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주목을 못 받는지 모르겠다. 내가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할 것 같다."
이강철(60) KT 위즈 감독이 제대로 심통 났다. MVP급 포스를 내고 있는 KT 외국인 타자 샘 힐리어드(32)의 활약이 조명받지 못한다는 속상한 마음에서다.
힐리어드는 31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리그 한화 이글스와 홈 경기에 4번 타자 및 중견수로 선발 출장해 3타수 1안타 1사구 2득점을 기록하며 KT의 5-3 역전승을 이끌었다.
홈런도, 장타도 없었지만, 이날 경기를 지배한 선수는 분명 힐리어드였다. KT가 0-3으로 뒤진 4회말 무사 1루에서 힐리어드는 류현진의 커브에 몸을 맞아 출루했다. 김민혁의 우중간 안타와 허경민의 몸에 맞는 공으로 3루까지 간 힐리어드는 대타 오윤석의 짧은 중견수 뜬공 때 지체하지 않고 홈으로 쇄도했다.
여유 있는 희생플라이가 아니었다. 힐리어드의 빠른 발이 만들어낸 득점이었다. 한화 포수 허인서는 급하게 태그하려다 공을 놓쳤고, 그 사이 2루 주자 김민혁도 3루까지 진루했다. 힐리어드의 주루 하나가 KT에 첫 득점과 추가 진루를 동시에 안겼다.

2-3으로 뒤진 6회말에도 힐리어드가 역전의 출발점이었다. 선두타자로 나서 우전 안타를 친 뒤 김민혁의 평범한 중견수 뜬공 때 과감하게 2루를 파고들었다. 상대가 방심한 틈을 놓치지 않고 득점권을 만들어냈다. 이어 김상수의 중전 안타가 나오자 또 한 번 거침없이 홈까지 내달려 3-3 동점을 만들었다. 결국 한화 선발 류현진이 마운드에서 내려갔고, KT는 한승택의 2타점 적시타로 5-3 역전에 성공했다.
힐리어드는 "타구가 뜨는 것을 보자마자 2루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 살 수 있다고 판단하면 항상 공격적으로 다음 베이스를 향하려 한다"라며 "코치님들이 상대 외야수의 송구 습관도 미리 알려주셔서 참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처럼 올 시즌 힐리어드가 보여주는 KT에 기여하는 바는 숫자 밖에서도 드러난다. 힐리어드는 7월까지 95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0, 28홈런 90타점 75득점 7도루, 출루율 0.376, 장타율 0.591, OPS(출루율+장타율) 0.967을 기록했다. 42홈런 136타점 페이스로, 오스틴 딘(LG 트윈스), 김도영(KIA 타이거즈) 등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MVP급 성적이다.
시즌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4월까지 28경기에서 타율 0.232, 5홈런 21타점, OPS 0.728에 그치며 교체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이 감독과 KT는 힐리어드가 살아날 가능성을 믿었다.
경기 전 이강철 감독은 "힐리어드를 기다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다. 못할 때도 볼넷을 골라 걸어 나갔고 수비와 주루가 확실했다. 방망이만 (올라오길) 기다리면 됐는데 타구속도가 보통 시속 160㎞가 나오니까 저게 (제대로) 맞으면 어떨까 궁금했다. 저렇게 적응하면 내년에 더 잘하지 않을까"고 떠올렸다.

기다림은 적중했다. 힐리어드는 5월 25경기에서 타율 0.350을 기록하며 반등했고, 이후 장타와 정교함을 동시에 갖춘 중심 타자로 변신했다. 사령탑은 과거 KT에서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멜 로하스 주니어와 힐리어드를 비교하면서도 힐리어드만의 장점을 강조했다.
이 감독은 "내가 로하스 전성기 때 타 팀에 있어서 로하스가 수비를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겠다. 치는 건 로하스와 비슷하다. 공을 보는 눈이 좋고 멀리 친다"라면서도 "(내가 본 기준으로만 하면) 힐리어드는 로하스랑 다르게 주루와 수비가 확실히 된다. 중견수 수비도 (박)해민이가 잘하지만, 힐리어드는 키가 커서 펜스 위로 넘어갈 것 같은 타구도 점프해서 잡아낸다. 주루에서는 보폭이 커 몇 번 뛰면 어느새 홈에 들어와 있다"고 감탄했다.
선수로서의 태도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평소에도 주목받지 못한 KT 선수가 있으면 팔불출처럼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는 못 말리는 사령탑이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내심 속상했던 이 감독은 "힐리어드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점잖고 인성도 좋다. 플레이에 진지하고 정말 열심히 한다"라며 "공격과 수비가 모두 좋은, 다시 못 볼 최고의 선수다. 오늘 칭찬한 것을 싹 다 내보내 달라"고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주목도는 때로 성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힐리어드의 이름 역시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팀과 선수들의 활약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조용히 지나가곤 했다. 그러나 힐리어드는 묵묵히 홈런을 치고, 넓은 외야를 커버하면서 상대의 빈틈을 발견하면 한 베이스를 더 달렸다. 화려한 숫자에 보이지 않는 플레이까지 더하면 힐리어드는 더 이상 MVP로서 언급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선수다.
사령탑은 기록에 모두 담기지 않는 힐리어드의 가치까지 제대로 평가받기를 바랐고, 선수도 그 마음을 안다. 힐리어드는 "감독님께서 믿어주신 덕분에 매일 편안하게 타석에 서고 있다.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더 집중하고 좋은 플레이를 보여드리려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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