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전 미국에서 최지만(35·울산 웨일즈)의 메이저리그 첫 타점을 직접 본 한 소년이 야구에 빠졌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1·알 나스르)를 좋아하던 축구소년은 이제 최고 시속 149㎞를 던지는 한국 야구 청소년대표 좌완이자 KBO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후보 박근서(18·서울디자인고)가 됐다.
박근서의 인생을 바꾼 날은 2016년 7월 18일(한국시간)이었다. 가족들과 미국을 찾았던 박근서는 당시 LA 에인절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정규시즌 경기를 직접 관전했다. 당시 에인절스 5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장한 최지만은 3타수 1안타 1타점 1도루 1득점으로 활약했고, 에인절스는 8-1로 승리했다.
최지만에게도 특별한 경기였다. 그날 빅리그 데뷔 첫 타점과 첫 도루를 기록했다. 박근서는 올해 1월 스타뉴스와 만나 "내가 간 경기에서 최지만 선배님이 적시타도 치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경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떠올린 바 있다.
당시 아홉 살이었던 소년에게 그날의 기억은 단순한 여행 추억으로 끝나지 않았다. 원래 축구를 좋아했던 박근서는 야구선수의 길로 들어섰고,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국내에서 손꼽히는 왼손 투수로 성장했다.
백마초-홍은중을 거쳐 서울디자인고에 진학한 박근서는 올해 최고 시속 149㎞의 빠른 공을 앞세워 2027 KBO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후보로 떠올랐다. 지난 6월 고교·대학 올스타전에서는 2이닝 동안 삼진 4개를 잡아내며 MVP까지 차지했고, 한국 야구 18세 이하(U-18) 청소년대표팀에도 승선했다. 최근에는 단순히 구속을 높이기보다 커브와 체인지업 등 변화구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7일 울산 문수야구장. 청소년대표팀과 울산 웨일즈의 연습경기를 위해 찾은 박근서에게 특별한 인연이 다시 찾아왔다. 그곳에 자신의 야구 인생을 시작하게 만든 최지만이 있었다.
경기를 앞두고 만난 박근서는 "초등학생 때 야구장에서 멀리서 본 것 말고는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다"라며 "우연히 마주친다면 인사하고 싶다. '선배님 덕분에 제가 야구를 시작했고 잘된 것 같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설렘을 드러냈다.
이어 "최지만 선배님 때문에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실 때 초등학생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우상으로 삼았다. 나에게는 정말 존경스러운 선배"라고 강조했다.
박근서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최지만도 뜻밖의 인연에 반가워했다. 최지만은 "너무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그런 말을 잘 들어보지 못했다. 항상 내 주변 선배들의 그런 이야기를 접하기만 했는데, 막상 내가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도 정말 열심히 해왔구나'라는 걸 느끼게 된다"고 뭉클한 심정을 전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보고 야구를 시작한 선수가 청소년대표까지 성장했다는 사실을 반가워했다. 최지만은 "감사하게도 그 선수가 잘돼서 청소년대표까지 왔다. 만약 내가 미국에 가지 않았다면 그 선수가 야구를 시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우연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박근서가 원래 축구를 좋아했고 지금도 호날두를 롤모델로 삼는다는 말을 듣자, 최지만은 "어떻게 보면 손흥민 같은 선수 하나를 빼고 야구 유망주 한 명이 생긴 거니까 뿌듯하다"고 웃었다.
두 사람의 인연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2016년에는 관중석의 초등학생과 메이저리거였지만, 10년이 흘러 같은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이름이 불릴 수 있는 사이가 됐다. 17년 만에 KBO 입성을 준비하는 최지만은 오는 9월 21일 2027 KBO 신인드래프트 참가를 앞두고 있다. 박근서 역시 같은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후보로 거론된다.
박근서는 "나로서는 최지만 선배님과 같은 드래프트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이미 많은 업적을 달성하신 분이기 때문에 같은 드래프트에 이름을 올린다는 자체가 특별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작 최지만은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이름이 불리기를 바랐다. 최지만은 "박근서 선수뿐 아니라 대표팀 선수들이 워낙 잘하니까 나보다 더 일찍 좋은 순번에 지명되지 않을까.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2016년 7월, 최지만의 빅리그 첫 타점을 관중석에서 바라본 아홉 살 소년은 그 경기 때문에 야구공을 잡았다. 10년 뒤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149㎞를 던지는 1라운드 후보가 됐다. 그리고 자신에게 꿈을 심어준 메이저리거와 마침내 같은 야구장에서 마주하게 됐다.
이제 둘에게 남은 또 하나의 특별한 장면이 있다. 오는 9월 21일, 같은 신인드래프트에서 나란히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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