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아시아협회(PAS)가 1월중 5개국 6개팀(베트남, 인도네시아 가자마다대, 인도네시아 국립대, 태국, 우간다, 동티모르)의 제 20기 동계 월드프렌즈 청년봉사단을 파견, 각국에서 지역사회 봉사활동, 기능교습 및 문화교류 활동을 전개했다. 스타뉴스는 동계방학기간을 활용하여 문화교류의 일선에 나선 대학생 봉사단원들의 현장 체험을 그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소개한다.

카렌족은 미얀마 및 타이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카렌족은 태국에 전체적으로 퍼져 있지만 주로 치앙마이 등 북부지역에 많이 거주한다. 특히 산에 근접해서 거주하는 이유는 평화롭고 조용해서라고 했다. 우리가 3주간 머물렀던 지역은 쑤언풍으로 '벌의 정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확실히 이곳에는 벌과 꽃, 그리고 나무가 많다. 우리가 3주간 생활한 숙소 NAWA church 주변에는 수많은 나무와 맑은 하늘이 드넓게 보인다. 닭, 개, 고양이, 칠면조, 소, 돼지 등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있었다. 그리고 태양보다도 해맑게 우리를 맞이해 준 동네의 어린 아이들. 나는 아직도 그 표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티 없이 깨끗하고 순수한 얼굴로 웃으며 낯선 얼굴의 나에게 기꺼이 먼저 다가와 주었다.
카렌족(Karen)은 목에 링을 두르고 있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여자들은 목에 약 4~5kg에 육박하는 금속 링을 7세 때부터 목에 장착하기 시작하여 5년마다 1개씩 추가, 목의 길이를 늘인다. 목이 길어 롱넥(long neck)족이라고도 불리지만 사실은 링 무게 때문에 어깨에 쇄골이 주저앉아 목이 길어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온전히 링 무게를 목과 어깨로 버티는데 처음에만 아프고 점차 익숙해져서 괜찮다고 했다.
링을 목에 차는 이유는 고산지대 동물들이 여자들의 목을 물어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설과 긴 목이 미의 기준이라는 설 두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태국 카렌족과의 인터뷰를 진행해 본 결과, 잘못된 생각이고 큰 오해였다.
옛날에는 전쟁시 안전을 위해 링을 목과 무릎에 둘렀다. 적병이 여자에게 몹쓸 짓을 하기 때문에 목에 링을 달아서 징그럽고 못나 보이게끔 한다. 전쟁 시 싸움을 하는 사람과 남자들은 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여자들만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관광객 유치를 위한 목적으로 변질되었다. 링을 하게 되면 목이 늘어나기 때문에 나중에 링을 뺐을 경우에 목이 처진다. 건강상의 문제가 심각해서 요즘은 하지 않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은 관광수익을 남기기 위해서, 그리고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링을 착용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이런 모습을 봉사기간 중 볼 수 없었다.

카렌족 사람들은 집 앞에 물을 놔두는 풍습이 있다. 이유는 누구든지 이 길을 지나갈 때에 시원하게 마시라는 의미이다. 또한 방문자가 집에 오면 그 사람을 가족처럼 보호해준다. 집 밖의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준다. 결혼을 했을 때에는 남자가 여자 집에서 3~4년 정도 일하며 함께 산다고 한다.
현재 태국에 현존하는 카렌족의 인구수가 약 6백만 명이라고 들었다. 이중 아이디카드(신분증)를 가지고 있는 카렌족의 수는 5백만 명, 가지고 있지 않은 수는 1백만 명이라 한다. 그리고 아이디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상당히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아이디카드를 가지고 있는 카렌족은 원래부터 태국에 살았던 이들이고 버마시절(1998년 미얀마로 개칭)에 태국으로 넘어온 카렌족은 아이디카드가 없을뿐더러 태국 정부와 여전히 적대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가스와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태국과 미얀마의 갈등 탓에 미얀마에서 넘어온 카렌족은 태국에서 아이디카드를 대부분 받지 못한다고.
예전 버마시절에는 소수민족간 전쟁도 많았다. 인구의 68%를 차지하는 버마족 외에 샨족, 카렌족, 카친족 등 20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미얀마는 1948년 독립으로 버마족이 정권을 잡은 이래 소수민족과 정부군 사이의 무장 독립투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카렌족은 미얀마의 소수민족 중 하나로 태국의 서북방면과 미얀마의 동남방면의 국경지역에 넓게 거주하고 있다. 미얀마 동부지역에서는 자유와 자치권을 쟁취하려는 소수 민족 카렌족과 미얀마 정부군간의 내전이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카렌족은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으나 중앙정부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미얀마군은 최근까지도 카렌족 거주 지역에서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는 초토화 작전을 전개하는 등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1948년부터 이어진 소수 민족 카렌족과 정부군간의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내전이다.
영국은 미얀마를 더욱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민족 이간질 정책을 펼쳤다. 버마 민족을 탄압하면서 동시에 카렌족을 부각시켜 버마족의 분노를 영국에서 카렌족으로 치환시켰다. 미얀마의 카렌족 주민들은 태국과의 접경지역 산간 밀림지대에서 대나무 움막을 짓고 야생의 먹을거리를 찾아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란다.
태국 정부가 발행하는 아이디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카렌족은 교육, 일자리, 병원 등에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아이디카드가 없으면 소용없다. 즉 삶의 질 자체가 없다. 이번에 우리 PAS 태국팀이 교육을 한 학교의 거의 80%가 카렌족이었다. 카렌족끼리는 관계가 좋다. 그러나 아이디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교류하는 사실을 정부가 알면 이들은 위험해지고 또는 잡혀간다. 아이디카드가 없는 학생들은 아이디카드도 받고 싶고, 대학도 가고 싶다고 교회나 주변 어른들에게 부탁을 한다. 그러나 어른들조차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본래 태국의 카렌족이 아닌 이상, 아이디카드를 받지 못한 카렌족은 앞으로도 영원히 아이디카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카렌족에 대해서 조사하고 공부한 후에 이 친구들을 직접 마주해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번 기사에 정보를 제공해 준 짜렌 목사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좋은 곳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만일 카렌족의 삶이 궁금하다면 여권도 없고, 돈도 없이 외국에 홀로 떨어진 상황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의 삶과 카렌족의 삶을 비교해보면서 지나간 나의 행동들과 생각들을 반성했다.
아이디카드가 있다한들 카렌족이라 하면 높은 교육,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아무리 실력있고 높은 학력을 쌓아도 좋은 직업을 얻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이는 결혼까지 이어진다. 카렌족은 수입에 한계가 있어서 태국인들을 포함한 일반 사람들이 기피한다. 때문에 카렌족은 대부분 카렌족끼리 결혼을 한다. 카렌족끼리 결혼은 자연스럽게 그 자녀들에게까지 가난을 대물림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카렌족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제3의 세계, 즉 다른 나라로 나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해외로 나가 새로운 삶을 살라지만 이들이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선 소중한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무국적자인 그들은 그 어떠한 교통수단도 이용할 수가 없다. 오로지 두 발로만 이동을 해야 한다.

