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명의 오디오매칭]④템포25+스펙트랄 프리,파워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4.04.04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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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랄 프리앰프 DMC-12


예전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대사가 나옵니다.

"홍시입니다." "어찌 홍시라 생각하느냐?" "예? 저는, 제 입에서는, 고기를 씹을 때 홍시맛이 났는데..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인데.." 한마디로 어린 장금의 절대미각을 만천하에 알린 대목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올해 일곱살 된 어린 막내 딸에게 브람스의 피아노 3중주 1번을 들려준 날이었습니다. 마리아 조안 피레스가 피아노, 오거스탱 뒤메이가 바이올린, 지안 왕이 첼로를 연주해 DG에서 나온 음반입니다. 1악장이 시작되면 피아노 연주가 먼저 들리고 그 다음 가세하는 악기가 지안 왕의 첼로입니다. 이때 딸에게 물어봤습니다. "이게 무슨 악기 같아?" 딸은 서슴지않고 "첼로!"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이 1악장 첫 부분에서 들리는 첼로 소리는 만약 잠시 후의 바이올린 소리와 대비되지 않았더라면 첼로의 것이라고 맞히기 힘들거든요. 통상의 첼로 사운드보다 약간 높고 하늘거리며 가볍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어찌 첼로라 생각했어?" 순간 딸은 저를 의아하게 쳐다보더군요. 마치 어린 장금이 이렇게 답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 저는, 제 귀에는, 음악을 들을 때 첼로맛이 났는데..어찌 첼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그냥 첼로맛이 나서 첼로라 생각한 것인데..." 참으로 정상궁 같은 우문이었던 것이지요.

[김관명의 오디오매칭] 4번째 편은 이 재미난 에피소드를 안겨준 브람스 피아노 3중주 제1번을 결과적으로 아주 제대로 들려준 조합입니다.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독일 스피커와 미국 앰프의 매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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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피직 템포25



④오디오피직 템포25+스펙트랄 프리 DMC-12, 파워 DMA-50

독일 오디오피직(Audio Physic)사의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템포25(Tempo 25). 첫인상은 '왜소하다'는 것입니다. 가격대가 꽤 높은데도 '없어' 보입니다. 물론 인클로저의 목재 질감은 매끄럽고 보드라운 것이 고급스럽긴 합니다. 그럼에도 만약 오디오파일 남편이 이 가격대를 알려준 상태에서 집에 들여놓으면 단박에 세게 한소리 들을 게 분명합니다. B&W나 KEF처럼 번쩍번쩍 폼나는 것도 아니고, 탄노이나 하베스, 스펜더처럼 고풍스러운 가구미를 풍기는 것도 아닌데다, 매지코나 다인오디오, 에스텔론처럼 하이엔드적인 풍취를 내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게 다 좁아도 너무 좁아보이는 전면 배플과, 얼핏 보면 장난감처럼 보이는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유닛 때문입니다.

템포25의 전면 배플(폭)은 18.7cm에 불과합니다. 한뼘 정도입니다. 전에 매칭을 해봤던 탄노이 스털링SE가 39.7cm였고, 소형 모니터 스피커라 할 KEF LS50도 20.0cm였습니다. 더욱이 좁은 전면 배플 상단에 1.75인치 트위터와 5.9인치 미드레인지 유닛이 바싹 몰려있으니 어딘지 여유도 없고 상당히 휑한 느낌마저 듭니다. 앞에서 보면 '덜렁' 이 두 유닛이 전부입니다. 더욱이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인데도 키가 1m에 불과하고, 약간 뒤로(7도) 기울어 있는 모습 또한 약간 건방져 보이기까지 합니다. 정말 이런 스피커에서 하이엔드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 윗급 라인인 '비르고'(Virgo)가 비르고당이라 불리는 열혈 팬들을 거느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과연 '템포'는 형만한 아우 소리를 들려줄까요?

오디오피직은 엔지니어 요아힘 게르하르트가 1985년 창립한 독일의 하이엔드 스피커 제조사입니다. 피직(Physic)은 물질의 의미가 아닌 약과 치유의 뜻입니다. '오디오로 치유한다'는 뜻이겠죠. 어쨌든 이 브랜드는 'No Loss of Fine Detail'이라는 기치 아래, 자체 개발한 트위터(HHCH2)와 미드레인지 유닛(HHCM)을 자사 모델에 장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현재 라인업은 밑에서부터 TV, Classic, High-End, Reference 4가지로 나눠지며, 템포는 하이엔드, 비르고는 레퍼런스 라인업의 대표 모델로 알려져있습니다. 창립 25주년을 맞은 지난 2010년 기념모델로 비르고25(레퍼런스), 스콜피오25, 템포25, 시타라25(이상 하이엔드) 등이 일제히 출시됐습니다.

