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손주영(LG)이 돌연 부상을 당하며 자진 교체를 요청했다. 준비된 투수가 없는 상황. 류지현 야구 대표팀 감독의 선택은 한국 야구 국가대표 최고령 출전 기록을 세운 노경은(42·SSG)이었다. 그리고는 완벽한 투구로 한국의 승리의 디딤돌이 됐다.
야구 대표팀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호주와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C조 4차전에서 7-2 승리를 거뒀다.
2승 2패로 호주, 대만과 동률을 이뤘으나 팀 간 실점률에서 극적으로 앞서 조 2위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경기 전부터 5점 차 이상, 2실점 이하 승리라는 까다로운 경우의 수를 안고 부담감 속에 경기에 나섰지만 그 어려운 확률을 현실로 만들어내 더욱 쾌감이 컸다.
3시간이 넘는 경기의 한 장면, 한 장면이 하이라이트였다. 보는 이들은 한국이 점수를 만들어 가는 과정, 실점을 최소화하는 과정 하나 하나를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봐야 했다. 극적인 승리 후엔 선수들 뿐 아니라 많은 해설위원들, 팬들까지 눈시울을 붉혔다.
SBS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약한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는 더욱 감격이 컸다. 전날 경기 결과에 대해 아쉬워했던 이대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이대호[RE:DAEHO]'에서 "7,8,9회를 막아줄 확실한 투수가 없었던 게 패인"이라며 호주전 승리를 위해선 '벌떼 야구'를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적인 승리 후 이대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경기를 리뷰하며 "끝까지 열심히 싸워준 국가대표 후배들 고맙다. 드디어 마이애미로 간다"며 "야구인이라면 눈물이 났을 것 같다. 저도 아까 조금 울었다. 경기 후 내려가서 다 한 번씩 안아주면서 고생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잘한 선수도 있고 못한 선수도 있지만 다같이 이뤄낸 8강의 성과"라며 "어제까지는 분위기가 안 좋았다. 어제 리뷰 끝나고 저희가 할 수 있다는 말만 200번은 한 것 같다. 딱 7대2만 하자고 했는데 정말 맞출 줄은 몰라서 소름이 돋았다"고 전했다.
누구 하나 수훈 선수를 꼽기 어려운 경기였다. 그럼에도 경기 초반 무너질 수 있었던 대표팀의 중심을 잡아준 '맏형' 노경은을 칭찬했다. 이대호는 "오늘 경기를 보면 너무 다 잘했다. 그러나 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문보경 홈런도 필요했지만 노경은이 손주영의 부상으로 정말 짧은 시간 준비해 갑자기 등판했는데 부상 위험도 있을 수 있었다"며 "그렇게 짧은 시간만 준비하고 경기에 나서는 게 투수로선 정말 힘든 일이고 부상 위험도 있을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2013년 WBC에서 쓴맛을 봤던 노경은은 이후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SSG 이적 후 2년 연속 최고령 홀드왕에 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고 류현진(39·한화)과 함께 사이판 1차 캠프에도 합류하며 마운드에 부족한 경험을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앞서 체코전에서 1이닝 2피안타 무실점 호투를 펼친 노경은은 대만전에도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어 이날 선발 손주영이 1이닝 만에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갑작스럽게 교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노경은이 제대로 몸을 풀 시간도 없이 갑작스레 마운드에 올랐으나 무실점 피칭을 펼쳤다. 3회에도 깔끔히 막아내며 2이닝을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포효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투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몸을 푸는 투수였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노경은은 "김광삼 투수코치님께서 내가 팔이 빨리 풀린다는 점을 잘 알고 계셨고, 나 역시 나가겠다고 자원했다"며 "부담감보다는 대표팀에 뽑힌 이유를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와 있는지 증명해낸 것 같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고 웃었다.
이제 대표팀은 그토록 간절히 꿈꾸던 미국으로 향한다. 2009년 WBC 이후 무려 17년 만의 쾌거다. 그 중심엔 최고령임에도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낸 노경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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