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를 물방울 무늬로 물들인 일본 현대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7세.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과 재단은 지난 27일 공식 성명을 통해 그가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1929년 일본 마쓰모토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보수적이던 전후 일본 사회에서 이례적으로 10대 시절부터 전문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정착한 그는 하얀 바탕에 촘촘한 붓질을 반복해 그물망 같은 무늬를 그려낸 '무한의 그물(Infinity Nets)' 연작으로 처음 주목받았다.
이후 수천 개의 남근 형상 오브제를 일상 사물에 뒤덮은 '축적 조각' 시리즈로 팝아트와 미니멀리즘 양쪽에서 선구자로 자리매김했고, 1960년대 후반에는 반전 시위 성격을 띤 알몸 퍼포먼스 '해프닝'을 벌이며 뉴욕 예술계의 이단아로 이름을 알렸다.
1973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이후 심한 환각과 공황 증세에 시달리다 1977년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했고, 이후 평생을 그 병원 인근에 거처를 두고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소설과 시집도 여러 권 펴낸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온몸을 물방울로 뒤덮거나 끝없이 반사되는 거울로 채운 '무한 거울방(Infinity Mirror Room)' 설치작업을 다시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이후 전 세계 미술관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야 겨우 45초간 입장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로 자리 잡으며 '인생샷 명소'의 원조가 됐다.
21세기 들어 일본 현대미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의 작품값도 치솟았다. 2014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960년작 '무한의 그물' 연작 중 한 점이 710만 달러에 낙찰되며, 생존 여성 작가 작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이런 열풍을 스스로 '쿠사마니아'라 부르기도 했다.
화장품부터 자동차까지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고, 물방울 무늬 옷과 형광색 단발머리 가발 차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 됐다. 2006년에는 일본 왕실이 후원하는 국제 미술상인 프레미엄 임페리얼상을 받았고, 2017년에는 도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개관했다.
2017년 한 매체를 통해 그가 2002년 펴낸 자서전에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표현이 여러 차례 담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문제는 2023년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개인전을 계기로 다시 불거졌고, 그는 당시 공개 사과했다.
쿠사마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피카소를 데려와라, 마티스를 데려와라, 누구든 데려와라. 나는 물방울 하나로 그들 모두와 맞설 것이다." 유족 관련 정보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