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판 행정의 파행과 카르텔 의혹 중심에 섰던 인물이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현장 개선이나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 쏟아지는 비판을 피해 도망치듯 자리를 내던진 '무책임한 퇴장'이라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3일 "문진희 심판위원장이 이날 오후 일신상의 사유로 사임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축구협회 정관상 임원은 사임서를 제출하는 즉시 사임의 효력이 발생함에 따라 문 위원장은 이날부로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협회는 "향후 새 집행부가 출범할 때까지 부위원장 대행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에서 안하무인 태도와 궤변으로 거센 공분을 심판위원장이 청문회 일주일이 채 안 돼 사임서를 제출하며 자리에서 물러난 셈이다.
문제는 문 위원장의 사퇴가 심판계 쇄신이나 반성의 결과가 아닌, 청문회 사태 이후 거세진 비판 여론을 피하기 위한 기습 사퇴라는 점이다. 앞서 문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질의에 답하고 의원들에게 반말에 가까운 표현을 사용하는 등 태도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번 월드컵에 170명의 심판이 갔는데 왜 한국은 한 명도 보내지 못했느냐"며 16년째 월드컵 심판을 배출하지 못하는 한국 심판진의 위상을 꼬집자 문 위원장은 "우리나라 구조가 지면 심판을 욕하기 때문에 심판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아 공분을 샀다. 이 의원이 "2014년부터 한국은 자국 심판을 월드컵에 파견하지 못했다"고 재차 지적하자 제도 탓과 변명으로 일관했다.
심판 카르텔 의혹에 대한 질의에서도 문 위원장의 몰상식한 태도는 이어졌다.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이 심판 평가관과 교육강사 배정이 특정 측근 인사들에게 집중된 자료를 제시하며 "심판 평가관 배정이 특정인에게 몰렸다. 배정 심의 협의체에 참여한 사람이 자기 배정까지 결정하는 '셀프 배정'이 말이 되느냐. 전형적인 카르텔이자 심판계 마피아 보스 아니냐"고 강력히 질타했다.
문 위원장이 반성 없이 어정쩡한 자세로 답변을 이어가자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세 똑바로 하라. 공손하게 대답하라. 여기는 국민의 민의의 전당이다"라고 호통쳤다. 그러자 문 위원장은 조 의원을 향해 "아침부터 거기 끼지 마시고 좀"이라며 국회의원의 정당한 지적에 정면으로 맞서다 이재정 문체위원장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기도 했다.
당시 김 의원은 "심판위원장이 근거 없는 양성 코스로 내 사람 1급 심판 만들기에 몰두한다는 제보가 너무 많다. 1년 2개월째 징계 논의조차 없이 사건을 덮었다. 정말 구린내가 나고 토가 나올 지경"이라며 전수 감사를 요구했다.

수장이 국회에서 "지면 심판 탓"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사표를 던지고 도망치는 사이, 수차례 지적됐던 심판 불통 논란이 또 터졌다.
수원 삼성은 1일 청주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2 2026 20라운드 충북청주와 원정 경기에서 핵심 공격수 헤이스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상대 팔꿈치에 턱을 가격당했음에도 비디오 판독(VAR)조차 거치지 않는 등 경기 내내 납득하기 어려운 판정으로 고스란히 피해를 봤다.
심지어 경기 종료 직전 수원은 경기 막바지 두비츠카스의 헤더가 골망을 가르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는 듯했지만, 주심이 해당 장면에서 파울을 선언하며 득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승점 3점이 1점으로 바뀐 순간 수원 선수단은 극도로 흥분해 주심에게 다가가 강하게 항의했다.
여기에 권위적인 태도로 일관한 주심의 행동이 기름을 부었다. 선수단과 심판진간 충돌을 막으려 나선 구단 프런트가 도리어 퇴장당하는 황당한 사태까지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수원 구단 관계자는 선수들과 주심을 분리한 뒤 접근해 "이유라도 들어야 선수들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정중히 상황 설명을 요청했지만, 주심은 "파울이라 골 취소를 했다"고 답한 뒤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고 구단 프런트라고 신분을 밝히자마자 곧바로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수원은 해당 상황들에 대한 공식 질의서를 제출한 상태다.
경기장 밖 역시 판정에 분노한 수원 팬들이 경기장 출입구를 막아섰고, 경찰 30여 명이 긴급 투입되는 등 소란이 이어졌다. 주심이 다른 통로를 통해 몰래 귀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야 팬들은 해산했다.
국회에 출석해 안하무인 태도로 일관하다 사퇴서 한 장으로 책임을 회피해버린 수장의 무책임한 퇴장, 그 직전까지 필드 위에서 파행을 벌인 심판진의 모습은 판박이었다. 수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음에도 한국 축구 심판계를 향한 불신과 분노가 전혀 가라앉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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