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구의 '짱구일기'①- "챔피언을 꿈꾸다"

[김재동의 레전드 드라마]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4.03.1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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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가 ‘김재동의 레전드 드라마’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시대의 레전드들을 드라마로 읽는 연재물입니다. 전설로 남은 스포츠와 연예스타들의 삶속에 담긴 드라마틱한 석세스스토리를 드라마로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기본적으로 인터뷰를 통해 레전드의 삶을 구축하는 다큐물이 되겠지만 여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드라마적 재미를 곁들여볼 예정입니다. 첫 회의 주인공은 지난 2000년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서 25인’에 선정된 ‘짱구’ 장정구입니다. 1983년 WBC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후 15차 방어에 성공하고 타이틀을 자진 반납했던 장정구의 삶을 시작으로 ‘김재동의 레전드 드라마’ 막을 올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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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구의 '짱구일기'①- "챔피언을 꿈꾸다"

S#1 부산 아미동 아미초등학교 운동장

2012년 어느날.


동문 모임이 열리고 있다. 단상 주변에 몇백석 정도의 의자들이 놓여있고 좌석은 1기부터 40번대까지 기수별로 열지어있다. 기수별로 흰머리 노신사부터 중늙은이에 장년층까지 고른 연령대의 남녀들이 모여 앉아 단상을 주목하고 있다. 단상에는 동문회장인 가수 정훈희가 올라와 설명중이다.

정훈희 ..그래서 저희 4기가 이번에 다같이 환갑을 맞이했습니다.

단하의 동문들이 박수와 환호로 4기 동문들의 환갑을 축하해주고 있다.

정문쪽으로부터 트렌치코트를 입은 작은 사내가 다가와 14기란 팻말을 확인하고 맨 뒷열에 앉는다.

정훈희 그래서 제가 부탁 말씀드리는 건 저희 동창들 환갑기념으로 여행 가려는데 협찬들 좀 부탁한다구요.

단하로부터 종전의 박수와 환호대신 ‘에이~’하는 웃음담긴 야유가 흘러나온다.

정훈희 아니 우리만 받자는 게 아니라 후배님들 때 우리도 협찬할거거든요. 이런 식으로 기수 벽 허물고 서로서로 도와가는 거 좋잖아요.

짱구, 앞좌석 남자 향해 한마디 던진다.

장정구 야 우리 환갑때 저 누부 동기들 일흔 한 살 아이가. 그라먼 다이할 분 다이하고 머 찬조나 걷히겠나?

앞자리 사내 돌아본다 김갑배다.

김갑배 짱구아이가? 언제 왔노?

장정구 한참 안됐나?

김갑배 와 말 안코?

장정구 니 첫사랑 훈희누부 보느라 넋 놓고 있는데 내 방해할 수 있나?

김갑배 (짱구 어깨 한 대 치며) 차라, 자슥아.

장정구 하이고마 갑배 마이 컸네. 세계챔피언도 때리고.

김갑배 남들은 몰라도 낸 니 쫌 때리도 돼.

장정구 와?

김갑배 니 애리서 내를 조옴 많이 팼나? 긍까네 니 내한테 쫌 맞아도 돼.

장정구 (얼굴 들이대며) 그래 갑배야, 인자는 삭신 늙었으께네 살살 부탁하께.

김갑배 징그러버 징그러버, 하이고 징그러버 이 자슥.(두사람 서로 어깨를 감싸안으며 웃는다)

S#2. 아미동 골목길

산동네로 오르는 길이다.

정구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오르막을 오른다. 동네는 참 많이 변해 있다.

골목을 벗어나자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 복판에 파출소가 보인다.

파출소는 10여 계단 위에 높이 자리잡아있다. 파출소를 본 정구의 입매가 호선을 그린다.

정구 성큼성큼 걸어가 파출소 맨 아랫계단에 털썩 앉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이 골목 저 골목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난기서린 미소를 머금고 상체를 곧추세운채 호기롭게 이 골목 저 골목을 둘러보는 장정구, 카메라가 각각의 골목을 훑고 그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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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에만 오르면 세상부러울게 없었다는 어린시절의 장정구. 만면에 웃음이 넘쳐흐른다.


김갑배(E) 니 그거 기억나나? 공권력앞에서 니 나한테 10원 삥뜯은거

카메라 돌아와 다시 비춘 파출소앞 맨 아랫계단엔 어린 시절의 장정구가 앉아있다.

자막 1974년.

가방을 둘러맨 채 골목을 떠돌며 올라오던 아이들이 장정구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 돌아가려한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어린 갑배가 잡는다. 아이들이 보면 갑배가 턱짓으로 정구쪽을 가리킨다. 저만치 어린 정구가 계단에 앉은채 손짓만으로 아이들을 부른다. 낭패한 표정으로 주눅들어 정구를 향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그 와중에 덩치 큰 갑배를 앞세운다.

