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세상은 못바꿨어도 움직이게는 했다②

[★리포트]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1.10.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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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한국영화계의 핫 이슈는 단연 '도가니'다. '트랜스포머3'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100억원을 쏟아 부은 한국형 3D '7광구'도 아닌, 25억원 남짓한 제작비로 누구도 가능성을 믿지 못한 바로 '도가니'였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도가니'는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다. 할리우드 영화 '리얼스틸'이 개봉하며 잠시 주춤하는 것 같더니 18일 다시 박스오피스 2위로 부상하며 누적 관객 441만 9952명을 기록했다. 450만 돌파를 눈앞에 뒀다.


'도가니'는 2005년 광주 인화학교에서 교장과 교직원,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성폭력과 폭행을 가했던 실화를 다룬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어두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이기에 투자도, 제작도 쉽지 않았다.

군대에서 원작을 본 공유는 영화로 제작되길 간절히 바랬고, 소속사는 영화 판권을 구입했다. 제작사 삼거리픽쳐스와 힘을 합쳤지만 고난의 길이었다. 영화 크랭크업 파티 때 공유는 투자자들 앞에서도 이렇게 얘기했다. "이 영화 비록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더라도 단 몇 명이라도 공감할 수 있다면 정말 의미있는 일을 한 것"이라고.

결국 협력해서 선을 이뤘다.


기자시사회가 끝나고 SNS를 통해 '꼭 봐야 할 영화'라는 입소문이 돌았다. 영화 속에서 조명한 광주 인화학교 사건과 그 사건이 어떻게 잊혀졌는가에 대한 분노가 사회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마침 국정감사에 10.26 재보선을 앞둔 정치권은 발 빠르게 반응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재추진하고 아동성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재수사 요구가 들끓자 청장 직속 지능범죄수사대를 광주에 파견하고 광주경찰청 성폭력 사건 전문수사관 10명과 함께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학기술부는 기숙사가 설치된 전국 41개 특수학교에 다니는 장애학생의 생활 실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인화학교를 끝내 폐교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경찰청장, 대법원장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영화를 관람하고 한 마디씩 더하는 것도 흥행에 일조했다. '도가니'를 모르면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가니' 돌풍은 영화계에 많은 것을 남겼다.

크게 질러서 크게 먹는, 한동안 한국영화계에 물량공세 신드롬이 일었던 데 대해 반증이다. 마침 '7광구' '퀵' '고지전' 등 100억 블록버스터들이 잇달아 흥행에 쓴 맛을 본 올해 한국영화계에 뒤돌아 볼 수 있는 지표 역할을 했다. 한국영화의 자산은 30~40억대 중간 규모의 다양한 영화들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걸 또 다시 확인했다.

갈수록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되는 영화계에 '도가니'는 좋은 제작사와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됐다. 올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영화들은 '조선명탐정', '써니' '최종병기 활' '마당을 나온 암탉' 등은 각각 청년필름, 토일렛픽쳐스, 다세포클럽, 명필름 등 중견 프로듀서들이 수장으로 있는 제작사들이다. 대기업 입맛에 맞는 영화들이 아닌 역량 있는 프로듀서들의 기획력과 창의력이 돋보였다.

'도가니'는 사회적인 소재를 다룬 어두운 이야기도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흥행 여부가 달라진다는 것도 증명했다. '도가니' 열풍은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영화가 완성됐기에 가능했다. '이태원 살인사건' 등 사회적인 소재를 스릴러 장르에 담았지만 성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틀에 담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깊어졌다.

'도가니' 흥행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효과를 입증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동안 SNS를 통한 마케팅 노력은 많았지만 효과는 반신반의했다. 더군다나 마케팅을 통한 홍보는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도가니'는 좋은 영화는 SNS를 통해 자발적인 입소문으로 큰 동력을 낸다는 것을 입증했다. 유료시사회를 비롯해 그동안 개봉 전 이뤄졌던 일반 시사회에 SNS 효과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도가니'는 세상을 움직였다. 국감 시즌이 끝나고 10.26 재보선이 본격화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그래도 바람은 불었다. 17일 열린 대종상 시상식 레드카펫에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올라 한국영화 자막 상영 의무화를 외쳤다. 그동안 그런 일도 없었고, 그런 일이 있더라도 세상의 주목을 받진 못했다. '도가니'가 일으킨 바람 중 하나다.

'도가니'는 영화의 힘을 보여줬다.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움직일 순 있는. '도가니'가 일으킨 변화를 지켜보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도가니'는 흥행과는 별개로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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