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선시각,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영화, 드라마 이야기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가 담아낸 한국의 이야기가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일제 강점기를 지나 묵묵히 삶을 살아오며 일본에서 뿌리내린 자이니치(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또는 조선인) 가족의 삶을 그린 '파친코'는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하는 뾰족한 이야기들을 깎아내 평평하게 담아냈다. 그 속에 꾹 담긴 진심들이 더욱 와 닿는다.
거대한 스케일의 서사를 따뜻하게 담아낸 '파친코'는 금지된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승리와 심판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연대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일본의 억압 속 고통 받는 조선인들, 살기 위해 일본으로 넘어간 조선인들의 치열했던 삶을 담아냈다. 그 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삶을 일군 조선인들의 마음, 고통 속에서도 내 자식만을 제대로 살게 하겠다는 부모들의 마음이 가득차 있다.
'파친코'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이 한국인에게 저지른 만행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지는 않다. 당시 일본인들의 약탈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 중점을 두었기에, 어떻게 보면 담담하게 담아냈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일본의 쌀 수탈 문제라든지 강제징용은 물론 후반부 관동대지진 학살 등의 역사적 사실을 그려냈다.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으로 그려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일본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역사를 왜곡한 반일 드라마'라는 허위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자신의 나라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이 부끄러운 것 같은데, 이를 인정하기 싫으니 거짓말이라고 일부에서 우기는 모양새다.
'파친코'는 K드라마가 아니다. 미국의 회사가 자본을 대고,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쓴 소설을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연출한 미국 드라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일제 강점기 시대 모습을 담은 드라마와 달리 객관적이고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그렸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 '파친코'가 더 힘을 가진다.
'파친코'는 일본의 한국인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이야기도 대놓고 그리지 않는다. 최근 공개 된 에피소드에서 10대에 한국을 떠나 6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선자(윤여정 분)는 부모님의 묘소를 찾다가, 과거 선자네 하숙집에서 일한 복희(김영옥 분)을 만났다. 복희는 자신의 집에서 선자에게 지난 60년의 이야기를 짧게 전했다. 홀로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복희는 과거 일을 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만주로 갔다는 이야기, 자신이 돌아왔을 때 선자의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함께 갔던 동생은 고향에 돌아와서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삶을 스스로 끝냈다는 말을 담담하게 전한다.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됐다가 돌아왔다는 것을 암시하며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삶을 전하는 복희의 얼굴 앞에서 시청자는 일본군이 저지른 적나라한 가해사실에 분노하는 것을 넘어, 그런 삶을 산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아파하게 된다.

일본의 쌀 수탈 문제도 비슷한 방식으로 그려냈다. 쌀을 뺏겨서 못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일본인들의 악랄함을 강조하는 대신에 결혼 후 바로 일본으로 떠나게 된 딸 선자에게, 이 땅에서 난 쌀맛을 꼭 한번 보여주고 싶다며 그 당시 한국인들은 먹지 못했던 쌀을 주먹만큼 구해 밥을 짓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며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포악함을 묘사하는 대신, 그 속에서 살아가야 했고 버텨야 했던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보여주며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린 것이다.
이 같은 스토리는 50년이 넘는 연기 인생으로 깊은 연기를 펼치는 윤여정을 비롯해, 새로운 모습으로 울림을 주는 배우 이민호, 그리고 새롭게 발견한 얼굴인 젊은 선자 역의 김민하까지 배우들의 진심어린 연기를 통해 피어났다.
'파친코'가 K드라마는 아니지만, 우리의 K스토리가 전세계인에게 와닿으며 콘텐츠가 가진 힘에 대해 다시 실감하게 된다. 담담해서 더 뜨거운 '파친코'. 그래서 더 마음이 아린다.
김미화 기자 letme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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