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단법인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가 폭염 속 경기 운영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든 가운데, 리그 일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현행 시스템은 선수 생명에 위협이 된다는 지적이다.
김훈기 선수협 사무총장은 "WBGT(습구흑구온도)가 35도를 넘기면 이미 응급 상황"이라며 "선수의 경기력보다 생명이 먼저다. 지금은 보호 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WBGT는 단순 기온이 아닌 습도, 복사열, 바람 등을 종합해 측정하는 고온 스트레스 지표다. 선수협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국내에서 1000건 이상의 경기와 훈련이 있었지만, WBGT 35도를 넘긴 공식 리포트는 단 2건에 불과했다. 실제론 미신고 사례가 10건 이상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 큰 문제는 혹서기에도 낮 경기 일정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 대회까지 모두 빽빽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김훈기 사무총장은 "도저히 회복할 틈이 없다는 얘기가 선수들 사이에서 나온다"며 "무더위 속 강행군은 곧 부상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너무 많은 경기가 낮 시간대에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루마니아는 연맹과 루마니아 선수협(AFAN)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통해 40도가 넘는 불볕더위 속에 킥오프 시간을 오후 7시, 10시로 조정했고, 쿨링 브레이크도 4회로 늘렸다. 일본은 2024년 5월 21일 (JFA 공식 웹사이트 공지) 열사병 예방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전·후반 각각 3분간 휴식 시간을 의무화했으며, WBGT 값을 실시간 측정하며 리그를 운영 중이다.
호주는 WBGT 28도 이상이면 경기 연기 또는 일정 변경을 권고하며, WBGT 26–27.9℃ 또는 기온 ≥31℃일 경우 각 전·후반당 90초 음료 휴식을 시행한다.
스페인의 경우 협회와 리그 및 선수협 간 협약을 통해 경기 킥오프 시작시간을 늦추는 등 규정을 적용중이다.
아울러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는 최근 11개 항목의 폭염 대응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WBGT 28도 초과 시 경기 중단, 26도 초과 시 쿨링 브레이크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또 FIFPRO는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선수에게 열 적응 훈련을 지원하고, 방송사는 정오·오후 시간대 경기를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청소년과 여성 선수에게는 더 각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또한 규정으로 폭염에 대한 대비가 존재한다. 프로축구연맹은 2025시즌부터 폭염 시 경기를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을 새롭게 도입했다. 아울러 K리그에서 2018년부터 실시한 쿨링 브레이크(수분 흡수를 위해 경기를 잠시 중단하는 시간)를 실행 중이다. 대부분 전·후반 1회씩 실시했는데, 폭염엔 부족하다는 것이 선수협의 진단이다.
김훈기 사무총장은 "초·중·고 아마추어 선수들도 인조잔디 구장에서 40도가 넘는 환경을 감내하고 있다"며 "이들은 미래의 K리그와 WK리그의 주역이다. 지금 보호하지 않으면 그 미래도 없다"고 경고했다.
또 김훈기 사무총장은 "현재 많은 K리그 지도자와 선수들이 선수협에 선수 보호차원에서 킥오프를 늦췄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예 해가 떨어진 후에 킥오프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그리고 아마추어 대회는 16시부터 한다고 들었는데 너무 시작 시간이 빠르다. 경기장을 더 많이 확보해서 경기 시간을 늦추는 게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김훈기 사무총장은 "폭염 대응 매뉴얼이 있다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쉴 수 있는 그늘, 몸 온도를 낮춰줄 수 있는 라커룸을 비롯한 휴식 공간 등이 보장되지 않는 곳이 부지기수"라며 "암스테르담 총회에서도 '경기 시작 전 WBGT(습구흑구온도) 측정 의무화'와 '폭염 경보 시 경기 시간·장소 재조정' 방안이 수차례 논의됐다"라면서 "이제는 말 잔치가 아니라, 실질적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동료이자 미래 세대인 선수들을 더는 뜨거운 그라운드 위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선수협은 혹서기 경기 운영 개선을 위해 나설 방침이다. "선수를 뛸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안전하게 뛰게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게 선수협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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