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용과 함께 매국노 단체 일원이었던 배우 하영(33·안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경기도 안양에서 '거부'(巨富, 부자 가운데에서도 특히 큰 부자)로 통해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1928년 1월 5일, 안상호가 1927년 12월 31일 사망하며 그의 생애을 기리는 기사를 냈다. 매체는 안상호를 "고종황제의 어의를 지낸 의사"라고 소개하며 "내선(일본인과 조선인) 가정을 이루어 성공한 사람. 내지(일본인)부인과 자미스럽게(재미스럽게) 사는 의사 안상호가 세상을 떠났다"라고 보도했다.
특히 "안상호는 병원을 개업한 이래 자수성가하여 현재는 수천 석의 '거부'라는 칭송을 듣고 있다. 시흥군 안양리에는 그가 소유한 토지를 소작하는 소작인들이 세워준 돌로 만든 송덕비(공덕을 칭송하는 문자를 새긴 비)가 있다"라고 조명했다.
또한 "그의 가정생활을 살펴보면, 22년 전에 도쿄에서 결혼한 일본인 아내 이소(磯) 여사는 부덕(부녀자의 덕행)을 갖춘 인물로, 슬하에 4남 3녀의 7남매를 두었다. 일본인 부인은 자애로운 어머니로 소문나 있다. 안상호는 조선인으로서 가장 먼저 일본인 부인을 맞이한 선구자였다"라고 전했다.
안상호가 안양 일대에서 20여 년간 의려 활동을 했던 것처럼, 아들 안정호도 경성의대 치대를 졸업하고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에서 안정호 치과의원을 개원하여 의료 활동에 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후에는 경제계에 투신하여 조선파이프 공장장을 역임하였다. 아버지 안상호 때부터 안양 구시장, 남부시장 일대의 많은 땅을 소유한 안양지역 최대 지주였다고 한다. "1947년 안양시 안양3동의 땅 10만여 평을 희사하여 안양중학교 및 안양공업고등학교의 설립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어 안양에 있는 보육시설에도 1만 5000여 평을 희사하였고, 6·25 전쟁이 끝나자 비산대교에서 한국제지에 이르는 안양천 제방을 자비로 축조하는 등 안양지역 발전에 기여하였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제로 하영이 집안에 '냉장고 5대'를 자랑하고, 하영 모친이 "금고에 현금 2억 원이 있다"라고, 부친은 "우리 집안은 몇 안 되는 의료 명문"이라고 부를 자랑하기도. 뿐만 아니라 안상호 후손으로 알려진 이가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고종황제 독살의심 어의다. 나는 4년 전에 처음 알게 됐다. TV에도 나왔었다. 그냥 짧게 이름만"이라면서 "솔직히 말해서 우리 집 잘 살 거든. 나도 잘은 모르는데 대대로 잘 살았다고 들었다. 일제 때도 별 탈 없이 잘 산 거 보면 증조할아버지를 시작으로 할아버지도 친일 했겠다. 더럽다. 내가 이 집에서 태어난 게"라고 밝혔던 글도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안양시가 공식 블로그에 안상호를 두고 '독립운동가'라고 소개해 뭇매를 맞고 있다. 다만 매일신보가 소개한 안상호 송덕비는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아카이브에 따르면 '친일 시설'로 등록됐다.
하영 증조부 안상호의 매국노 행적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만큼 "그 대가로 대대손손 부의 대물림이 된 것 아니냐"라는 대중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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