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PD 와 임감독의 음악속의 영화 영화속의 음악]

1997년, 홍콩은 중국에 반환될 예정이었다. 홍콩인들은 불안한 심정으로 해외로 떠나거나 돈을 벌기 위해 몰려온 본토인들을 맞이해야 했다. 1996년에 제작된 영화 ‘첨밀밀’은 1986년부터 1995년까지 10년 동안 돈을 벌기 위해 홍콩에 온 ‘촌스런’ 본토인 여소군(여명)과 이교(장만옥)의 사랑을 담고 있다.
영화는 여소군이 열차를 타고 홍콩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중국 무석 출신인 여소군은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홍콩에서 고향에 있는 약혼자 생각을 하며 허드렛일을 마다않고 돈을 번다. 와중에 억척스럽고 약삭빠른 이교(장만옥)를 만나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것은 등려군의 노래였다.
하지만 홍콩은 만만치 않았다. 맥도널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주식을 해도 돈을 벌진 못했다. 그러던 중 이교가 아이디어를 낸다.
'등려군!'
여소군과 이교는 등려군의 노래가 담긴 복제테이프를 팔아 돈을 벌기로 한다. 하지만 테이프는 팔리지 않았고 둘은 완전히 망한다. 그리고 그날 밤 함께 자게 된다.
하지만 여소군에게는 고향에 두고 온 약혼자가 있었다. 사랑과 신뢰 사이에서 고민하던 여소군은 약속을 지키기로 선택하고 약혼자와 결혼을 한다. 이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여소군의 행복을 축하해주는 일이었다.
여소군이 소박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이교는 가진 돈을 모두 잃고 안마 시술소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주먹세계의 ‘형님’ 구양표를 만나 동거를 한다.
거친 세계에서 살고 있는 구양표는 이교의 위로가 필요했고, 이교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누가 봐도 돈을 빌미로 불결한 거래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양표는 이교를 이해하고 배려했고 이교 역시 구양표를 신뢰했다.
여소군의 결혼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여소군은 ‘뒤늦게’ 이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자 이교는 혼란스러워한다. 오랜시간 여소군과의 사랑을 꿈꿔왔지만 그렇다고 구양표를 떠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교에게 구양표가 던진 말은 뜻밖이었다.
"그 사람에게 가."
구양표는 이교에게 여소군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거친 세계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과 함께하기 보다는 소박하지만 진실된 사랑을 찾아가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교는 망설인다. 구양표가 보여준 배려와 신뢰가 여소군의 사랑만큼이나 진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구양표가 사건에 연루되어 미국으로 밀항을 하기로 한 날, 이교는 여소군을 버리고 구양표를 따라 밀항을 한다. 여소군이 약속을 선택했듯이 이교 역시 구양표와의 신뢰를 선택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이 영화에는 여소군과 이교의 사랑 뿐만 아니라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여소군 고모의 사랑, 그리고 창녀와 미국 영어강사와의 사랑도 존재한다. 영어강사는 돈으로 창녀를 샀지만 훗날 창녀가 에이즈에 걸렸을 때 함께 죽음을 맞이하러 태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죽음 앞에선 돈도 직업도 사랑도 모두 사라지고 오직 삶, 그리고 마음 속 어둠을 메워줄 단 한사람만 필요하니까.
이교가 떠났지만 여소군은 감정을 속이며 결혼생활을 유지하기엔 지나치게 순박했다. 결국 이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한 후 모든 재산을 아내에게 주고 이혼을 한다. 그리고 처음 홍콩에 왔을때 처럼 홀홀단신 뉴욕으로 향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자본주의가 발달된 도시, 뉴욕. 여소군은 식당에서 다시 ‘허드렛일’을 시작한다.
한편 구양표를 사고로 잃고 뉴욕에서 근근이 지내던 이교는 불법체류자 신세로 강제압송 당하던 도중 자전거를 타고 배달가던 여소군을 발견한다. 이교는 필사적으로 탈출하여 여소군을 쫓아가지만 놓친다.
다시 한 번 세월이 흘러 뉴욕 관광가이드로 자리를 잡은 이교와 식당에서 일하는 여소군. 둘의 재회를 이끌어주는 것은 다름아닌 등려군의 사망뉴스다.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도시 뉴욕, 길거리 전파상에서 나오는 등려군의 사망 소식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여소군과 이교밖에 없다. 여소군과 이교는 이렇게 ‘우연히’ 다시 만난다.


로미오와 쥴리엣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하지만 여소군과 이교는 사랑대신 약속과 신뢰라는 도리를 지켰다. 그 결과 로미오와 쥴리엣은 목숨을 잃었고, 여소군과 이교는 다시 만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사랑대신 약속과 신뢰라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지켰던 두 사람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 것일까?
연못에 살고 있는 물고기는 연못 밖의 세상을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시간 밖의 세상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고 우리에게 남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뿐이니까.

20년전 1995년 5월 8일, 등려군이 죽었다.
여소군과 이교처럼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지난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 우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길.

임성운 영화감독 caraxx@gmail.com
연세대학교 졸업
2008 영화 달려라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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