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전광판을 채우는 순간이자 무려 17년 만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8강 진출이라는 신화가 이뤄진 순간 모든 선수의 시선은 한곳으로 향했다. 우승의 환희 속에서 선수들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마운드도, 더그아웃도 아닌 외야의 '정신적 지주' 이정후(28·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다.
류지현(55)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9일 오후 7시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호주와 202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C조 4차전서 7-2로 이겼다.
사실 호주전을 앞두고 한국의 8강 진출 경우의 수는 사실상 어려웠다. 반드시 호주를 잡아야 함은 물론, 대회 규정에 따라 실점률이 낮은 팀이 올라가기에 '2실점 이하'와 함께 '5점 차 이상 승리'라는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탄탄한 마운드 운용으로 호주 타선을 2점으로 꽁꽁 묶었고, 타선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7점을 뽑아냈다. 전광판에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찍히며 7-2 승리가 확정된 순간, 17년 동안 한국 야구를 괴롭혔던 WBC 잔혹사가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9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문보경이 뜬공으로 잡아낸 뒤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쏟아져나왔다. 모두가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눈 뒤 중견수 박해민을 비롯해 안현민, 고우석, 문보경, 저마이 존스 등은 모두 외야로 전력 질주해 이정후를 에워쌌다. 선수들은 이정후를 번쩍 들어 올리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메이저리거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뒤로하고, 대표팀의 리더로서 후배들을 독려하며 고군분투했던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보였다.
동료들의 뜨거운 축하 세례에 리더였던 이정후도 결국 무너졌다. 이정후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듯 글러브로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다. 일본전과 대만전 연패로 대표팀 리더로서 느꼈던 압박감이 기적 같은 8강 진출과 함께 씻겨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결국 대표팀은 '이정후'라는 구심점을 통해 '원 팀(One Team)'으로 거듭났다. 류지현 감독이 해외파와 국내파를 모두를 아우를 수 있기에 이정후를 주장으로 낙점한 이유기도 하다.
이날 홈런 1개 포함 4타점으로 맹타를 휘두른 문보경은 경기 후 믹스드존에서 미국으로 가게 되면 특별히 보고 싶은 메이저리그 선수가 있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없다. 저는 (이)정후 형과 함께 야구해서 정말 행복하다. 사실 형이 한국에 있을 때부터 다른 팀이었는데 같은 팀으로 뛰어서 좋다. 저마이 존스, 위트컴, (김)혜성이형 등 해외파 선수들과 같이 야구를 하는 것이 너무 행복한 것 같다"고 웃었다.
이정후 역시 경기를 마친 뒤 인터뷰를 통해 "전세기를 타고 미국으로 갈텐데 비행 시간이 단축될텐데 그것보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됐는데 그것이 정말 크다고 생각한다. 더욱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고, 정말 해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해볼 텐데 그런 것들을 통해 많은 동기부여를 해서 추가로 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탄생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전했다.
지난 8일 대만전 직후 많은 비난과 우려를 딛고 일어선 대표팀은 이제 8강 결전의 땅, 미국으로 향한다. "정후 형과 함께라서 행복하다"는 후배들의 진심이 담긴 이 팀의 기적은 이제 막 서막을 올렸을 뿐이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