 근로 조건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이처럼 근로 조건이 계급이다. 학생들마저 "정교사도 아닌 주제에"라며 선생님을 무시한다. 계약직이라는 계급은 효주에게 벗어나고 싶은 지긋지긋한 지옥이다.

이런 효주 앞에 정규직이 아닌 다른 계급의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이사장의 딸 혜영(유인영 분)이다. 천국에 사는 혜영은 정규직과 계약직이라는 계급 그 한참 위의 계급이다. 이사장의 딸이라는 계급 덕분에 혜영은 아무런 경력 없이, 능력도 검증받지 않고 정교사로 들어온다. 아이들의 수행평가 채점 등 귀찮은 업무는 계약직 교사 효주의 몫이고 혜영은 예쁜 옷을 입고 학교에 와서 동료들과 아이들의 관심을 받는다. 원래 자신이 정규직이 될 것이라 믿었던 효주는, 혜영에게 그 자리를 뺏겼다고 생각한다.
효주와 혜영은 같은 학교 출신이다. 혜영은 효주를 꼬박 꼬박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친한 척 하지만, 효주는 자신의 정규직 계급을 뺏어 간 혜영을 좋게 보기 힘들다. 하지만 혜영은 효주와 친해지기 위해 자신의 남자친구와 식사자리까지 마련한다. 효주에게는 학교 이사장인 아버지가 보자고 한다며 거짓말을 해서 불러 내고는 돈 많고 멋진 남자친구를 소개해주고 비싼 밥을 먹인 뒤 선물까지 쥐어 준다. 효주는 혜영에게 "내가 불쌍해 보이냐"고 소리치며 선물을 던져버리지만, 정작 혜영은 자신이 베푸는 친절을 받을 줄 모르는 효주를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는 그렇게 흘러간다. 모든 것을 다 가진 혜영은 가지지 못한 효주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효주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자신의 것까지 뺏어가려는 혜영을 향한 열등감이 폭발한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인 혜영을 효주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효주는 자신이 담임을 맡게 된 반의 학생 재하(이원근 분)와 혜영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알게 되고, 혜영을 코너로 몰며 게임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듯 보이던 게임에 어느새 효주 스스로가 빠져들게 되고, 제자인 재하를 남자로 보게 된다. 효주는 자신의 무료한 일상에 활기가 된 재하에게 집착하게 되고, 결국 이런 관계로 인해 혜영에게 무릎 꿇게 된 효주는 절제를 잃고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조선 시대처럼 양반, 평민 나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최근 몇 년간 숟가락이론으로 주목받은 금수저와 흙수저도 사회가 만들어낸 계급이다. '거인' 김태용 감독의 신작 '여교사'는 이런 식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을 건드린다. 영화 속에서 드러내놓고 있는 계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차이이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갈래의 계급이 보인다. 부모 잘 만난 사람과 아닌 사람, 돈이 많은 사람과 아닌 사람, 능력 있는 남자친구와 백수 남자친구, 그리고 한국에서는 미모도 경쟁력이라는데 예쁜 사람과 안 예쁜 사람까지도 계급이 돼 사람을 나눈다.

'여교사'는 계급이 만들어 낸 열등감 속에서 태어난 영화다. 김하늘은 효주 역할을 맡아 가지지 못한 사람, 계급사회 아래에서 살고 있는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음울하고, 신경질적인 듯한 표정 속에 감정을 담아냈다. 한 계단 위로 올라가기 위해 열심히 살지만 자신이 절대로 올라가지 못하는 계급의 사람에 밟힌 뒤 더 이상 회복이 불가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갖기 위해 노력했던 학교의 정규직 자리, 그리고 쫓아다니며 돌본 재하의 마음까지. 효주가 갖지 못한 것을 혜영은 너무나 쉽게 가졌고, 그것을 쉽게 생각하고 버린다.
김태용 감독은 '여교사'라는 선정적인 제목과, 질투 이상의 문제작이라는 포장 속에 계급의 문제와 열등감 등을 담아냈다. 표면적으로는 고등학생 남자와 두 여자 선생님의 파격적인 관계를 그린 작품이지만 들여다보면 섬세하게 그려낸 감정들이 드러난다. 계급에 짓눌린 채 지긋지긋하게 살아가는 효주가 마지막 파국을 향해 달려갈 때면, 스릴러 영화 못지 않은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2017년 1월 4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9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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