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정치? 생각도 없고 영화만 하고싶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2.01.0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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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1957년 다섯 살 때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해 55년 동안 한 우물을 판 배우. '국민OO'가 동네 짜장면집보다 남발되는 요즘, 국민배우라 칭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

안성기가 주인공으로 관객 앞에 선다. 19일 개봉하는 '부러진 화살'은 안성기에게 많은 빚을 진 영화다.


'부러진 화살'은 '남부군' '하얀전쟁'의 정지영 감독이 1998년 '까'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작품. 대학교수가 항소심 부장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살해하려 했다는 혐의로 실형 4년을 선고받은 이른 바 '석궁사건'을 소재로 했다. 사법부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지적해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안성기와 정지영 감독이 '남부군' '하얀전쟁'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3억원이 안되는 제작비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10배를 더 들인 영화보다 빼어난 재미와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 중심에 안성기가 있다. 안성기가 '부러진 화살'에 출연하기로 하면서 박원상 문성근 등 쟁쟁한 배우들이 합류할 수 있었다. 안성기는 영화의 중심에서 예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벗고 정의를 내세우지만 깐깐하기 그지없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안성기 데뷔 이후 최고 연기란 평이 따른다.

안성기는 그런 평에 겸연쩍은 듯 웃었다. 그는 인터뷰 직전에도 합법 다운로드 캠페인에 가수들을 섭외하기 위해 이승철과 통화 중이었다. "나는 그냥 심부름꾼"이라는 안성기와 이야기를 나눴다.


-'부러진 화살'이 연기 인생 55년 중 최고작이란 평들이 이곳저곳에서 나오는데.

▶다른 것들은 좋다고 해줬지만 사실 아주 잘했다 이러지는 않았으니깐.(웃음) 영화 속 캐릭터와 내가 잘 맞았던 것 같다. '라디오스타'처럼 편하다기보단 그동안 못 봤던 껄끄러운 인물을 잘 소화했다고 봐주는 것 같다.

-감독을 잘 안타는 배우인 줄 알았는데 '부러진 화살'을 보면 사뭇 많이 타는 배우였단 걸 새삼 알게 되던데.

▶감독은 배우들에게 너무 중요하다. 어떤 영화에는 기막히게 어울린다고 하고, 어떤 영화는 영~인 경우도 있지 않나. 정지영 감독은 '남부군'과 '하얀 전쟁'을 같이 했지만 굉장히 잘 맞는다. 서로 소통도 잘 되고. 세월의 흔적이 안 묻고 새롭고 젊은 영화를 찍은 것 같다.

-맡은 교수 역할이 자기 고집만 강한 깐깐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라 기존 역할과 전혀 딴판이었는데.

▶정지영 감독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너무 이 사람 편만 들지 않도록, 근사하게 보이지 않도록 표현하는 게 첫 번째였다. 상업영화에는 보통 주인공에 매력을 주기 마련이다. 나 같은 경우는 역할을 맡으면 부드럽고 재미있는 모습이 덧칠되기 마련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모습을 주지 않으려 했다.

-영화는 사법부의 문제점을 정조준했는데.

▶처음에는 정지영 감독이 유명배우를 안 쓰려했다. 이야기가 예민하니깐 기성배우들이 안할 수도 있고, 아무래도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이니깐. 난 시나리오를 보고 판단했다. 석궁사건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 같은 건 잘 모르겠고, 이 이야기가 얼마나 영화적으로 잘 표현됐나를 봤다.

-영화계 어른 중 한 명인데 정치색을 드러낸 적이 없다. '부러진 화살'도 정지영 감독은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데 반해 안성기는 작품으로 이야기하겠다고만 하는데.

▶난 그냥 영화를 통해서 뭐든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도 영화로만 하고 싶고, 사랑도 영화로만 하고 싶다. 현실에선 그냥 소시민으로 살고 싶은 생각이다. '부러진 화살'도 그냥 고발을 위한 영화라면 다큐멘터리여야 한다. 상업배우로서 내 역할은 상업영화로 한 번 걸러주는 것이다. 그런 전달을 목표로 할 뿐이다.

-배우 안성기와 일반인 안성기에 대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그런데 '부러진 화살'은 배우 안성기에 대한 선입견을 유쾌하게 깨어줘서 더 재미가 있는 것 같은데. 배우 인생 55년인데 새로운 변화를 찾고 싶은 것인지.

▶ 변하려고 하려고 변할 수는 없다. 배우는 어떤 영화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영화배우란 선택되어지는 것인 만큼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어떤 연기든 부드럽고 재미있는 것을 담아왔는데 '부러진 화살' 이후 조금 다른 것을 불어넣을 수 있냐면 그건 맞는 얘기다. 캐릭터가 전혀 그런 구석이 없으면 할 수 없지만 그런 부분이 있다면 이번 캐릭터에서 보여준 것처럼 좀 더 건조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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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균 기자


-각종 영화제와 단체에 참여하고 있는데다 영화일도 하고 경조사까지 하는데 개인생활은 어떻게 보내는지. 세속적이지만 한 달 경조사비용도 상당할 것 같은데.

▶부산,전주,부천,제천,DMZ영화제에 참여하고 있고. 아시아나단편영화제도 하고 있고, 합법다운로드 캠페인, 환경연합 홍보대사, 유니세프 친선대사, 신영균재단 등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내 시간이 없긴 없다. 경조사비용도 직장인 월급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여행이라도 갈 수 있으려나 마음 먹어도 잘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수십년을 살아와서 내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마음은 먹지만 그래도 안 된다. 계속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뭐, 그래도 다른 부업을 하는 게 아니니깐 영화 외에는 내 시간을 쓸 수 있다. 직장인처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집을 이사해서 남는 시간에 열심히 청소를 한다.

-'부러진 화살'이 법정드라마로 인상 깊은 건 미국 법정영화를 흉내내지 않고 정공법으로 찍었는데 드라마틱하게 연출된 것도 한 몫하는데.

▶정지영 감독도 잘했지만 김형구 촬영감독이 정말 잘 찍었다. 또 문성근이 최고의 연기를 하지 않았나. 재판관으로 팽팽하게 날이 서 있으니깐 그게 굉장한 긴장감을 준다. 이경영도 애매모호한 감정을 기가 막히게 잘 했고.

-지난 여름에는 '7광구'에서 식스팩을 선보였고 이번에는 사회고발 영화를 선보였는데.

▶사회고발도 영화의 한 역할이다. 여러 영화들이 있어야 영화계가 건전해진다. 내 몸은 체력적으론 40대 초반 정도 인 것 같다. 꾸준히 운동을 하니깐. 그래서 '페이스 메이커'에서도 막 같이 달리고 싶더라.

-2012년은 정치의 해인데. 벌써부터 하마평이 오르내리기도 하는데.

▶그런 제의도 없었는데 괜히 이런 저런 소리만 나오더라. 전혀 생각이 없다. 예전에도 문화부 장관 후보에 올랐는데 "아직 준비가 안 돼있다"고 내가 했더란 기사도 났다. 그런 말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일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나와 안 맞는다. 난 영화하는 게 맞다.

-'부러진 화살'과 김명민과 같이 출연한 '페이스 메이커'가 같은 날 개봉하는데. 솔직히 어떤 영화가 더 잘됐으면 좋겠나.

▶'페이스메이커'가 '부러진 화살'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갔다. 물리적으론 '페이스 메이커'가 좀 더 잘 되고, '부러진 화살'은 들어간 돈 만큼 또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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