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수사의 구멍을 상상력으로 채운 정치 미스터리 물"
해외 평론가들, 정치 스릴러의 클래식 올리버 스톤의 'JFK'와 알란 J. 파큘라의 '대통령의 음모' 떠올렸다
영화 '암살자들' 해외 리뷰


영화 '암살자들'이 오는 23일 국내 개봉을 앞둔 가운데,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먼저 본 해외 평론가들이 1974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을 놓고 헐리우드 정치 스릴러의 레전드 급 영화인 올리버 스톤의 'JFK'와 앨런 J. 파큘라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떠오르게 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을 소재로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살아남았지만 부인 육영수 여사가 총격을 받아 숨졌고, 현장에 있던 고등학생 장봉화도 목숨을 잃었다. 영화는 당시 사건을 둘러싼 공식 발표와 의문점을 바탕으로 형사 철구(유해진),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20일(현지시간) 공개한 리뷰에서 '암살자들'을 "실제 암살 사건을 다룬 한국의 팝콘 스릴러"로 소개하며 올리버 스톤의 'JFK'를 떠올렸다. 버라이어티의 영화평론가 시단트 아들라카는 영화가 공개 수사에 남겨진 '구멍'을 상상력으로 채워 정치 미스터리로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JFK'는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을 둘러싼 의문을 추적하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91년 영화다. 실제 사건에 대한 공식 설명에 의문을 제기하고 여러 가능성을 파고드는 방식 때문에 정치적 음모론을 소재로 한 정치스릴러의 대표적인 영화로 꼽힌다. 1992년 골든글로브 감독상, 아카데미 촬영상 편집상등 2개부분을 수상했다.
버라이어티는 '암살자들' 역시 1974년 사건에서 설명되지 않은 부분을 하나씩 들춰내며 관객의 의문을 키운다는 점에서 'JFK'를 연상시킨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버라이어티가 주목한 것은 '누가 범인인가'라는 결과보다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영화 속 기자들과 경찰은 관계자를 찾아가 질문하고 문서를 들여다보며 공식 발표와 맞지 않는 정황을 좇는다. 버라이어티는 이런 수사 과정을 따라가면서 사건의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고, 그 과정에서 정부 기관과 언론사 내부의 압박까지 겹쳐진다고 설명했다.
스크린랜트는 "미제로 남은 총알, 모순되는 증거, 석연찮은 정황까지, 사실상 한국판 케네디 암살 사건을 극화한 것 같다"고 평했고 캐나다 매체 NEXT도 '암살자들'이 1974년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케네디 암살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유해진이 연기한 형사 철구는 사건 당일 암살범이 행사장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했던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는 상급자의 지시로 행동을 멈춰야 했고, 사건이 벌어진 뒤에는 오히려 책임을 추궁받는다. 버라이어티는 이 인물이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들의 추적을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짚었다.
박해일이 연기한 사회부장 재환은 이미 세상에 지친 베테랑 기자지만 사건을 놓지 않고, 이민호의 신입 기자 영일은 현장에서 총격을 직접 목격한 뒤 사건의 의문을 좇는다. 여기에 KCIA의 신문사 압박과 검열이 더해지면서 기자들의 취재 과정 자체가 스릴러의 긴장감을 만든다.
다른 해외 평론가들의 시선은 'JFK'와 함께 또 다른 고전 정치영화를 소환한다.
프랑스어권 리뷰에서는 올리버 스톤의 'JFK'와 함께 기자들의 탐사 취재를 그린 알란 J. 파큘라 감독의 1976년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 All The President's men: '대통령의 음모'라는 한글제목도 있음 )를 언급했다. 인리뷰온라인 역시 "이 영화는 JFK식의 과도한 편집증적 상상력으로는 넘어가지 않는다. 그 영화 특유의 화려하고 과잉된 스타일은 아예 배제한 채, 대신 탄탄한 사실주의를 택했다"고 짚었다.
즉 음모론을 화려하게 펼쳐 보이는 올리버 스톤식 연출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차분하게 취재 과정을 따라가는 쪽에 가깝다는 것. 넥스트매거진도 박해일이 연기한 베테랑 편집장 캐릭터를 두고 콕 집어 "'올 더 프레지던트 맨'의 분위기를 준다"고 표현하며, 정부의 폭력적 탄압 속에서도 끝까지 증거를 좇는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밖에 정치적 음모를 다룬 '패럴랙스 뷰'까지 거론하며 영화의 계보를 짚는 평도 있었다.
'대통령의 사람들'은 'JFK'와 결이 다르다. 'JFK'가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얽힌 여러 가능성을 공격적으로 파고드는 음모론적 정치 스릴러라면, '대통령의 사람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한 두 기자가 자료와 증언을 하나씩 확인하며 권력의 은폐를 추적하는 저널리즘적 영화다. 더스틴 호프먼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으로 1977년 아카데미 영화상 조연상등 총 4개 부문을 수상했다.
허진호 감독은 앞서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대통령의 사람들'처럼 기자들이 권력에 맞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며,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을 통해 1974년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해외 평단이 '암살자들'을 후자에 가깝다고 본다는 건, 이 영화가 자극적인 음모론 폭로극이 아니라 '진실을 좇는 사람들'에 방점을 찍은 영화로 읽혔다는 뜻이다.
또다른 해외 리뷰에서는 두 영화를 다 거론하며 '암살자들'이 'JFK'의 정치적 미스터리와 '대통령의 사람들'의 탐사보도 방식을 함께 끌어온 작품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더홀로파일스는 "JFK와 '대통령의 사람들' 양쪽의 그림자가 다 보인다"고 평했다.
영화는 실제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버라이어티는 영화가 사건의 빈틈에 허구를 끼워 넣으면서도 기자와 경찰이 문서와 증언을 좇는 과정을 촘촘하게 쌓아 올려 하나의 정치 스릴러로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영화가 제시하는 음모와 가설은 실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기보다, 사건의 빈틈을 바탕으로 구성한 영화적 상상이라는 점도 짚었다.
인리뷰온라인은 "박해일이 이끄는 기자단이 공식 발표의 모순을 끈질기게 파고들지만, 정부 요원들에게 매번 구타당하며 좌절한다"며 이 관계가 영화의 긴장을 지탱한다고 평했다. 넥스트매거진 역시 "정부의 잔혹하고 폭력적인 언론 탄압 속에서도 진실을 좇는 기자들의 이야기이자, 공권력의 공식 결론을 믿지 않는 지역 경찰의 탐정극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물론 호평만 있는 건 아니다. 일부 매체는 "긴 러닝타임으로도 다 소화하지 못할 만큼 많은 서브플롯을 욱여넣었다"는 아쉬움을 짚기도 했다. 다만 이런 지적을 하는 매체들도 공통적으로 "영화의 힘은 수사적 정교함보다 정서적·시민적 울림에서 나온다"고 평가하며, 단점보다는 메시지에 더 무게를 실었다.
'암살자들'은 지난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이후 해외 매체들은 긴박한 스릴러라는 평가와 함께 기자와 경찰이 사건의 진실을 좇는 과정, 1970년대 한국의 정치적 분위기를 재현한 방식 등을 주요하게 언급했다. 영화는 현재 사전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23일 국내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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