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OTT를 보는 김나연 기자의 사적인 시선

눈길을 사로잡는 폭발적인 액션도 없고 CG도 없고, 드라마틱한 장면의 변화도 없이 마법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잔잔한 '말의 파도'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하고, 곧 몸을 전체를 휘감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는 '우연과 상상'이다.
'우연과 상상'(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은 각기 다른 세 편의 이야기, 우연히 듣게 된 친구의 새 연애담에서 시작되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교수 앞에서 그의 소설을 낭독하는 여대생의 이야기 '문은 열어둔 채로', 20년 만에 길에서 만난 두 동창생의 재회를 그린 '다시 한 번'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에서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 분)는 집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친구 츠구미(현리 분)에게 새로운 연애 상대 이야기를 듣는다. 츠구미는 상대와 "마법 같은 시간을 보냈다"라고 말하고, 이야기를 들으며 친구의 새로운 연애 상대가 자신의 전 남친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2년 만에 찾아간다.
'문은 열어 둔 채로'에서는 늦깎이 대학생 나오(모리 카츠키 분)는 내연남 사사키(카이 쇼마 분)의 부탁을 받고, 대학교수이자 아쿠타가와상 수상 소설가인 세가와(시부카와 기요히코 분)를 방문해 그가 쓴 소설 일부를 낭독하며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다시 한 번'에서 나츠코(우라베 후사코 분)는 20년 만에 우연히 길에서 옛 친구(가와이 아오바 분)와 재회한다. 서로를 고교 동창생으로 오해한 두 여자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 우연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된다.

'우연과 상상' 속 각기 다른 세 개의 이야기는 '우연'이 만들어내는 인생의 순간들을 그려내며 깊은 여운을 안긴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우연은 드라마로 만들기도 어렵지만 일상에 흔한 것이기도 하다. 우연이 있는 것이 이 세상의 리얼리티이고, 반대로 말하면 이 세계를 그리는 것은 우연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우연으로 넘쳐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역시 묵직한 힘을 가진 대사다. 두 사람의 대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일상적이면서도 묘하게 느껴지는 긴장감이 극 전체를 지배한다. 택시 안에서, 교수실 안에서, 또 집 안에서 카메라는 큰 움직임 없이 두 인물을 비추고, 오로지 서로에게 집중해 대화를 나눈다. 그럼에도 '우연과 상상'은 인물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졌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강조하는 작위적이지 않고, 계산적이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세 개의 에피소드 모두 다른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연출 안에서 하나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에 출연한 재일교포 배우 현리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의 호흡에 대해 "제가 이 작품을 다른 감독님과 찍었다면 긴 대사에서 어디에 포인트를 주고, 또 강조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연기를 했을 것"이라며 "근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은 배우들의 작위적이고, 계산적인 연기를 원하지 않으셔서 모든 감정을 빼고 대사를 외우고, 현장에서 대사를 주고받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감정이 생기면 대사에 그 감정을 실으라고 하셨다"라고 설명했다.
즉흥적인 감정, 배우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터. 그러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각본의 힘'을 믿고 있었다. 현리는 "대사를 외우고 현장에 가서는 상대의 대사를 듣고 반응한다는 게 연기의 기본인데 그걸 잊고 있었던 것 같다"라며 "그러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의 현장에 가면 순수하고 심플하게 연기하면서 억지로 감정을 꾸며내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의 감정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우연과 상상'은 지난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김나연 기자 ny0119@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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