앰프에 물리기 전 템포25를 좀 더 찬찬히 살펴봅니다. 트위터는 세라믹으로 코팅된 1.75인치 알루미늄 소재 콘형 트위터입니다. 오디오피직에서는 이 자체 개발한 트위터를 HHCT2(Hyper Holographic Cone Tweeter)라고 부릅니다. '홀로그래픽'도 성에 안찼는지 앞에 '하이퍼'까지 붙였네요. 어쨌든 이 조그만 트위터가 고역대를 40kHz까지 커버합니다. 5.9인치 알루미늄 콘형 미드레인지 유닛 역시 HHCM(Hyper Holographic Cone Midrange)이라 불립니다. 그런데 캐비넷 측면을 보니 양쪽에 하나씩 7인치짜리 알루미늄 콘형 우퍼가 붙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등을 마주댄 우퍼 2발까지 포함해 3웨이 4스피커로 구성된 베이스 리플렉스(후면) 폴로어스탠딩 스피커가 템포25의 실체였던 겁니다.

참고로 HHCT 트위터는 2010년 템포25에서 처음 채택했고, HHCM 유닛은 2007년 템포6에서 처음 채택했습니다. 이전까지 트위터는 스캔스픽제품, 미드레인지는 시어스제품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측면 우퍼는 2005년 템포4에서 처음 장착됐고요. 2000년 템포3에서는 전면 트위터 밑에 똑같은 사이즈의 우퍼가 2개가 장착됐는데 하나는 저역용, 다른 하나는 중저역용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계속 진화해온 템포25의 무게는 20kg, 높이는 100cm, 폭은 18.7cm, 안길이는 32.0cm, 임피던스는 4옴, 감도는 89dB, 주파수대역은 32Hz~40kHz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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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피직 템포25, 스펙트랄 DMC-12, DMA-50


이 템포25에 물려본 앰프는 미국 스펙트랄(Spectral) 제품입니다. 프리앰프는 투명한 사운드, 파워앰프는 광대역 재생과 스피드, 스피커 제어력으로 유명한 브랜드죠. 이 중에서 프리앰프는 1991년 나온 전원장치 분리형 DMC-12, 파워앰프는 1986년 나온 출력 80W(8옴)짜리 DMA-50을 조합해봤습니다. 스펙트랄 프리와 파워가 워낙 낯을 가린다는 소문이 파다해, 안전하게 같은 형제들끼리 맞불려본 것이지요. 둘 다 현재는 단종된 모델입니다. 2014년 현재 스펙트랄 프리앰프는 DMC-15SS, DMC-30SS, 파워앰프는 DMA-200S S2(180W. 이하 8옴 기준), DMA-260(225W), DMA-360(300W), DMA-360S(350W), DMA-400(350W) 등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프리앰프 DMC-12는 우선 우측의 큼지막한 노브가 눈에 띕니다. 맨 왼쪽이 볼륨 노브, 가운데가 아웃풋 밸런스 노브, 맨 오른쪽이 입력 셀렉터 노브입니다. 왼쪽에는 토글 스위치 4개가 달렸는데 왼쪽부터 테이프-소스 선택, 위상반전 선택, 모노-스테레오 선택, 뮤트 선택 스위치입니다. 프런트 패널 양쪽 4개의 나사구멍까지(DMA-50도 동일) 있어 그야말로 스튜디오 랙에 쌓아둘 만한 앰프인 것 같습니다. 높이는 6.35cm, 폭은 48.26cm(DMA-50도 동일)로 요즘 앰프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얇고 깁니다. 안길이는 31.75cm, 무게는 5.5kg. 외장 파워서플라이(DMS-12)는 높이 6.35cm, 폭 15.25cm, 안길이 26.65cm, 무게 3.25kg입니다. 놀라운 것은 주파수 응답특성인데, 고역대가 3MHz까지 올라가야 비로소 -3dB로 떨어집니다. 신호대잡음비 역시 105dB를 기록하고 있으며, 클래스A 방식으로 작동하는 출력단의 전류량은 140mA나 됩니다. 그만큼 파워앰프 장악력이 확실하다는 뜻이지요.

