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히 4차전에 무리했다가 네가 거기서 쓰러져 버리면 우리 시리즈도 끝난다. 잘 생각해라."
삼성 라이온즈 박진만(50) 감독이 '푸른 피의 에이스' 원태인(26)에게 건넨 말이다. 당장이라도 마운드에 오르겠다는 제자를 감독이 만류했다. 결국 하루 더 휴식을 취한 원태인이 5차전 선발로 전격 출격한다.
삼성은 7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 2026 신한 SOL KBO 한국시리즈(7전 4선승제) 4차전에서 10-5로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서갔다. 2014년 이후 12년 만의 우승까지 단 1승만을 남겨뒀다.
마지막 한 걸음을 책임질 투수는 원태인이다. 삼성은 8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5차전 선발로 원태인을 예고했다. 상대는 KT의 외국인 에이스 데이비스 대니엘(29)이다.
그런데 원태인은 4차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취재진이 몸 상태를 묻자 원태인은 "좋다고는 사실 말하지 못하겠다"며 "어찌 됐든 잘 던져야 하는 게 내 목표다.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털어놨다.
삼성의 에이스가 이토록 지친 데는 이유가 있다. 원태인은 올해 정규시즌 26경기에서 7승 9패 평균자책점 4.52, 145⅓이닝 117탈삼진을 마크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마무리 김재윤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불펜으로 보직을 바꿨다.
KIA 타이거즈와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에 구원 등판해 1승 평균자책점 2.45로 활약했다. 특히 5차전에서는 9회 마운드에 올라 삼성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헌신은 계속됐다. 원태인은 지난 4일 수원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경기 후반 등판해 1⅔이닝 동안 32개의 공을 던졌다. 삼성이 연장 12회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면서 시리즈 균형을 맞추는 데 힘을 보탰다.
문제는 선발 복귀 시점이었다. 삼성은 최원태가 부진해 선발진에 공백이 생겼고, 원태인이 다시 긴 이닝을 책임져야 했다. 원태인은 "2차전이 끝나고 감독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5차전에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어 "그때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4차전도 나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막상 몸을 움직여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원태인은 "쉬는 날 치료를 받고 캐치볼을 해보니까 감독님께서 처음에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며 박 감독의 만류를 전했다.
그러면서 "내가 4차전에 나가고 5차전에 페덱이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무리해서라도 4차전에 나갔을 것"이라면서도 "내가 4차전에 나가면 5차전에는 장찬희나 불펜 데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럴 바에는 하루라도 더 쉬고 조금이라도 좋은 컨디션으로 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회복을 위해 평소의 루틴까지 내려놨다. 원태인은 "루틴이 사실 없어졌다. 지금은 회복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하루에 물도 3~4리터씩 억지로 마시고 있다. 페덱 선수가 자신이 잘 던진 게 물을 엄청 마셔서라고 하더라. 1.5리터 페트병을 계속 들고 다니면서 물을 엄청나게 마시는 것을 보고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나도 3~4리터를 마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치료도 열심히 받고 있다. 잠을 많이 자야 하는데 오후 2시 경기라 충분히 자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다. 인터뷰가 끝나면 빨리 낮잠을 자야 할 것 같다"고 웃었다.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만큼 투구에 대한 욕심도 조절하고 있다. 원태인은 "페덱과 후라도처럼 잘 던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컨디션이 100%였다면 더 끌어올리려고 했겠지만, 지금은 한 이닝 한 이닝만 잘 넘기자는 생각"이라며 "눈앞의 타자 한 명 한 명을 잘 잡는 데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시리즈 시작 전 자신을 월드시리즈에서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맹활약했던 야마모토 요시노부(28·LA 다저스)에 빗댔던 원태인이다. 실제로 그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원태인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며 "최대한 5차전에서 끝냈으면 좋겠다. 첫 번째 목표는 대구에서 우승을 확정하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6차전이나 7차전까지 가게 된다면 기꺼이 감독님의 뜻에 따라 불펜에서 대기할 예정"이라며 마지막까지 헌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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