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가장 비싼 투수라고 하지만 가성비가 좋은 투수라고 생각한다."
LA 다저스에 우승 트로피를 안긴 야마모토 요시노부(27)를 두고 야구 팬들 사이에 도는 우스갯소리다. 한국 야구 대표팀의 투수조 조장 원태인(25·삼성 라이온즈)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태인은 2일 고양시 경기도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린 대표팀 첫 소집 훈련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야마모토에 대한 극찬을 이어갔다.
일본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상을 3년 연속 수상한 뒤 메이저리그 진출에 나선 야마모토는 지난해 계약 기간 12년 3억 2500만 달러(4649억원)에 다저스와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18경기에서 7승 2패 평균자책점(ERA) 3.00을 기록한 야마모토는 올 시즌 30경기에서 12승 8패 ERA 2.49로 팀 최고 에이스로 등극했다.
가을야구에서의 활약은 더 눈부셨다. 신시내티 레즈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6⅔이닝 2실점(비자책) 승리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디비전시리즈에서 4이닝 3실점하며 패전의 멍에를 떠안기도 했지만 이후 야마모토는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밀워키 브루어스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111구를 던지며 3피안타(1피홈런) 1볼넷 7탈삼진 1실점 완투승을 거뒀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월드시리즈에서 다시 한 번 105구를 던져 1실점 완투승을 거둔 뒤 6차전에 다시 선발 등판해 96구 6이닝 1실점하며 다시 팀에 승리를 안겼다.

더 놀라운 건 이날 7차전이었다. 9회초 동점을 만들어내며 4-4로 맞선 9회말 1사에서 블레이크 스넬이 연속 출루를 허용하며 1,2루 위기를 내주자 하루 전 96구를 던진 야마모토가 다시 마운드에 등판한 것이다. 알레한드로 커크에게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해 만루 위기를 맞은 야마모토는 달튼 바쇼를 2루수 땅볼로, 어니 클레멘트를 중견수 뜬공으로 돌려세우며 위기를 지웠다. 10회말에도 그대로 마운드에 오른 야마모토는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윌 스미스의 솔로포로 리드를 잡은 11회말에도 등판해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에게 2루타를 맞고 희생번트로 1사 3루 위기에서도 볼넷 이후 커크를 유격수 병살타로 돌려세워 헹가래 투수가 됐다.
가을야구에서 6경기에 등판해 홀로 5승(1패)을 챙겼고 특히 월드시리즈에선 3승 무패 ERA 1.02를 기록, 우승을 이끌고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했다.
가성비라는 말을 붙이기 어려운 엄청난 고액 연봉의 투수지만 그 돈을 주더라도 결코 그만한 투수를 데려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대단한 투수라는 최고의 수식어라고 볼 수 있다.
원태인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원태인은 "다저스는 일본인 선수들이 거의 주축이 돼 월드시리즈를 우승했다고 생각한다. WBC에서 상대할 팀이라는 생각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기보다는 한 야구 팬으로서 봤다"며 "너무나도 좋아하는 선수들이고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선수들인데 저런 무대에서 버스를 타는 느낌이 아니라 운전기사처럼 이끈 게 정말 멋있었다. 정말 훌륭하고 멋있는 선수라는 걸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버스를 탄다'는 건 동료들의 도움 덕에 성과를 이뤄내는 것을 말한다. 반면 '운전기사'라는 표현은 그 버스를 직접 이끌어 팀을 우승으로 견인했다는 뜻이다. 이번 가을 최고의 선수는 이견 없이 야마모토였다.
원태인은 "(야마모토는) 진짜 말이 안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투수라고 하는데 가성비가 좋은 것 같다"며 "두 경기 연속 완투를 한 뒤에 6차전에 벼랑 끝에서 팀을 구해내는 피칭을 하고 하루 전에 96개를 던진 투수가 7차전 9회말 1사 1,2루에 올라와 막아내는 게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는 (가을야구에서) 던지고 다음날 팔을 못 들었다. 그런데 더 큰 무대, 더 큰 중압감 속에서 그런 피칭을 하고 나서 그 다음날 바로 더 강한 볼을 뿌리고 있더라. 그래서 저런 무대가 저만한 에너지가 나올 수 있는 곳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마지막에도 병살타로 막더라"고 감탄했다.

이어 "이 기운은 무시 못하는 것 같다. 야마모토에게 우주의 기운이 몰린 것 같다"며 "투혼을 넘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최고의 경기를 보여준 것 같아서 존경스러웠다"고 전했다.
원태인에게도 동기부여가 된 피칭이었다. 올 시즌 27경기에서 166⅔이닝을 소화하며 12승 4패 ERA 3.24를 기록했고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는 커리어 최다인 20회에 달했는데 가을야구에선 더 빛났다.
NC 다이노스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6이닝 무실점, SSG 랜더스와 준플레이오프에서 6⅔이닝 1실점으로 2경기 연속 승리를 따내며 팀을 다음 라운드로 이끌었다.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한 플레이오프에선 5이닝 4실점으로 다소 아쉬움을 남겼지만 3경기에서 2승 ERA 2.55로 에이스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원태인은 "월드시리즈가 아니라 똑같지는 않지만 저희에게 한국시리즈가 그런데 작년에는 그 문턱에서 좌절을 해 영웅이 되지 못했고 올해도 어떻게 보면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역할, 그런 무대에서 최고의 피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 새로운 동기부여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WBC에 대비하기 위해 소집된 대표팀이다. 오는 8일과 9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체코와, 오는 15일과 16일엔 일본 도쿄돔으로 이동해 'K-베이스볼 시리즈'에 나선다. 두 팀 모두 한국이 WBC C조에서 격돌할 팀들이다.
이번에 열릴 평가전에선 야마모토는 물론이고 원태인도 등판 여부가 불확실하다. 다만 WBC를 위한 과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3월 WBC 조별리그 무대에서 얼마든지 원태인과 야마모토의 맞대결이 성사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원태인은 상상해보지도 못했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운 무대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럴 때는 팬이 아닌 상대 팀으로서 붙는 것"이라며 "오타니가 저번 WBC 결승에서 했던 말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는데 '동경하는 선수라는 생각을 버리고 무조건 이겨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오타니의 말을 되새기고 경기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