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인 안 내면 성공하고요, 사인 내면 실패합니다."
박진만(50) 삼성 라이온즈 감독의 '유쾌한 폭로'에 기자회견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이번 가을 야구 내내 타격 페이스가 절정에 달해 있음에도 번트를 시도해 화제를 모았던 외야수 박승규(26)의 플레이에 얽힌 흥미진진한 비화가 공개됐다. 역시 '히트 포 더 팀(Hit for the team)'의 당사자다운 헌신이었다.
삼성은 8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KT 위즈를 상대로 2026 신한 SOL KBO 한국시리즈(7전 4선승제) 5차전을 치른다.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9부 능선을 넘은 삼성은 이날 승리할 경우 2014년 이후 12년 만이자 통산 9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게 된다.
결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박진만 감독은 여유와 결의가 공존하는 표정이었다. 특히 이번 가을야구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타선의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박승규의 '번트 작전'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박 감독은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전날(7일)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도 박승규는 4타수 3안타 3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한국시리즈 4차전 1회부터 김지찬이 출루하자 번트로 득점권을 만드는 모습도 나왔다.
박 감독은 "4차전 번트는 제가 작전을 낸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작전을 건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박)승규가 지금 타격 페이스가 워낙 좋다. 그래서 굳이 번트를 안 대도 되는데 본인이 자꾸 댄다"며 "원래 번트를 잘 대는 선수가 아닌데, 요즘엔 또 번트를 너무 잘 댄다. 본인도 자신감이 붙었는지 자꾸 대더라"며 웃었다.
이어 박 감독은 취재진을 웃게만든 솔직한 고백을 덧붙였다. 박 감독은 "난 승규한테 번트 사인을 단 한 번도 낸 적이 없다. 두 번 다 본인이 댄 것"이라고 강조하며 "승규는 사인을 안 내면 성공하고, 사인을 내면 실패하더라. 앞으로 경기 보시면 제가 언제 작전을 냈는지 바로 아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령탑의 지시 없이도 어떻게든 주자를 득점권으로 보내 팀 승리에 기여하겠다는 선수의 순수한 의욕과 자기희생이 만든 '번트'였다는 것이다. 사실 박승규의 이런 '팀 퍼스트' 본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승규의 대표적인 별명이 바로 '힛 포 더 팀'이다. 지난 4월 10일 대구 NC 다이노스전에서 3루타-안타-홈런을 차례로 기록하며 대기록인 사이클링 히트(히트 포 더 사이클)까지 단 2루타 하나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8회 마지막 타석에서 우중간을 가르는 큼지막한 장타성 타구를 날렸을 때, 원태인과 르윈 디아즈 등 더그아웃의 동료들은 일제히 뛰쳐나와 박승규를 향해 2루에 멈추라고 격렬하게 손짓하며 만류했다.
하지만 박승규는 2루를 밟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3루까지 내달려 기어코 3루타를 완성했다. 자신의 평생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대기록을 포기한 채 오직 팀의 1점을 더 짜내기 위해 내달린 것. 당시 박승규는 중계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며 자신의 개인 기록보다 팀의 승리가 훨씬 더 중요했다고 담담히 밝혀 팬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긴 바 있다.
타격감이 불을 뿜고 있는 한국시리즈 무대에서도 개인의 타격 욕심 대신 스코어링 포지션을 만들기 위해 과감히 배트를 눕힌 장면 역시, 그 '힛 포 더 팀' DNA가 고스란히 발현된 셈이다.
사령탑이 이토록 흐뭇하게 농담을 던질 수 있는 배경에도 그라운드 안팎에서 뿜어져 나오는 박승규의 압도적인 헌신과 긍정 에너지가 자리하고 있다. 박 감독은 박승규를 향한 진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박 감독은 박승규의 가을야구에 대해 "지금 제일 미친 듯이, 진심으로 이 가을 축제를 즐기고 있다"며 "정규시즌 때보다 훨씬 활발하고 위축되는 모습이 전혀 없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그동안 우리 삼성이라는 팀 컬러에 그렇게 파이팅 넘치는 선수가 조금 부족해서 감독으로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얌전하고, 나를 닮아서 그런지 리액션도 별로 없었다"면서 "그런데 승규가 팀 분위기를 정말 많이 바꿔놓았다. 구자욱도 주장이자 리더로서 분위기를 이끌려 리액션을 많이 해주지만, 승규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리액션을 해주다 보니 우리 벤치 분위기가 엄청나게 살아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벤치의 사인을 뛰어넘는 거침없는 자신감, 그리고 팀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기꺼이 자신을 던지는 '히트 포 더 팀'의 정신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가을야구라는 축제를 가장 뜨겁고 순수하게 즐기고 있는 박승규의 에너지가 삼성의 한국시리즈 V9 피날레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