이만치 보는 시선에 아이들은 정구앞에 도열해 울상으로 삥을 뜯긴다.

아이들은 한번씩 파출소쪽을 올려보지만 파출소에선 아무도 나와보지않는다.

갑배는 한번 엉까보려다 머리 하나 작은 정구가 주먹 드는 시늉을 하자 잽싸게 10원 지폐를 꺼내놓는다.

수금이 끝나자 기쁜 표정으로 뛰어가는 정구. 그 뒷모습에 돌을 집어드는 갑배.

문득 아이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정구. 영락 애다.

슬그머니 돌을 떨구며 마주 손흔들고 마는 갑배.

정구는 골목틈으로 사라지고 세아이 고개를 떨군채 집을 향한다.

S#3. 만화가게

아이들 보다 어른들이 더많은 만화가게. 초여름 더위에 사람이 많이 몰린 탓에 모두 부채나 모자를 부치면서 tv수상기를 바라보고 있다. 어린 정구도 맨 앞줄을 차지하고 수상기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자막과 함께 아나운서의 감격에 찬 해설이 나온다.

아나운서 ...한국이 낳은 세계 챔피언 홍수환! 그는 이역만리 적진에 뛰어들어서 세계 왕좌를 차지했다...(당시 화면 계속)

1974년 7월 3일 남아공 더반시에서 열린 홍수환과 아놀드 테일러의 밴텀급 세계타이틀매치가 흑백으로 방영되고 있다. 당시 남아공엔 방송국이 없어 필름으로 제작한 것을 방영하는 중이다.

마침내 공이 올리고 1회부터 홍수환의 적극적인 대시에 모두가 응원의 함성을 올린다. 자신도 환성을 올린 장정구 뒤를 돌아 환호하는 사람들을 돌아보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다시 수상기에 몰입한다.

1라운드에 벌써 두차례나 홍수환이 너무 고개 숙인다는 주의를 받자 ‘심판 뒈져라’ 등 야유가 터져나온다.

1라운드 종료직전 홍수환의 레프트훅에 아놀드테일러가 다운당하자 환호성이 넘쳐난다.

어린 장정구의 눈은 화면에 빨려들고 있다. 주변의 소음들은 점점 멀어지고..

S#4. 골목길/밤

어둠속에 작은 인영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걸어올라오고 있다. 장정구다. 어둠속에서 나름 섀도 복싱을 하며 올라오는 장정구. 가까이 올라오다 크게 훅을 한번 휘두르고는 양팔을 벌린채 폴짝폴짝 뛴다. 카메라 다가가면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장정구 (목소리는 잔뜩 줄였지만 흥분은 살아있다) 세계챔피언. 세계챔피언이 탄생했습니다. 장정구, 장정구 선수가 세계 챔피언을 먹었습니다. 어무이 내 챔피언 뭇따. 챔피언 뭇따 아이가..

진심으로 열기에 차고 환호에 취한 듯한 장정구의 모습에서.

S#5. 학교 운동장

6학년 체육시간이다. 아이들이 앉아있는 가운데 선생님이 글러브를 두 개 들고 나선다.

선생님 다들 홍수환선수 챔피언 뭇는거 봤나?

아이들 예!

선생님 그래. 오늘 체육시간에는 머스마들끼리 꼰투 한번 해보자. 자 누구 한번 해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본나!

작은 주제에 맨 뒤쪽에 쭈그려앉은 정구 손을 움찔 들려다 고개를 젓고 마는데 한 여자아이 “쌤, 짱구를 추천합니더”하고 외치자 아이들 모두 “짱구!”를 연호한다.

정구 고개를 들어보면 선생님 포함 모든 아이들이 웃음으로 박수를 치며 “짱구!”를 연호하고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주목과 환호를 받아본 기억이 없는 정구로선 어리둥절하다.

선생님 퍼뜩 안나오고 멋하노? 니가 챔피언이가? 뜸들이구로.

(시간경과) 정구와 갑배가 글러브를 끼고 준비를 마쳤다. 정구는 자신만만한 표정이고 머리 하나 큰 덩치 갑배는 울상인채로 맞선다. 선생님 땡 소리에 시작되고 엉덩이를 뺀채 주춤대는 갑배를 향해 근성있게 돌진하는 정구. 갑배의 눈감고 휘두르는 주먹을 피해내며 날렵하게 안면에 펀치를 적중시키고 갑배는 그대로 다운되고 만다. 다시 달려들려는 정구를 선생님이 가로막는다.

선생님 와 일마!... 짱구 니 꼰투 배웠나?

정구 (기분좋다) 아닌데예.

