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 vs 브라우니, 2012 최고의 소리없는 강자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2.12.0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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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늑대소년'의 송중기(왼쪽)와 TV예능 '정여사'의 브라우니


제 잘났다고 핏대 세워대는 현실이 워낙 싫어서일까, 별의별 소음 가득한 현실이 짜증나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책임질 능력이나 마음도 없으면서 잔뜩 말만 앞세운 인간들이 하도 많아서일까. 올해 TV와 영화에는 유독 '소리 없는' 이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화 '늑대소년'의 송중기와 KBS '개그콘서트-정여사'의 브라우니가 그 주인공이다.

어느새 전국 관객 660만명을 동원한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은 말 못하는 송중기에 전적으로 기댄 영화다. 마치 1970년대 TV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에 나온 파트라슈처럼, 혹은 21세기 국민예능 '1박2일'에 나온 순백의 상근이처럼, 소녀(박보영)의 사랑은 그리고 관객의 감동은 소년이 말을 할 수 없었기에 가능했다.


따져보자. 폐병 걸린 어린 소녀가 어느날 야생에서 튀어나온 듯한 늑대소년을 알게 됐다. 소녀는 처음에 이 늑대처럼 밥을 우걱우걱 먹어대는 소년이 죽도록 싫었다. 거친 본능을 달래고자 애견교본을 보면서 소년 길들이기에 나선 소녀. "기다려, 먹어, 가지마." 소년은 묵묵히 이 소녀 말만은 들었다. "좋아" 혹은 "싫어" 이런 말 한 마디 안했다. 소녀의 입장에서 소년은 충직한 애완늑대였다.

관객은 이 소년에게서 판타지를 봤다. 자신을 이렇게나 묵묵히 믿고 따르는 상대가 한 명쯤은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과, 자신의 첫 사랑은 영화처럼 47년쯤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착각이 뒤섞인 그런 판타지. 더욱이 그 소년은 교활한 무리로부터 자신을 완벽하게 지켜주는 초인적 힘까지 갖췄다! 영화는 어쩌면 이런 소년에 대한 완벽한 판타지를 위해 소년에게서 '말'이라는 현실을 거세시켰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런 송중기가 말을 또박또박 했더라면? 늑대처럼 힘도 세고 배우처럼 잘 생긴 소년이 만약 말까지 청산유수처럼 잘 했더라면? 영화를 보며 느낀 감동과 눈물의 8할은 말랐을 터. 아니, "꺼져! 가버려!"라는 박보영의 빈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등을 돌린 송중기 자체가 가능하지도 않았을 터. 맞다. 영화 막판 소년의 입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온 "많이..기다렸습니다. 여전히 예쁩니다"라는 말은 그래서 관객 마음을 더욱 미어지게 만들었다.


최근 고소영과 CF까지 찍고 비슷하게 생긴 시베리안 허스키 인형까지 불티나게 팔린 '정여사'의 브라우니 역시 올해 TV예능을 빛낸 소리 없는 강자였다. 어느날 정여사 정태호가 목줄을 끌고 데리고 나온 귀여우면서도 도도한 표정의 브라우니.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상근이나 파트라슈처럼 짓지도 않고, 늑대소년처럼 으르렁거리지도 않았다. 정여사가 "물어"라고 명령해도 혀를 반쯤 내민 똑같은 표정, 발로 뻥 차 넘어뜨려도 똑같은 표정에 똑같은 자세를 할 뿐이다.

그런데도 브라우니는 상근이를 제치고 국민견 반열에 올랐다. 왜? 소품에 불과한 봉제인형에 '브라우니'라는 캐릭터 명칭까지 부여한 그 앞뒤 맥락에 답이 있다. 정여사는 일개 개 인형에게 브라우니라는 '인격'을 부여했고, 시청자들은 이런 브라우니를 통해 어린 시절 이름까지 지어주며 대화를 나누곤 했던 인형에 대한 추억을 되살렸다. 그리고 그 인격이란 분명 인형 주인으로서 인간들의 키치적인 취향과 이기심, 가학성향이 반영된 그런 인격이었다.

"어휴 부끄러워하긴.." "어머, 브라우니는 차도남!" "시크해~~" 등등. 브라우니의 심정과 속내를 이처럼 주인 마음대로 해석해버리는 것도 브라우니가 말 못하는 인형이었기에 가능했다. 더욱이 모든 인형이 그렇듯이 브라우니의 표정은 늘 한결 같다. 주인이 속상하고 화나고 슬프고 피곤해도, 브라우니 눈은 언제나 초롱초롱하고 표정은 언제나 생기발랄하며 입가에는 언제나 해맑은 미소가 번진다. 그랬다. 누군가 변함없이 내 곁에 있어주고, 한결같은 표정으로 나만을 봐주는 그런 환상을 시청자들은 브라우니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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