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베어스가 집필한 에이스 복귀 시나리오가 고척스카이돔에서 개봉을 앞뒀다.
두산은 1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한국시리즈 대비 훈련을 진행했다. 불펜에는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지난달 26일 어깨 피로를 이유로 전열에서 이탈한 아리엘 미란다(32)였다. 그동안 휴식을 취하던 미란다는 지난 9일 30m, 10일 45m 11일 60m 캐치볼을 하며 복귀를 준비했다. 이날은 불펜에서 33개의 공을 던졌다.
흔히 부상을 당한 투수들의 복귀 과정은 거리별 캐치볼, 하프 피칭, 불펜 피칭, 라이브 피칭, 실전 투입 순으로 이뤄진다. 하프 피칭부터 전력투구가 가능한 만큼 빠르면 1차전 투입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김태형 감독은 "1차전에 나갈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선발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3차전 정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모르겠다. 본인이 더 일찍 된다고 하면 일찍 투입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러면서 "저렇게 의지가 강한데 어쩌겠나. 감독으로서 꺾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웃었다. 아직 정확히 복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지만, 두산이 여기까지 올라온 과정을 돌아본다면 김태형 감독의 반응은 당연했다.
두산은 포스트시즌에 돌입하면서 과감한 전개가 돋보이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올 시즌 정규 시즌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3의 뛰어난 성적에 KBO리그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225개)이라는 임팩트까지 확실한 '주연' 미란다를 엔트리에서 아예 배제한 것이다.
또 다른 외국인 투수 워커 로켓(27)이 부상으로 이탈해 선발진이 휑하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사실상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미란다를 볼 수 있는 상황은 한국시리즈 진출뿐이었고, 외국인 투수 없이 한국시리즈에 간다는 것은 확률적으로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동안 KBO리그에서 한 팀당 외국인 선수를 3명 보유할 수 있었던 때는 2001~2002년, 2014~2019년(3명 보유 2명 출전), 2020~2021년(3명 보유 3명 출전)으로 10시즌뿐이다. 그 10시즌 동안 가을 야구를 경험한 47개 팀 중 외국인 투수 없이 포스트시즌에 나선 팀은 올해 정규 시즌 4위 팀 두산과 5위 팀 키움 히어로즈 두 팀뿐이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두산에 많은 이들은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두산에는 외국인 투수가 없어도 가을 무대 체질인 주연 배우, 잠재력 충만한 신스틸러 그리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명연출이 있었다.
타선에서는 '정가영(정수빈 가을 영웅)' 정수빈(31)은 올해도 타율 0.353(34타수 12안타) 6타점으로 주연 배우다운 활약을 했다.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33)는 지난 2년간 가을 무대에서만큼은 타율 0.203으로 실패를 맛본 흥행 부도 수표였다. 그러나 올해는 정수빈과 테이블세터를 이루며 타율 0.469(32타수 15안타) 1홈런 12타점을 마크하고 투톱(Two Top) 주연으로 올라섰다.
마운드에서는 홍건희(29)와 이영하(24)가 역투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0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홍건희는 4경기 7⅔이닝 동안 134구, 이영하는 5경기 11이닝 동안 181구를 던지며 두산 마운드를 지탱했다. 이들을 이끄는 김태형 감독은 한 박자 빠른 교체와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유연한 경기 운영을 보여주면서 역대 처음으로 한 팀으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감독이 됐다.
이렇듯 와일드카드 팀 첫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쓴 두산에 또 다른 주연 배우 미란다가 더해진다. 이미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깬 '미라클' 두산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2021년 두산의 시나리오 마지막 장은 14일부터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한국시리즈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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