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0.X 초 안에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LG 트윈스 베테랑 좌완 이우찬(34)에게도 그 찰나의 순간은 길었다.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모서리를 스치듯 지나간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기까지, 간절했던 마음이 결실을 보았다. 지난해 포스트시즌(PS) 엔트리에 들지 못했던 아쉬움도 씻어냈다.
이우찬은 1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2026 신한 SOL KBO 포스트시즌(PS) 와일드카드 결정전(WC) 1차전에서 ⅔이닝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LG의 4-1 승리에 힘을 보탰다.
정규시즌 4위 LG는 이날 승리로 2016년, 2019년, 2020년에 이어 네 번째 WC 출전에서도 준플레이오프(준PO) 진출에 성공했다. 반면 5위 두산은 2023년부터 이어진 WC 4연패와 함께 가을야구를 마감했다.
승부를 가른 건 경기 막판이었다. LG는 오스틴 딘(33)의 1회말 선제 투런포와 카를로스 카라스코(39)의 6이닝 1실점 호투로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7회초 박해민(36)의 호수비로 실점을 최소화한 데 이어 8회초에도 동점 위기에 몰렸다.
LG가 2-1로 앞선 8회초 1사 2루. 염경엽(58) 감독은 안재석(24)의 타석에서 이우찬을 투입했다. 볼카운트 1볼에서 마운드를 이어받은 이우찬은 공 3개를 연거푸 볼로 던져 볼넷을 허용했다. 순식간에 1사 1, 2루 위기를 자초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우찬의 진가가 나타났다. 상대는 두산 외국인 타자 유니오 세베리노(27). 이우찬은 바깥쪽 승부를 고집하며 직구와 슬라이더를 섞어 던졌다. 마지막 7구째 슬라이더가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모서리를 스치듯 통과했다. 세베리노는 공을 지켜봤지만, 결과는 루킹 삼진이었다.

이어진 류승민(23)과 승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직구와 슬라이더를 섞어 풀카운트 승부를 펼쳤고, 7구째 슬라이더를 스트라이크존 상단에 정확히 꽂았다. 류승민이 방망이를 내지 못하면서 또 한 번 루킹 삼진이 선언됐다. 2사 1, 2루에서 연속 삼진으로 이닝을 끝내자 잠실벌은 환호로 가득 찼다. LG는 8회말 2점을 추가하며 승기를 굳혔다.
경기 후 만난 이우찬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던지기 전에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크게 가졌던 것 같다. 점수를 주면 동점이 되는 상황이라 더 간절했다"고 말했다.
특히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오기까지의 짧은 순간이 강렬하게 남았다. 이우찬은 "진짜 0.몇 초 안에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 웃으며 "세베리노를 상대로는 무조건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하고 던졌다. 상대가 치려고 하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아서 더 과감하게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발언도 나왔다. 첫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한 이유를 묻자 이우찬은 "일부러 그랬다. 주자가 1루에 있어야 병살타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의도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1루에 주자 한 명이 더 나갈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안타만 맞지 말자는 생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우찬에게 올해 가을야구는 더욱 특별하다. 지난해에는 아쉽게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더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작년에 느꼈던 기분들이 올해 준비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돌아봤다.

한때 야구가 쉽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다. 2022년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뒤 이어진 2~3년의 내리막은 적지 않은 시련이었다. 이우찬은 "그전에는 힘들 때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즐기려고 한다. 나이도 있다 보니 마운드에 올라가는 순간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게 좋은 영향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다.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데는 가족의 도움이 컸다. 그는 "부모님과 아내가 너무 힘이 돼줬다. 그래서 좀 더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며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공이 더 빨라지고 있다. 야구가 이제 좀 재미있어지는 느낌"이라고 웃었다.
LG 불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 시즌 31세이브를 올린 손주영(28)이 목 6~7번 추간판 탈출증으로 WC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염 감독은 경기 전 집단 마무리 체제를 예고했고, 이우찬은 그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이우찬은 동료들을 향한 믿음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 불펜진은 많이 빠져도 워낙 뎁스가 좋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투수코치님이 선수들의 장점을 많이 이야기해 주셔서 모두 힘내고 있다"며 "지난 3년 동안 우승을 두 번 경험한 선수들이 많다. 그런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다들 어려운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LG의 다음 상대는 KIA 타이거즈다. 이우찬은 "지금 이 기세로 올라가면 좋은 성적으로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선수들 분위기가 워낙 좋다. 경험 많은 형들이 앞에서 이끌어주고 있어 좋은 기운이 전달되는 것 같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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