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객관적인 전력 차가 컸다. 기적으로 표현될 승리보다는 유의미한 소득이 더 필요했다. 지더라도 경쟁력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지난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전은 그래서 더 아쉬움이 컸다. 최근 시험대에 올랐던 스리백 전술의 한계만 확인했을 뿐, 그 외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탓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부터 격차가 컸다. 브라질은 6위, 한국은 23위였다. 한국이 FIFA 랭킹 한 자릿수 팀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지난 2022 FIFA 월드컵 16강 브라질전 1-4 패배 이후 처음이었다. 6만명이 넘는 홈 이점이 있더라도 전력 차는 부정할 수 없었다. 해외파가 많아진 만큼 한국 경쟁력도 그만큼 올랐으나, 브라질 대표팀을 구성하는 선수들의 면면과 비교하긴 어려웠다.
경기 전부터 브라질 매체들은 일제히 4-2-4 포메이션을 점쳤다. 원톱이나 투톱 등이 아닌 공격자원만 전방에 4명을 두는 전술을 가동할 거란 전망이었다. 실제 이날 브라질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와 호드리구(이상 레알 마드리드), 마테우스 쿠냐(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스테방(첼시)이 전방에 포진했다. 브루누 기마랑이스(뉴캐슬 유나이티드)와 카세미루(맨유)가 중원에서 이들을 지원사격했다.
초반부터 한국은 수세에 몰렸다. 홍명보 감독은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를 중심으로 김주성(산프레체 히로시마)과 조유민(사르자) 스리백 외에 이태석(아우스트리아 빈)과 설영우(츠르베나 즈베즈다)까지 내려서는 사실상 파이브백 형태로 맞섰다. 그러나 두텁게 쌓은 수비벽은 브라질 선수들에게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개인기로 한국의 압박을 쉽게 뚫었고, 절묘한 침투와 스루패스로 수비라인을 무력화시켰다.
그야말로 무기력한 흐름 속 경기 흐름도 빠르게 기울었다. 수비와 중원에서의 실수까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흐름이었다. 결국 후반 4분 만에 스코어는 0-4로 벌어졌다. 제대로 된 슈팅조차 기록하지 못하던 한국은 후반 중반 들어서야 조금씩 공격 기회를 잡았으나, 이는 한국이 직접 활로를 찾았다기보다는 승기를 잡은 브라질이 안정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반사이익에 가까웠다.


문제는 벤치 대응이었다. 이날 한국은 브라질과 대등하게 맞서다 갑자기 흐름을 내준 게 아니었다. 경기 초반부터 주도권을 내준 채 경기 내내 상대에 끌려갔다. 특히 후반전엔 시작 4분 만에 내리 2골을 실점하며 와르르 무너졌다. 이처럼 일방적으로 당하는데도 벤치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상대 흐름을 끊어내기 위한 벤치 대응이 사실상 전무했던 셈이다.
교체 카드마저도 같은 포지션 선수들끼리 '맞교체'에 가까웠다. 이재성(마인츠05) 대신 김진규(전북 현대)가 투입되면서 옌스 카스트로프(묀헨글라트바흐)가 소속팀처럼 2선으로 전진 배치된 게 그나마 눈에 띄는 변화 정도였다. 브라질이 힘을 빼면서 이후 추가실점은 1골로 막았을 뿐, 평가전이 아닌 월드컵 등 실전 무대였다면 5골 차 이상으로 격차가 벌어질 수도 있었을 경기였다.
'방관'에 가까웠던 벤치 대응 덕분에 한국은 이날 사실상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흐름을 바꾸기 위한 변화는 실험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90분 내내 같은 전술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다 경기를 마쳤다. 강팀을 상대로 사실상 파이브백 형태의 전술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현주소' 정도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향후 월드컵 등 실전 무대에서 비슷한 양상에 몰렸을 때 이에 대응할 방법을 하나라도 확인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객관적인 전력 차, 그리고 평가전의 의미를 고려하면 더 신경을 써서 준비해야 했을 카드들이 전무했던 셈이다. 브라질전을 마친 뒤 "얻은 게 없다"는 비판 목소리가 이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심지어 이날 상대인 브라질마저 한국을 상대로 경기를 주도하면서도, 경기 내내 전술을 바꿔가며 다양한 실험을 이어갔다. 브라질 매체 글로부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스코어가 크게 벌어진 뒤 새로운 선수들을 실험했다. 포메이션도 4-2-4에서 4-3-3, 4-4-2로 전환하면서 경기를 계속 주도했다. 흠잡을 데 없는 경기력이었다"고 평가했다. 일본 역시도 지난달 미국 원정 2연전에서 스리백과 포백을 혼용하며 시험대에 올리기도 했다. 홍명보호 벤치 대응은 그래서 더 아쉬웠다.
홍명보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상대 공격수들이 스트라이커보다 내려와서 미드필더 역할을 하면서 빠르게 공격 전환을 하며 올라왔다. 수비수들이 맨투맨을 하기보단 밀려 내려오는 상황이었다"며 "중간에 포백으로 바꿔볼 생각을 했지만, 이 경기는 선수 구성도 그렇고 파이브백으로 경기를 마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덕분에 브라질전은 아무런 소득조차 없이, 그저 기록적인 참패만 당한 경기로 남게 됐다. 한국이 A매치에서 0-5로 대패한 건 2001년 프랑스전 이후 무려 24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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