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이 보고 싶었죠. 요즘 아이들에게 해줄 말이 많아 좋습니다."
서건창(37)의 옛 유니폼을 입은 한 히어로즈 팬이 지난 주말 자녀와 함께 잠실야구장을 찾아 한 말이다.
올해 키움 히어로즈 경기를 찾다 보면 넥센 시절 유니폼을 입은 30~40대 젊은 부모들이 부쩍 보인다. 그들의 손과 품에는 키움 키즈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함께한다. 아이들은 열심히 응원하면서도 부모에게 쉼 없이 이 선수, 저 선수에 대해 묻는다.
더욱 재미있는 건 부모들의 모습이다. 지치지도 않는 아이들의 열정에 젊은 부모들은 덩달아 신났다. 잠실야구장에 앤디 벤헤켄 유니폼을 입고 온 이득행(40) 씨 부부도 그중 하나다. 2012년부터 히어로즈를 응원했다는 그는 야구를 모르던 아내에게 히어로즈를 영업해 팬으로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두 아이도 큠린이(키움+어린이)가 됐다.
젊은 부모 히어로즈 팬들은 그 이유 중 하나로 돌아온 박병호(40) 잔류군 선임코치, 서건창(37)을 말했다. 박병호, 서건창 모두 그들이 어린 시절 히어로즈에 미치게 했던 선수들이다. 여기에 임병욱(31), 하영민(31), 김웅빈(30) 등 그들과 함께했던 선수들이 최근 좋은 활약을 해주면서, 이들은 목동 시절을 모르는 팬들에게 '아빠와 엄마가 사랑했던 히어로즈'를 잇는 다리가 되고 있다.
이득행 씨는 "2012년부터 히어로즈를 계속 응원했다. 아내와는 예전에 목동에서 응원하며 데이트한 것이 생각난다. 아이들도 내가 입문시켰다"라며 "아이들도 집에서 매일 선수들 이름을 보고 외운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저 선수가 옛날에 잘했던 선수라고 이야기해준다. 지난번 박병호 선수 은퇴식도 함께 다녀왔다. 그 뒤로는 아이들도 박병호 코치를 좋아하고 다른 선수들도 더 좋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선수들도 이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잠실에서 만난 서건창은 "내 눈에도 예전 유니폼들이 많이 보인다. 한동안 그 유니폼을 못 꺼내셨을 텐데...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싶기도 하고 덕분에 예전 생각도 많이 난다"고 미소 지었다.
서건창은 히어로즈 팬들의 마음을 여전히 설레게 하는 존재다. 서건창은 2011년 입단한 뒤 2012년 KBO 신인왕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전성기를 열었다. 2014년에는 128경기 타율 0.370(543타수 201안타)으로 타격 3관왕, 골든글러브, 정규시즌 MVP를 싹쓸이하며 육성선수 신화로 거듭났다. 넥벤저스(넥센+어벤저스)의 주축 선수로서 두 번의 한국시리즈를 함께하면서 새로운 히어로즈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후 부침을 겪고 잠시 히어로즈를 떠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 1월 다시 고척돔으로 돌아왔고, 지난 20일에는 2년 최대 6억 원의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했다. 그 배경에는 히어로즈 팬들의 응원도 한몫한다.
서건창은 "팬분들이 있어 우리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유니폼을 입고 와주시는 게 소소해 보일지 몰라도 나뿐 아니라 선수들에게는 힘이 된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더 하게 된다. 오면서도 유니폼을 입고 오신 분들을 봤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히어로즈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선수가 또 있다. 서건창이 돌아온 이름이라면, 임병욱은 히어로즈 팬들이 끝내 놓아지지 않은 이름이다. 임병욱은 수원신곡초-배명중-덕수고 졸업 후 2014 KBO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입단해 줄곧 이 팀에서만 뛰고 있다. 김하성(31·애틀랜타 브레이브스)보다 앞선 순번에서 지명된 것에서 보이듯, 임병욱은 5툴 플레이어로서 잠재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2018년이 그 재능의 편린을 잠시나마 보여준 해였다. 그해 임병욱은 정규시즌 134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3(423타수 124안타) 13홈런 60타점 76득점 16도루, 출루율 0.327 장타율 0.468로 펄펄 날았다. 포스트시즌에서도 한화 이글스와 준플레이오프에서 연타석 역전 스리런으로 시리즈 MVP까지 수상하는 등 재능을 맘껏 뽐냈다. 부상이 반복되며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 탓에 히어로즈 팬들에게는 이뤄질 수 없는 관계란 뜻에서 첫사랑이라 불렸다.
하지만 올해 또다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을 경기장으로 소환하고 있다. 잠실에서 만난 김서한(24) 씨도 그중 하나다. 3년 전 임병욱의 부상 복귀 소식에 고양 2군 구장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직접 받은 사인 유니폼을 입고 이날 경기장을 찾았다.
김서한 씨는 "임병욱 선수가 잘하고 있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이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그동안 잘하다가 다치길 반복해서 히어로즈 첫사랑이라고도 불렸던 선수다. 그런 임병욱 선수가 잘해주고 있어 고맙고 팬으로서 뿌듯하다. 앞으로도 부상 없이 끝까지 잘해주기만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임병욱은 "사실 어렸을 때는 내 유니폼이 그렇게 많이 팔린 줄 몰라서 체감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보이는 그때 유니폼을 보면서 나를 저렇게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았구나 싶어 감회가 남다르다"고 밝혔다.
박병호, 서건창이 돌아오면서 고무된 건 팬들만이 아니다. 임병욱은 최근 좋은 활약의 이유로 "준비한 건 똑같았는데 마음이 조금 달랐다. (서)건창이 형도 오고 박병호 코치님도 오면서 심리적으로 편해진 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시범경기하고 2군으로 내려갈 때 건창이 형이 '병욱아 (야구를) 놓으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아주셨다. 그러고 2군에 내려가 오윤 감독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장영석 타격코치님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박병호 코치님도 어릴 때부터 날 봐왔기 때문에 나를 너무 잘 알아서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그렇게 생각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올라오면서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떠났던 선수도, 멈춰 섰던 선수도 다시 히어로즈 안에서 하나가 됐다. 서건창은 "팬분들의 한결같은 응원에 우리도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려 한다. 최근 좋은 성적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도록 고참으로서 고민하고 있다.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나 같은 경우 한 타석, 한 타석에 집중해 최대한 기회를 이어가려 한다"고 강조했다.
임병욱 역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박)병호 형, (서)건창이 형이 와서 팀 분위기가 많이 올라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전에 (이)용규 형, (이)형종이 형, (오)선진이 형, (원)종현이 형, (안)치홍이 형 등 형들이 힘든 시간을 묵묵하게 버텨줬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나도 이제 중간 연차로서 형들 이야기를 잘 듣고 동생들에게 잘 전달해 그 시너지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개인적인 목표보단 형들과 동생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면서 팀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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