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살 서갑숙, 한달동안 맥주 먹고 잔 이유(인터뷰)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1.10.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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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갑숙 ⓒ임성균 기자


오는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 '핑크'(감독 전수일)에서 서갑숙은 나이가 더 들어보인다. 1961년생이니 만 나이로 올해 쉰살. 평소 그가 동안미모로 유명했던 것을 생각하면 안쓰러울 정도다.

"제가 맡은 역할이 포구 선술집 여주인이잖아요? 고단한 몸에 눈 그늘은 지고 피부는 푸석푸석한. 목소리도 삶에 찌들어 피곤하고. 그래서 나름 몸을 만든 거에요. 촬영하는 한 달 내내 밤에 맥주 마시고 잤어요. 뱃살도 늘어지고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메마르게 나오더라구요. 성공했죠. 한 달 동안 '옥련'이 되려고 진짜 노력했어요."


그랬다. 옥련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야 했다. 아들은 정신지체를 앓고 있고 동네는 강제철거를 앞둬 어수선하고. 기댈 만한 남편이란 존재는 아예 처음부터 없는 40대의 선술집 여주인. 선술집 이름이 '핑크'인 것은 그래서 더 아프다. 옥련에게도 한때 인생이 핑크빛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을 터이니.

-'봉자' 이후 11년만에 영화 출연입니다. 감회가 어떤가요.

▶2000년 '봉자'로 부산영화제와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 갔었죠. 11년만에 그것도 작가주의 감독 작품으로 영화를 하니 아무래도 감회가 남다르죠. 작품 자체도 좋았고.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거죠?

▶작년에 연극 '남편이 냉장고에 들어갔어요'를 했는데 그 연극을 감독님이 보시고 저를 캐스팅한 거에요.

-그러고 보니 연극 제목과 이번 '핑크' 엔딩이 묘하게 겹치는데요?(스포일러라 구체적 설명은 생략)

▶어머, 그러네요. 왜 그 생각을 지금까지 못했을까? 감독님한테 물어봐야겠네.

-딸이 이번 영화에 스태프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는데요.

▶큰 딸이 올해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는데 우연히 '핑크' 촬영장에 왔다가 합류하게 됐어요. 연출팀에서 일했죠. 소품도 챙기고. 둘째 딸은 지금 동국대 영화과 2학년생인데 영화연출이 전공이에요. 제 꿈이 뭐냐면, 큰 애가 시나리오 쓰고 둘째가 연출한 작품에 제가 출연해 연기하는 거에요. 세 모녀가 작품을 해봤으면 하는 게 제 꿈이죠.

-이제 영화 얘기를 해볼까요. 옥련이 전라 상태에서 물수건으로 몸을 닦는 장면이 있던데요. 성스러운 의식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요. 가난한 선술집이지만 핑크에 오는 손님들을 맞기 위해 정성껏 손수건으로 몸을 닦고 새 옷을 갈아입는 여자. 옥련에게 이 행위는 신성한 의식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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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핑크'의 서갑숙


-정신지체 아들이 엄마 품에 안겨 가슴을 만지며 잠이 드는 장면도 인상깊었습니다.

▶냉장고에 달걀을 넣으면 갈매기가 돼 나온다고 믿는 그런 아이에요. 제가 실제로 심장판막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수술상처가 지금도 있어요. 그 가슴 상처까지 고스란히 스크린에 내보냈어요.

-아, 그게 진짜 상처였군요.

▶몸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사실 누드집('뼈 연적 18')도 섹슈얼이나 젊음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라, 아기도 낳아서 가슴도 처지고 가슴에 긴 상처도 있는 그런 내 몸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싶어 낸 거에요. 그 책('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도 출판사에서 마케팅을 그런 식으로 해서 그런 거지 속내는 내 몸의 아픈 상처를 진솔하게 보여주면 그들도 내게 다가올 것 같아 쓴 거에요.

-포구와 갯벌과 선술집 양철지붕에 내리는 비. 영화의 소리가 듣기에 참 좋았어요. 그리고 선술집이 영화 막판 왠지 살아있는 느낌까지 들고.

▶그쵸? 옥련이 있는 선술집은 유기체로 봐야 해요. 끊임없이 핑크로 '살아가는' 그런 존재. 갯벌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생명이 살아 숨쉬는 그런 곳 아닌가요. 옥련도 강체철거 반대 시위에 나서고 공권력에 잡혀가고 소란스럽지만 결국 살아가는. 이런 모습이 인간 아니겠어요?

-인간 서갑숙에게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옥련이 '핑크'라는 이름으로 선술집을 냈을 때처럼.

▶글쎄 그런 때가 있었나? 고 3때 그런 꿈은 깨져버렸어요. 그 전엔 밝고 명랑한 소녀였는데 심장병이 있다는 걸 알고 그래서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서는 그러지 못했어요. 친구들은 꿈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나는 죽음을 향해 가고. '내 짧은 인생에서 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끝에 연극을 선택한 거에요. 실험극단에 들어가고 재수해서 중앙대 연극영화과 진학하고 MBC 공채 탤런트가 되고. 그러다 제 인생이 다시 핑크빛이 된 게 심장판막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였죠. 7월16일이 제 생일인데 1983년 7월16일 수술을 했어요. 태어난 날 죽을지도 몰랐는데 결과적으로는 새로 태어난 날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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