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대중 감독이 2016년 데뷔작인 '위대한 소원'을 선보였을 때, 그의 재기는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제법 소문났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차지하고 B급 코미디를 다루는 그의 솜씨는 주목을 받았다.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이 그랬듯, 남대중 감독에게도 코미디 각색 의뢰가 상당했다. 그는 대체로 그 제안들을 거절했다. 자기 코미디, 자기 시나리오에 더 욕심이 났기 때문이다.
3년이 흘렀다. 남대중 감독이 새 영화 '기방도령'으로 관객과 다시 만난다. 10일 개봉하는 '기방도령'은 여성의 정절을 강조하던 조선 시대, 기방에서 태어나 기방에서 자란 꽃미남 허색이 기방 폐업의 위기를 맞아 여인들을 손님으로 받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동극이다.
어처구니 없이 웃긴다. 웃기는 한편 드라마와 밸런스에도 공을 들였다. 남대중 감독은 '위대한 소원'으로 많은 공부를 한 모양이다.
-'기방도령'은 어떻게 하게 됐나.
▶시나리오 초고는 '위대한 소원' 전에 썼다. 2015년 영진위 기획계발 지원작으로 선정된 내용이다. '위대한 소원'을 내놓고 얻었던 여러 교훈들과 고민들을 '기방도령' 각색 작업에 담았다. 원래는 시나리오 작가로 다른 분이 연출하는 걸 염두에 뒀지만 '위대한 소원'을 하고 나니 내 영화로 연출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조선 시대에 남자 기생이 수절과부들을 상대로 술을 판다는 게 전복적인데.
▶대단한 시의성이나 시대 정신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다. 어릴 적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일찍 남편을 여의셨다. 30~40년 전에도 재가를 좋은 시선으로 보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하물며 조선 시대에는 더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보편적인 이야기나 소재를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내 색깔인 것 같다. 조선 시대의 열녀문은 수절은 여자가 하지만 죽은 남편의 가문에게 내려지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을 비틀어보고 싶었다.
-'위대한 소원'에서 성적인 소재를 다뤄 호불호가 갈렸는데. 거기서 얻은 교훈이 '기방도령'에 반영된 게 있나.
▶수위가 오히려 낮아졌다. 성적인 유머 코드, 섹드립 같은 게 줄었다. '위대한 소원'을 하면서 가장 뼈를 때리게 아픈 지적이 남에게 추천하기가 민망하다는 것이었다. 상업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많은 분들이 덜 불편하게 만드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기방도령'은 B급 코미디인데. 한편으론 웃음과 드라마, 마지막 감동까지 적절한 안배를 해야 했고.
▶소재랑 주제가 물과 기름처럼 떠서 둘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기방을 찾는 여자 손님들의 고민을 더 녹일까도 생각했다가 편집을 했다. 허색(이준호)이 각성하게 되는 부분도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게 아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앞의 코미디와 뒤의 드라마가 붙어야 했기에 선택의 과정이 많았다.
-이준호가 연기를 잘하긴 했는데, 특히 마지막에 해원(정소민)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는 장면은 뒷모습만 보여주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던데. 충분히 뒷모습만으로도 감정을 전달하던데.
▶다수결로 정했다. 처음에는 준호의 얼굴을 전면으로 보여주는 걸 빼기도 했다. 고민이 많았다. 관객이 준호의 얼굴을 보면서 감정을 더 깊게 느끼고 싶을 것 같기도 했다. '위대한 소원' 때 편집이 뚝뚝 끊긴다는 지적을 받은 것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준호가 연기한 허색 캐릭터는 어떻게 착안했나. 여심을 잡는 방법이 특별한 게 아니라 그저 잘 들어주는 것 뿐이란 게 인상 깊은데.
▶카사노바를 모티프로 했다. 카사노바 전기를 보면 노년의 카사노바에게 당신이 수많은 여인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유를 누군가 묻는 장면이 있다. 그 질문을 받고 노년의 카사노바가 "난 그냥 이야기를 들어준 것 뿐이다"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준호가 그 부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연기를 했다. 난 밤의 허색과 낮의 허색이 달랐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그 지점을 정말 훌륭하게 표현했다.