선생님 쬐깐한게 뭐 이리 잘하노 어이?(하며 정구의 머리를 쓰다듬고)

정구 스스로 자랑스럽고 기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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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마른체구지만 눈빛에서 특유의 근성을 뿜어내고 있는 어린 장정구.


S# 6. 골목

집앞 골목을 정구가 폴짝폴짝 뛰며 올라온다. 발걸음에 신이 묻어난다. 선생님의 칭찬도 듣고 반친구들의 선망도 받았다. 다 권투덕이다. 뛰던 정구 원투스트레이트를 날려보며 집을 향한다.

S#7. 집

정구 집안으로 들어서며 톤 높여 인사한다.

정구 핵교 댕겨 왔심데이

하고 보면 마루에서 김치 놓고 소줏잔 기울이던 아버지가 심드렁하니 돌아본다. 대낮인데도 자작중이다. 어린 정구에 비해 아버지는 할아버지래도 좋을만큼 늙어있다.

정구父 살살 댕기라 야. 글카다 자빠디갔어.

정구 (마루에 가방 벗어놓고 다가앉으며) 아부지예. 지 오늘 칭찬들었심더.

정구父 팅탄? 뉘기래 팅탄했단기야?

정구 쌤요. 우리 쌤이 내 잘했따꼬 칭찬했심더

정구父 (한편 기분좋고 한편 못미더운 기분으로 웃으며) 아새끼래.. 기래 니가 뭘 잘했는데?

정구 꼰투요, 꼰투

정구父 꼰투?..주먹질 말이네?

정구 야. 지가 갑배를 한 방에 따운시켰심더.

정구父 메야? (화가 나 빗자루라도 찻듯 주리번거리며) 이..이.. 간나새끼..

정구 (화들짝놀라 문간으로 도망가며) 와요?

정구父 동네도 모자라서 학교까지 가서 쌈질이네?

정구 쌈 안했심더.

정구父 친구 팬 게 쌈 아니고 뭐이가. 이노무새끼. 날래 못오가서?

정구 (악쓰며) 누가 쌈했다캅니꺼? 꼰투했댔지. 암것도 모르면서 씨. (서운함에 뛰쳐나간 다.)

정구父 저 보라. 저 보라. 아새끼래 저..(허탈한 표정에서)

정구(E) 갑배야! 갑배야!

S# 8. 갑배 집 앞

정구가 약이 오른채 갑배를 부른다.

정구 갑배야! 갑배 없나?

문이 빼꼼히 열리며 겁에 질린 갑배 얼굴이 보인다.

갑배 와?.. 와그라는데?

정구 니 나온나. 퍼뜩 나와봐라.

갑배 (마지못해 나서며) 어무이가 공부하라캤는데..

정구 니 말해봐라. 니캉내캉 오늘 학교서 싸웠나?

갑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

정구 맞제? 아니제? 안싸웠제?

갑배 (안심돼 고개 끄덕이며) 응... 안 싸웠다. 그냥 니가 나 때린기지.

정구 (벙 떠 보다가) 이 씨.(갑배 배에 훅을 한방 먹이고 달려간다)

갑배 헉 배를 감싸고 주저앉아 달려가는 정구의 뒷모습을 본다.

갑배 (약 오르고 억울해서 소리 빽 지른다) 야이!..(톤다운해서) 개새꺄!... 씨이

S# 9. 놀이터

‘끼익 끼익’ 낡은 그네의 소음이 들린다.

70년대 변두리의 열악한 놀이터다. 미끄럼틀과 그네, 시소정도만 간신히 있는..

꼬맹이들이 미끄럼틀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놀던 꼬맹이들 흘끔흘끔 그네 쪽을 돌아보지만 이내 포기하고 내처 논다.

그네에는 정구가 고개를 숙인채 혼자 흔들리고 있다. 그네의 흔들림처럼 심사가 많이 심란하다.

정구 (혼잣소리) 내 언제 쌈했다캤나..꼰투했다캤제.. 쌤도 잘했다캤는데.. 와 혼내키는데? 씨이...

갑자기 발로 건성으로 밀던 그네에 두발로 올라서며 세게 박차를 가하는 정구.

그네가 점점 진동폭을 키워간다.

정구 (그네의 진동폭에 맞춰 점점 커지는 목소리로) 그래도 내는 꼰투 할끼다. 내는 꼰투 할끼다. 내는 꼰투할끼다!

하늘로 박차오르는 짱구의 얼굴에 어느새 환한 미소가 담긴다.

S# 10. 아미동 전경

카메라 높은 곳에서 아미동 전경을 훑으면 그 전경 전체로 퍼져나가는 정구의 목소리

정구(E) 내는 꼰투해가 챔피언 될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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