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거치는 신인 시절을 지나 봉준호, 박찬욱,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선택을 받는 배우가 되기까지. 이제는 월드 스타로 우뚝 선 배두나는 자신의 길을 차곡차곡 걸어왔다. 배두나는 단순히 연기를 하는 배우를 넘어 이제 좋은 어른, 좋은 선배의 역할을 고민한다.
'다음 소희'는 당찬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김시은 분)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 분)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한국 영화 최초로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선정되어 처음 공개된 후, 7분간의 기립박수를 끌어내며 전 세계 영화인으로부터 찬사를 끌어냈다.
배두나는 소희의 사건을 되짚어 나가는 복직한 형사 유진 역을 맡았다. 그는 '도희야'(2014) 이후 정주리 감독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게 됐다. 배두나는 "'도희야' 때부터 좋은 감독님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영화를 안 만드시니까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고, 궁금하기도 했다. 근데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시나리오를 봐달라고 하니까 너무 기뻤다. 두 번째로 연락을 주시는데 나에게 가장 먼저 보냈다는 말에 감사했다. 그때 '한 신만 나와도 한다'고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계속 나를 선택해준다는 게 기쁘다. 그렇다고 한 번밖에 작업하지 않은 감독님들께 섭섭하다는 건 아니고, 한 번 같이 작품을 했던 감독님들이 또 불러주면 '내가 연기하는 스타일을 좋아하셨구나. 현장에서 좋은 배우로 생각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칭찬받은 느낌이 든다.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 소희'를 처음 접한 배두나가 느낀 것은 '신선함'이었다.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당황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중간까지 읽고 '내 역할이 한 신 나오는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서는 구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면서 부담도 됐다. 한 명의 인물이 끌고나가다가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해 끌고 나가는 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감독님이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고 해서 지지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훨씬 효과적으로 느껴진다"며 "관객들은 앞에 소희가 왜 그렇게 되는지를 봤고, 유진이 소희의 일을 파헤쳐가면서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에 쓰여진 상황이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르니까 시나리오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것이 알고싶다'도 안 봤다. 제가 가장 부담스러웠던 지점은 실화라는 것보다 유진의 반응과 리액션 등 모든 것들이 관객을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속에서는 유진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추측할 뿐이다. 이에 배두나는 "유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는 신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빠졌고, 빠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의 유진의 이야기까지 알 필요는 없다. 굉장히 외로운 삶을 살았고, 엄마와 세상에 단둘 뿐이었던 인물이다. 최근에 엄마가 돌아가신 후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지쳐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는 배우가 정확하게 설명하는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좀 더 들여다봐 줄 수 있게 힘을 뺐다. 대본을 조목조목 분석하지는 않지만, 많이 읽고 생각한다. 또 저만의 서사를 쓰고, 연기에 돌입하는 편이다. 정주리 감독님은 인물의 전사를 한 두마디로 정리한다. 거기에 맞춰서 제 마음대로 생각하는 거다. 저는 혼자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또한 배두나는 "좋은 어른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음 소희'를 선택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어른이라는 자각도 별로 없고, 저 자신이 여전히 철딱서니 없게 느껴진다"면서도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고,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세대가 어떻게든 얘기해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하고, 또 행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배두나는 자신의 연기에 대한 평가가 박한 편이라면서도 현장에서는 반대로 행동한다고 밝혔다. 배두나라는 위치와 존재감 때문이다. 그는 "제 연기를 보는 걸 좋아하지 않고, 이상하게 박하다. 근데 현장에서는 반대로 행동한다. 요즘은 현장에서 제가 나이나 경험이 많은 경우가 많다. 특히 (김) 시은이 같은 어린 배우랑 할 때는 좋은 기운을 주기 위해서 제 연기를 보면서 '죽이지 않냐?'라고 말할 때도 있다"고 웃었다.
이어 "'고요의 바다'를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했으면 공유가 '이렇게 자기애가 넘치는 배우를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였다. 제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면서 스태프들이나 동료 배우들이 '내가 괜찮은 작품을 만들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주기 위해서다"라며 "이제는 선배의 역할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두나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에서 배우 이지은(아이유), '다음 소희'에서는 이번 영화를 통해 첫 장편 영화에 데뷔하는 김시은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두 배우의 이야기를 꺼내자 "한국 영화의 미래가 밝다"고 활짝 웃었다.
이어 "(이) 지은 씨도, (김) 시은 씨도, 제가 어렸을 때 어리바리하고 매일 울고 헤맸던 것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똑똑하고 당차다. 그래서 항상 놀랍다. '계속 진화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다들 너무 잘하니까 제가 연기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한국 영화는 더 잘 될 거라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배두나는 한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다음 소희'는 자랑스러운 작품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열심히 살았다. 성공에 대한 욕심이나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느낌보다는 내 필모그래피를 하나하나 가꿔가고, 나중에 남겨도 창피하지 않을 작품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다. 내가 나를 예뻐해 주고, 또 칭찬해줄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붕 떠서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은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차곡차곡 잘 걸어왔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나연 기자 ny0119@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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