-최귀화가 맡은 육갑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했나.
▶낮의 허색과 밤의 허색이 다르기에 낮의 허색 옆과 밤의 허색 옆에 각각 그를 돕는 인물을 두고 싶었다. 밤의 허색 옆에 예지원이 맡은 기방의 총책임자 난설이 있다면 낮의 허색 옆에 홍보팀장격인 육갑을 뒀다. 다만 육갑은 케이퍼무비에서 외부 인사가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오듯 그런 인물이면 했다. 원래는 땡초 도사 같은 캐릭터였는데 최귀화가 고려왕조 왕건의 후예라는 설정을 갖고 왔다.
-정소민이 맡은 해원은 수동적이고 평면적일 수 있는 캐릭터인데, 정소민이 더 많은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에필로그의 나이 든 해원인 이일화의 감정 연기가 캐릭터를 입체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줬는데.
▶두 배우에게 처음부터 같은 인물을 연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정소민에겐 뒷부분이 감정까지 생각하면서 연기해달라고 했다. 이일화 장면은 계절 때문에 3월에 보충 촬영을 했는데, 앞에서 정소민이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를 다 보여줬다. 두 배우가 그런 부분을 너무 잘해줬다. 또 정소민이 한복이 매우 잘 어울린다. 배우들이 친분이 있어서 그런 분위기가 잘 녹아 들어간 것도 도움을 줬다.
사실 해원 역은 비중이 좀 더 있었다. 몸종인 알순(고나희)과 신분을 넘어 자매처럼 지내는 부분, 여러 전사가 있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이야기의 흐름과 코미디, 드라마의 밸런스 조절 등을 이유로 편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준호였나. 준호의 첫 영화 주연작인데.
▶2018년 초에 '기방도령' 연출을 내가 하기로 결정이 됐다. 춤과 가무를 다 할 수 있으면서 연기도 좋은 배우가 누가 있을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른 작품 감독과 배우 미팅하는 자리에 합석을 했다. 준호의 미팅 자리였다. 그 이후 준호가 출연한 TV드라마를 유심히 봤다. 감정 표현이 좋더라. 아이돌 출신이라 캐스팅한 게 아니라 배우 중에서 춤과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찾다보니 준호를 찾게 된 경우다.
준호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일단 자기가 생각하는 감정을 연습해올 테니 한 번 보고 이야기하자고 하더라. 그렇게 준호와 개인 리딩을 많이 가졌다. 할 때마다 달라졌고 더 좋아졌다. 편견이랄 게 생길 수가 없었다. 기방 안의 허색과 밖의 허색을 다르게 해달라, 밤의 허색과 낮의 허색을 다르게 해달라, 이런 감독의 주문을 적확하게 하면서 점점 더 발전해 나갔다.
-12월부터 찍었기에 촬영 여건이 쉽지 않았을텐데. 입에서 김이 나오는 걸 막으려 얼음을 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테고.
▶CG의 큰 도움을 받았다. 얼음을 물고 다 해봤지만 소용이 없더라. 최귀화가 웃통을 반쯤 열고 장작을 패는 장면에선 안개처럼 김이 뿜어져 나왔다.
-최귀화의 첫 장면을 굳이 전라로 할 필요가 있었나.
▶그 장면은 대역 배우가 해주긴 했다. 그게 내 색깔인 것 같다. 첫 등장이 뭔가 이상했으면 싶었다.

-전작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악역이 없다. 공명이 맡은 유상이 악역은 아니고. 악역이 없으니 감정적인 파고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점도 있는데.
▶개인적인 성향인 것 같다. 더 강하게 악역을 만들자는 의견도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상황적인 압박이 주는 갈등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예컨대 예지원이 "나는 15살 때였다"라고 하는 장면이랄지. 이번까지는 그렇게 하되 다음부터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시나리오를 쓸 때 악역이 꼭 악역처럼 써지지는 않는 것 같다.
-사극은 미술과 의상이 예산을 다 잡아먹는다고 할 만큼 둘의 비중이 큰데. 특히 '기방도령'에선 의상 비중이 컸을텐데. 준호의 의상도 매우 화려하고.
