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공교롭게 역전극이 속출하는 주간이었다. 8점 차, 9점 차의 넉넉한 리드가 허무하게 날아간 경기가 나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이번에는 정규이닝 마지막 수비에서 5점 차 리드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명승부라는 포장지 뒤로 프로야구의 뼈아픈 경기력 난조가 다시 한번 민낯을 드러냈다.
승리 확률 99.2%라는 압도적인 수치도 불안한 마운드 앞에서는 한낱 숫자에 불과했다. KIA 타이거즈는 23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7-8로 충격적인 끝내기 역전패를 당했다. 7-2로 여유 있게 앞서며 4연속 위닝시리즈를 눈앞에 뒀던 KIA는 9회 말에만 무려 6실점을 헌납하며 자멸, 2연패와 함께 시즌 성적 60승 50패 2무(승률 0.545)를 기록했다.
사실 이날 경기 후반까지만 해도 승부의 추는 완전히 KIA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선발 에이스 제임스 네일이 6이닝 2실점 8탈삼진으로 호투했고, 8회 초 김태군의 투런포와 김선빈의 적시타가 터지며 스코어는 7-2까지 벌어졌다. 네이버 스포츠 문자중계 기준 9회 초 KIA 공격 종료 시점의 승리 확률은 무려 98.8%에 달했다.
하지만 9회 말 믿기 힘든 참사가 벌어졌다. 5점 차에서 등판한 KIA 불펜 이태양이 선두타자 권혁빈에게 우전 안타를 맞았으나 대타 이형종을 뜬공 처리할 때까지만 해도 키움의 승리 확률은 0.8%까지 떨어졌다. 바꿔 말하면 KIA의 승리 확률은 99.2%. 그러나 서건창과 추재현의 연속 안타로 1사 만루가 되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KIA는 이번 고척 3연전에서 등판이 없던 좌완 마무리 이의리를 다급히 투입했지만 불붙은 키움 타선을 막아내지 못했다. 키움은 데이비슨의 2타점 적시타로 4-7까지 턱밑 추격했고, 안치홍의 볼넷으로 2사 만루 찬스로 이어졌다. 여기서 타석에 들어선 김재현이 이의리의 높은 직구(시속 155km)를 통타해 승부를 단숨에 뒤집는 기적 같은 끝내기 만루 홈런을 쏘아 올렸다.
사실 황당한 역전패는 비단 이날 경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8일 사직구장에서는 키움이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8-0 리드를 잡고도 불펜 붕괴로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21일 대전에서도 LG 트윈스가 한화 이글스에 9-0으로 크게 앞서가다 마운드가 완전히 무너지며 11-15로 충격적인 역전패를 헌납하는 촌극을 빚었다. 8점 차, 9점 차도 안심할 수 없던 리그가 급기야 9회 5점 차마저 1이닝 만에 지워버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마운드 붕괴는 국내 프로야구의 '불문율'에서도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날 KIA가 7-2로 앞선 9회초 2사 상황에서 8회 대주자로 투입된 김민규가 우전 안타를 치고 나가자 키움은 1루수 데이비슨을 뒤로 물리며 사실상 주자를 묶지 않고 빠른 승부를 택하는 스탠스를 취했다.
하지만 9회말 5점 차 리드마저 1이닝 만에 뒤집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실제 23일 경기를 마치고 KIA '최고참' 나성범(37)과 키움 '최고참' 서건창(37)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야구 명언이 수준 높은 투타 대결이 아닌 마운드의 자멸과 볼넷 남발, 수비 실책의 대명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나온다. 넉넉한 점수 차마저 순식간에 증발하며 불문율마저 애매해진 불안한 야구 앞에서 KBO리그의 질적 하향 평준화를 향한 걱정도 점점 짙어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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