그들의 비참한 처지와는 상관없이 이곳에 와서 만난 아이들의 첫인상은 마냥 예뻤다. 크고 맑은 눈망울, 그리고 깨끗한 미소. 그러나 카렌족에 대해 알고 난 후, 나에게 카렌족이라고 말해주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처음에 들었던 감정이 귀엽고 사랑스러움이었다면 이후엔 안타까움에 목이 메었다. 그러나 정작 이 친구들은 아무런 걱정이 없는 듯한 표정을 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며 우리들의 커리큘럼을 따라와 주었다. 여기서 나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행복의 감정을 알게 되었다. 봉사를 하러 갔지만 오히려 내가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카렌족 아이들은 보통 카렌어를 쓴다. 이들 중에서도 태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태국어, 카렌어를 모두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태국어와 영어 등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카렌족의 어린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혼동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카렌의 역사가 아닌 태국의 역사를 배우기 때문이다. 짜렌 목사님은 학교에서 카렌족 아이들이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무시를 당한다고 말했다. 카렌족 아이들은 학교에서 10분, 15분가량의 짧은 수업을 받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방치를 당하다시피 한다고 한다.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라 시간을 채워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또한 태국 정부와 경찰이 마약을 입수해서 젊은 카렌족에게 밀매를 시키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체포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살하기도 한다고 한다. 경찰이 카렌족에게 마약 밀매범의 혐의를 씌우기 위해서 일부러 젊은 카렌족 사람에게 마약을 밀수를 종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한정되어있는 카렌족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이 속임수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카렌족의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은 이러한 고통 속에서 끊임없는 압박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인터뷰한 짜렌 목사님께서는 이러한 현실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젊은 카렌족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젊은 카렌족 사람들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자존감이 그들을 배고프게 하니까. 자신도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가족에게 교육을 받았는데 할머니가 2가지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첫째, 리더를 존경하라. 선생님을 존경하라는 것이다. 둘째, 자연을 존경하라.
20년 동안 쑤언풍 지역을 18번 방문한 우리 PAS의 젊은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문화와 태국의 문화를 서로 보여주고 가르치면서 교류를 통해 더욱 가까워져 좋았다. 그리고 PAS의 리더에게 감사를 표한다. 리더가 한국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계획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 학생들이 한국에서만 일하며 한국만을 개발하지 말고 해외에 나아가 그곳에서 그 나라를 발전시키기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이어 "PAS에서 온 팀을 만나면 90%는 만족한다. 그러나 나머지 10%는 아쉬운 점과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짧은 바지와 짧은 치마를 입는 걸 보고 한국에서는 옷감이 부족한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둘째, 지속성(연속성)이 부족하다. 먼저 태권도를 선보이고 3주간 교육을 한다고 하면 좋겠지만 시간적 여유와 그 외의 여건이 부족하여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셋째, 카렌 학생들이 한국학생들을 그대로 따라한다. 메이크업, 패션 등을 똑같이 따라하면 태국의 전통문화가 사라질까 두렵다"고 덧붙였다.
짜렌 목사님의 그런 지적을 들으며 아직도 우리의 활동에는 개선할 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비슷하지만 다른 서로의 음식을 나눠 먹고 서로의 옷들을 바꿔 입어보며 태권도와 부채춤을 알려주고 타이댄스와 무에타이를 배워본 시간들 모두가 너무너무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3주간 끊임없이 서로 나눈 온기들. 우리는 결코 다르지 않았다.
슬픈 과거, 슬픈 현재의 카렌족이 미래에는 행복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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