▶이진희 의상감독님이 워낙 잘 해주셨다. 남자 기생이란 게 없었으니 준호가 기방 안에서 입는 옷은 다 만들어야 했다. 대신 기방 밖은 정통 의상이어야 했고. 공면이 입은 한복은 당대 사대부의 격조 있는 옷이다. 준호가 입는 한복은 그 시대의 날라리가 입는 옷이기도 했고. 남자 기생의 복식은 춤복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 준호가 푸른 색 계열이 어울리기도 해서 그런 부분도 참고했다.
-B급 코미디란 게 아슬아슬하다. 풍자와 조롱 사이를 오간다. 그래서 취향을 타는 법이고. '기방도령'도 마찬가지인데.
▶아슬아슬한 코미디가 내 성향인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엔 드라마와 코미디를 어떻게 조절하고 풀어낼지, 밸런스에 가장 고민을 많이 했다.
-알순이 역의 고나희가 참 좋은데. 보통 몸종 역은 중년 여성 배우에게 맡기기 마련인데 정반대로 아역에게 맡겼다. 그렇다보니 그 차이에서 오는 코미디가 좋은데.
▶육갑(최귀화)과 고나희가 웃픈 코미디를 해줬다. 고나희는 김남주와 같이 한 CF가 유명하더라. 오디션을 통해서 뽑았는데 그 귀여움이 느껴지더라. 어린 나이지만 세상 물정을 다 아는 캐릭터였길 바랐는데 고나희가 적확하게 표현했다. 어떻게 하면 귀엽게 보일 지 아는 탁월한 배우다.
-감과 감나무를 코미디와 드라마에 다 중요한 소재로 끌고 왔다. 반복하면서 의미를 담고.
▶어릴적에 부모님이 곳감 농사를 하셔서 감나무에 익숙하다. 거기에서 감과 감나무, 감나무에서 떨어진, 이런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얻었다.
-준호가 맡은 허색이 감을 따는 해원을 보고 어머니를 떠올린다는 설정은 사실 진부한 방식이긴 한데.
▶초고의 잔재였다. 허색이 어머니와 추억을 갖고 있었는데 지웠다. 어머니가 허색에게 기생은 웃음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눈물을 파는 사람이다, 절대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하지 말라, 고 하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각색 작업에서 없앴다.
-극 중 태국어가 중요한 드라마를 담당하는데.
▶허색의 전사로 어머니에게 절대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지말라고 듣는 장면이 있었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설정이 먼저 넣었다. 그러면서 그 단어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외국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역관 시험 공부를 한다는 설정으로 갔다. 일본어나 중국어로 사랑한다는 표현은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 같아서 당시 조선과 교역을 했던 나라 중에서 찾다보니 태국어 공부를 하는 것으로 설정하게 됐다. 태국어를 설정했더니 극 중 태국어 발음 감수를 준호의 동료인 닉쿤이 해주기도 했다.
-준호와 같이 해서 또 좋았던 게 더 있나.
▶커피차가 현장에 많이 오더라.(웃음) 이병헌 감독 뿐만 아니라 같이 작품을 했던 많은 배우들, 스타일리스트들이 커피차를 보내왔다. 거기서 준호가 정말 잘 살아왔구나란 걸 알 수 있었다. 준호는 단지 연기 뿐 아니라 현장에서 메인으로서 역할도 그 이상으로 잘했다. 워커홀릭인데다 책임감이 확실했다. 자기 촬영이 끝나도 다른 배우들, 스태프들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소고기도 회식으로 쐈다. 회식도 가장 많이 쐈다.
-전노민도 그렇고, 해원의 오빠 역으로 출연한 김동영도 그렇고. '위대한 소원'을 함께 한 배우들이 '기방도령'에 카메오로 출연했는데. 현장에서 배우들과 인연이 좋고 오래 가는 모양인데.
▶그런 편이다. 좋은 사람들과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는 편이다.
-다음 작품은. 또 B급 코미디인가.
▶두 가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가족영화와 첩보영화. 둘 다 보편적이지만 독특한 시선으로 보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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