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드 창 작가의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Arrival)에는 지적인 SF란 평가가 따라붙습니다.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의문의 비행물체, 그 안의 외계인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를 알아가는 여성 언어학자의 이야기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그 못잖게 돋보이는 것이 참신한 비주얼입니다. 외계인과의 치열한 사투, 최첨단 우주선과의 공중전은 없어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프로덕션 디자인은 고요함 속에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특히 평원 위에 무심하게 자리잡은, '쉘'이라 불리는 거대 우주선의 모습은 '컨택트'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비주얼일 겁니다. 포스터만 봐도 그 존재감이 엄청납니다.
흑연처럼 묘한 광택을 머금은 검고 긴 형태의 우주선은 원작에선 찾아볼 수 없는 영화적 상상력의 결과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과 미술감독 파트리스 베르메트 이전의 SF영화와는 다른 디자인의 우주선을 원했습니다. 베르메트 미술감독은 "창작의 재량이 있었다. 원작과 대본 모두 같은 아이디어-바로 기묘함이 바탕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설 속 우주선에 대한 묘사는 길지 않습니다. 구체(sphere)라는 설명이 있죠. 수도 훨씬 많아서, 원작에선 미국에만 9개, 전세계적으로는 무려 112개의 비행체가 나타난다는 설정을 썼습니다. 감독은 그 수를 전세계에 12개로 줄이고 우주선의 모양도 완전히 달리 했습니다. 당장 스콧 데릭슨 감독의 '지구가 멈추는 날'(2008)에 등장하는 우주선이 완전한 구형을 띠고 있죠.
감독과 미술감독은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수직적인 느낌"에 동의했고, 잡아 늘린 듯한 타원형 구체를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소행성 에우노미아(Eunomia)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상한 달걀 같은 미친듯한 형태'(insane shape like a strange egg)에 사로잡혔고, 조약돌이나 계란 모양을 연상시키는 소행성의 모습이 위협적으로 느껴지면서도 미스터리를 배가시키는 우주선의 형태에 적합하다고 느꼈다는 후문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컨택트'의 우주선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형태로 시선을 압도합니다. 지상 20m에 붕 뜬 채로 말이죠. 누군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콘택트렌즈를 닮았다고도 하고, 비밀을 품은 공룡알이 연상된다고도 합니다. 어찌 보면 인류 최초의 도구이자 무기라 할 돌도끼도 닮았습니다. 참신한 비주얼은 잘 만든 SF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죠. 외계인들의 비주얼, 먹물을 찍어 붓으로 그린 듯한 원형으로 표현된 언어 등 그 밖에도 정교하게 디자인된 볼거리가 상당합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컨택트' 속 과학적인 묘사, 관념 등이 정확하길 바라는 마음에 모든 전문용어와 그래픽, 묘사나 서술이 정확한지 꼼꼼한 감수를 거쳤다고 합니다. '인터스텔라'와는 또 다른 지적 SF, 시각적 쾌감을 원한다면 꽤 괜찮은 선택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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