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30년 차 배우 설경구가 그동안의 여정에 대해 "잘 버텼다"라고 자평하며 앞으로 시작될 또 다른 여정에 대해 예고했다.
8일 경기도 부천시 고려호텔에서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uche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 이하 BIFAN)의 '설경구는 설경구다' 배우 특별전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배우 설경구, 정지영 조직위원장, 모은영 프로그래머가 참석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 특별전은 동시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가 걸어온 흔적을 통해 한국영화의 현재를 조망해온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대표 프로그램. 설경구는 전도연, 정우성, 김혜수에 이어 3년 만에 재개되는 네 번째 배우 특별전의 주인공이 됐다.
설경구는 "BIFAN 집행위원장 형님과 통화를 하다가 얼렁뚱땅 특별전을 하게 됐다. 전화를 끊고 나서 깜짝 놀랐다"며 "제가 배우 일을 하면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성격상 특별한 자리에 주인공이 돼서 앉아있는 것도 어색해하는 사람이라서 어색하긴 한데 결정을 하고 나서는 이유를 만들어봤다"고 밝혔다.
이어 "영광스러운 자리이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하다. 제가 93년, 대학교 2학년 때 연기를 시작했는데 햇수로 30년이 됐다. 30년이라는 세월을 잘 버텼다는 생각에 특별하게 와닿더라. 중간 점검을 하고 갈 수 있는 시간으로 특별하게 생각하게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BIFAN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박하사탕'(감독 이창동), '공공의 적'(감독 강우석), '오아시스'(감독 이창동), '실미도'(감독 강우석), '감시자들'(감독 조의석, 김병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감독 변성현), '자산어보'(감독 이준익) 등 배우가 직접 선택한 7편의 대표작이 상영된다.
이날 설경구는 "저의 인생 작품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박하사탕'이라는 생각을 한다. 작품을 할 때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니고, 많은 감정이 들어가면서 작품이 만들어지는데 '박하사탕'은 말초신경까지 다 끌어왔다. 제가 경험도 없었을 때라 끌어올 수 있는 감정은 다 끌어왔다. 앞으로도 저에게 '박하사탕' 같은 작품은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직접 선택한 7편의 대표작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설경구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이기도 하고, 이창동 감독님의 '박하사탕' 이후에 사람들이 제 이름은 잘 모르고 얼굴은 아시더라. 제 이름이 '박하사탕'인 적이 있었는데 '공공의 적' 이후에는 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새벽에 길을 걷다가 받은 웨이터 명함에 강철중이 적혀있을 정도로, 상업적으로 저를 크게 알린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미도'는 최초의 천만 영화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감시자들'은 책(대본)은 평범했는데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평범한 책을 템포와 리듬으로 극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이게 영화네'라고 생각했다. '불한당'은 저한테 '박하사탕' 이후에 저한테 한 번 변곡점을 준 작품이다. 변성현 감독은 콘셉트가 정확해서 원하는 각도가 있더라. 처음에는 너무 불편했는데, 찍고 나서 모니터를 보니까 좋더라. 모든 작품에 그걸 대입시켜서 연기할 수 있지만, '이렇게도 연기할 수 있구나'하고 느꼈다"며 "마지막으로 '자산어보'는 촬영하면서 긴장도 하고, 집중도 해야 하는데 촬영하는 과정이 너무 힐링이어서 섬에서 나오기 싫을 정도로 즐겁게 촬영한 영화라서 선택했다. 제가 고르지 않은 영화 중에서도 좋은 작품이 많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제가 나온 작품을 다시 찾아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무슨 작품, 무슨 역할을 했는지 일일이 생각하면서 30년이 지난 것 같지는 않고, 하나하나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30년이 된 것 같다. 제가 느끼기에는 부족한 작품도 있었던 것 같고, 굴곡이 많았는데 잘 버틴 것 같다. 근데 특별전 책자를 보면서 아련해지더라. 어찌 보면 서서히 마무리를 해야 할 때 일 수도 있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고 전했다.
이어 "마무리하는 과정이라는 건 끝을 간다는 의미는 아니고 싶고, 저도 이제 나이가 들고, 중견 배우를 넘어가고 있더라.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 선택도 그렇고, 배우로서도 잘 나이 먹어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저한테는 더 중요한 순간들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잘 나이 들어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설경구는 여전히 연기는 숙제라고 밝혔다. 그는 "특별전 이후에 생각이 더 깊어졌는데 연기는 여전히 숙제다. 영원히 못 풀 거라는 걸 알면서도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다. 누군가 연기를 배운다고 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연기가 배우는 거야?'라고 한다. 자기가 느끼는 게 가장 좋다. 비법도 없고, 정답도 없다"며 "만약 30년 후에 회고전을 한다면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는 제목으로 열고 싶다"고 밝혔다.
김나연 기자 ny0119@mtstarnews.com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