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가 대혼돈과 위기에 직면했다. 대표팀 시스템의 붕괴부터 수뇌부 총사퇴,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협회 행정의 난맥상까지. 스타뉴스는 한국축구가 마주한 위기 원인을 짚어보고, 무너진 신뢰 회복과 정상화를 위한 길을 진단한다. /편집자 주
한국축구가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 참패 이후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불과 4년 전 파울루 벤투 전 감독 체제에서 확고한 프로세스와 체계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을 일궈냈던 시스템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던 대표팀이 단 4년 만에 최악의 암흑기로 곤두박질치게 된 배경을 두고 축구계 안팎에서는 협회의 밀실 행정과 내부 견제 시스템의 붕괴를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목했다.
카타르월드컵 16강 이후 4년간 한국 대표팀을 거쳐 간 사령탑만 정식과 임시를 포함해 4명에 달했다. 4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4강 탈락 등 굵직한 참사가 연이어 터져 나오는 동안 대한축구협회(KFA)의 방향성은 내내 갈팡질팡했다.
비극의 출발점은 2023년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의 선임이었다. 전력강화위원회의 공식 검증 절차가 철저히 무력화된 채 정몽규 전 회장 중심의 독단적 의사결정으로 출범한 클린스만호는 부임 내내 전술 부재와 잦은 해외 체류 등 끝없는 논란으로 일관하며 대표팀의 기본 기강마저 무너뜨렸다. 벤투 전 감독 시절 4년간 철저하게 유지됐던 선수단 관리와 정보 보안 원칙도 모조리 사라졌다.

여파는 2024년 초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터졌다. 64년 만의 우승을 자신하던 대표팀은 무색무취한 경기력 끝에 4강에서 탈락했다. 이후 손흥민(34)과 이강인(25)의 선수단 불화설이 영국 등 외신을 통해 보도되자, 협회는 이를 수습하기는커녕 이례적으로 빠르게 인정하며 선수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협회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관계자 A는 "과거 대표팀은 약 4년간 시스템을 구축했고, 아시아 지역 예선 계획도 구체적으로 짰다. 내부 정보가 퍼지지 않게 철저히 단속했고, 예컨대 2022 카타르월드컵 출전 명단은 윗선에 보고조차 되지 않을 만큼 시스템 속에서 움직였다"며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 때부터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선수단 내 정보가 여과 없이 새어나가 선수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봤다. 시스템이 흔들린 상황에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털어놨다.
클린스만 전 감독이 경질된 이후에도 협회의 졸속 행정은 계속됐다. 축구협회는 정식 사령탑을 구하지 못한 채 황선홍, 김도훈 임시 감독 체제로 5개월을 보냈다. 정해성 전 전력강화위원장을 필두로 제시 마시, 헤수스 카사스 등 외국인 지도자들과 협상을 진행했지만, 연봉과 세부 조건, 축구 철학 등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연이어 결렬됐다.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을 앞두고 시간이 촉박해지자 갈등이 극에 달했고, 결국 3인의 최종 후보군 압축 직후 정해성 전 위원장이 돌연 사퇴하는 파행을 겪었다.
이에 관계자 B는 "대표팀의 올바른 시스템 구축을 위해선 전력강화위원회의 독립성과 연속성이 필수적이다. 선수와 코칭스태프, 협회 실무진이 빠르게 손발을 맞춰야 하는데 내부가 완전히 흔들렸다"며 "감독 개인의 역량을 떠나 이런 분위기에서는 온전한 시스템이 정립되기 어렵다"고 짚었다.


정해성 전 위원장 사퇴 이후 협회의 무원칙 밀실 행정은 극에 달했다. 공식 권한이 없던 이임생 전 기술총괄이사가 작업을 넘겨받아 심층 면접도 없이 이른바 '빵집 면담' 끝에 홍명보 전 감독 선임을 강행했다.
이에 전력강화위원으로 참여했던 박주호가 내부 선임 절차의 불공정성을 폭로했고, 박지성, 이영표 등 레전드들도 거세게 질타했다. 박지성은 "축구협회가 많은 의문을 남겨 아쉽다. 기대받으며 시작해도 쉽지 않은 게 대표팀"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특정감사에 착수하며 축구협회가 정한 규칙과 과정 스스로 지키지 못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감사 결과에 반발하며 법적 공방을 불사했다. 공정성 논란이 불거진 채 강행된 홍명보호 출범은 팬들의 차가운 외면으로 이어졌다. 2024년 9월 팔레스타인전부터 관중이 줄기 시작하더니, 2025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파라과이전 관중 수는 2만 2206명까지 떨어지며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11월 대전 볼리비아전에서도 7000여 석이 비는 등 매진에 실패했고, 대표팀은 월드컵 직전 국내 출정식조차 갖지 못하는 유례없는 고립을 겪었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는 코칭스태프 내부 역할 분담을 둘러싼 잡음까지 터졌다. 주앙 아로소 수석코치가 포르투갈 매체 '볼라 나 헤데' 인터뷰에서 "협회는 한국인 감독이 대표자를 맡고 유럽 코치가 실질적 총괄을 원했다"고 밝혀 '얼굴마담' 논란이 일었다. 협회는 기사를 삭제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의구심은 지워지지 않았다.
협회의 독단과 무너진 시스템, 식어버린 팬심과 내부 균열을 안고 출발한 홍명보호의 항해는 결국 북중미월드컵 참사라는 예견된 비극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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