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가 대혼돈과 위기에 직면했다. 대표팀 시스템의 붕괴부터 수뇌부 총사퇴,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협회 행정의 난맥상까지. 스타뉴스는 한국축구가 마주한 위기 원인을 짚어보고, 무너진 신뢰 회복과 정상화를 위한 길을 진단한다. /편집자 주
"개혁이 아닌 혁신의 수준으로, 암적인 폐습을 모두 뜯어고쳐야 합니다."
프로축구 K리그에서 선수로 뛰다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는 임민혁은 한국축구 쇄신의 길을 이렇게 진단했다. 지난달 대한민국 축구 혁신위원회 설치를 주장하면서다. 한국축구 시스템 자체를 혁신 수준으로 바꿔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뼈를 깎는 혁신안을 축구협회 차원에서 직접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임민혁은 "몇몇 기득권 카르텔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선 더 이상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축구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유소년 선수, 학부모, 지도자들이 현장에서 계속 아픔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뿌리가 다치면 건강한 열매는 결코 맺힐 수 없다"고 강조했다. 참담한 수준으로 추락한 한국축구의 현실, 개혁을 넘어 혁신이 필요한 한국축구 상황을 꿰뚫은 표현들이기도 했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전 감독과 홍명보 전 감독의 선임 과정 논란을 비롯해 승부조작 사범 등 축구인 기습 사면 논란 등 대한축구협회 행정 난맥상, 나아가 10년이 넘어서야 드러난 과거 심판 성 접대 의혹까지. 한국축구와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국민적인 신뢰는 그야말로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그렇다고 축구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다시 시작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게 절실하다.
지난 7월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출범한 'K-축구 혁신위원회'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은 건 한국축구 혁신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절박함이 맞물린 결과다. 마침 한국축구 레전드인 박지성(45) 국제축구연맹(FIFA) 분과위원, 그리고 혁신과 변화를 앞세워 이기흥 회장의 3선을 저지하고 새롭게 체육계 수장이 됐던 유승민(44) 대한체육회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으면서 팬들의 기대도 커졌다.
K리그 구단 한 고위 관계자는 "대한축구협회의 역사, 규모 등을 봤을 때 변화를 주도해야 하는 단체의 리더로서 박지성·유승민 위원장들의 나이는 굉장히 젊고 또 이례적"이라면서도 "'박지성 위원장이 뭘 아느냐'는 등 인터뷰를 했다가 여론으로부터 호되게 혼났던 지방축구협회장(서강일 전북축구협회장) 사례를 봤을 때, 그만큼 현재 혁신위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이 크고 그만큼 시대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축구 혁신위원회가 가장 먼저 변화를 추진하는 건 회장 선거 제도의 개혁이다. 정몽규 회장이 처음 당선됐던 지난 2013년 대한축구협회 제52대 회장 선거 당시 선거인단은 겨우 24명이었다. 이후 제53대 회장 선거 땐 106명, 제54·55대 회장 선거 땐 192명의 선거인단의 투표로 축구계 수장이 결정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정몽규 회장은 무려 4선에 성공했다.


특히 A매치에서 '정몽규 나가'라는 팬들의 외침이 울려 퍼질 만큼 정 회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극에 달한 시점에 진행된 제55대 회장 선거 땐 무려 88.71%의 압도적인 지지 속 4선에 성공해 논란이 됐다. 이른바 축구계 카르텔을 없애기 위해서는 결국은 직선제에 가깝게 선거인단을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혁신위는 협회 정관상 최대 300인으로 제한된 선거인단을 1~2만명 규모로 늘려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회장 선거 방식을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축구와 대한축구협회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봤다.
다만 혁신위는 어디까지나 '권고 기구'라는 점이 문제다. 혁신위에서 어떠한 결론이 나오더라도, 축구협회가 이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FIFA나 아시아축구연맹(AFC)이 혁신위 활동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고, FIFA가 직접 한국을 찾아 혁신위 활동 등을 점검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FIFA는 축구협회 운영에 정부 등 제3자 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고, 위반 시 징계를 내릴 수 있다. 이미 정부의 축구협회 운영 개입으로 징계를 받은 사례들도 있다.
결국은 대한축구협회, 그리고 축구계가 과연 얼마나 변화의 바람에 순응하느냐가 관건이다. 어느 정도 노력을 하느냐,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무너질 대로 무너진 신뢰 회복의 정도와 속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혁신위 방향성에 반기를 들거나 FIFA 뒤에 숨어 또 다른 카르텔을 구축하려 한다면, 한국축구의 개혁 기회는 그대로 날아가게 된다.
박지성 혁신위 공동위원장도 대한축구협회와 한국축구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최근 과거 성 접대 논란까지 불거지자 "안 좋은 상황을 맞이한 건 분명한 사실"이라면서 "(이로 인해)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는, 저로서도 예상하기 쉬운 부분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건 이런 상황을 맞이한 만큼 앞으로 어떻게 신뢰를 회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축구계 한 원로는 "한국축구가, 대한축구협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비판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늘 변화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축구인들이 또 있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들을 해줬으면 좋겠다. 축구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축구 자체가 위기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각오로 변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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