여기에 맞물린 파워앰프 DMA-50은 1대로 스테레오 구동시 8옴에 80W, 4옴에 120W 출력을 내주며, 모노모노로 브릿지 연결시 8옴에 160W, 4옴에 220W 출력입니다. 2대를 브릿지 연결하는 것도 쉽습니다. 앰프 후면 오른쪽에 있는 쬐그마한 스위치를 '브릿지'로 옮겨주기만 하면 됩니다. 이번 오디오피직 템포25와는 1대로 2채널 구동을 해봤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구동력 부족, 이런 것은 전혀 못느꼈습니다. '스펙트랄이 프리 명성에 비해 파워가 약하다. 특히 파워앰프는 꼭 스펙트랄 프리와 물려야 한다'는 소문도 글쎄, 싶었습니다. 템포25가 음압이 89dB나 되긴 하지만 임피던스가 4옴인데다 어쨌든 유닛이 4개나 돼 울리기 쉬운 스피커가 결코 아니거든요.

자, 이제, 비로소 음악을 들어봅니다. CDP는 티악 CD3000을 사용했습니다. 청음 CD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줄리아노 카르미뇰라 '비발디 사계'(1994. Divox)

②제니퍼 원스 'The Hunter'(1992. Private Music)

③피레스, 뒤메이, 지안왕 '브람스 피아노 3중주 1, 2번'(1996. DG)

④황보령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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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랄 DMA-50의 후면 방열판


먼저 '몸풀기'(?)로 웅산이 2007년 내놓은 정규 3집 'Yesterday'의 타이틀곡을 들어봤습니다. 듣자마자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다른 곳에서 음악을 튼 줄 알았습니다. 정말 저 조그만 유닛과 좁은 배플에서 이렇게 큰 사운드스테이징이 열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확 펼쳐진 무대의 높이와 폭이 장난이 아닙니다. 왜 템포와 비르고가 음장형 스피커라고 불리는지 저절로 알게 됩니다. 여기에 보컬의 음색은 깨끗하고 고급스럽고 촉촉하고 편안하고, 기타 소리는 생생합니다. 낯간지러울 정도로 미사여구 감탄사가 제 입에서 절로 터져나옵니다. 치찰음마저 감미롭습니다. 어느새 4번트랙 'Angel Eyes'까지 듣게 됐습니다. 스펙트랄 프리앰프 역시 놀랍습니다. 분해능이랄까 해상력이 좋습니다. 자체 게인이 높아서인지 파워앰프가 좀 약하더라도 뒤에서 밀어주는 성실함이 은근슬쩍 느껴집니다.

작정하고 카르미뇰라와 유쾌한 마르카 합주단(Sonatori De La Gioiosa Marca)이 협연한 비발디의 '사계'를 들어봅니다. 어디 이번에는, 이런 심보로요. 지금까지 백번 이상 들었을 봄 3개 악장을 이번 '템포25+DMA-50+DMC-12'로 들으며 적은 메모에 이렇게 써있습니다. '가볍다. 경쾌하다. 깨끗하다. 음 하나하나가 전혀 섞이지 않는다..' 마르카 합주단의 첼리스트가 연주한 그 무시무시한 저역도 7인치 우퍼에서 제법 잘 터져줍니다. 첼로 줄 끊어질까 겁이 날 정도입니다. DMC-12와 템포25의 스피드감은 그야말로 탁월합니다. 연주되는 음 사이사이의 여운도 좋고, 여린 음들은 더 여리고 야들야들하게 표현해줍니다. 확실히 하이엔드다운 소리입니다.

2악장. 갑자기 무대가 높이가 한층 높아진 느낌입니다. 조금은 식상한 표현이지만 스피커가 사라졌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음악이 흘러나오는지 혼란스러울 지경입니다. '낮춤의 미학, 드러내지 않음의 미학', 이런 것을 이 템포25에서 느꼈습니다. 3악장. 그렇습니다. 사운드가 살아있습니다. 여름 1악장. 다시 한번 더 느낍니다. 무대가 진짜 넓다. 이게 오디오피직 스타일이구나. 표현력이 좋은 스피커구나. 특히 바이올린과는 정말 궁합이 잘 맞는구나. 사운드의 이탈감이 대단합니다. 계속 메모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술술, 술술, 술술~~. (지금 템포25 칭찬만 해서 그렇지, 스펙트랄 DMC-12와 DMA-50의 숨은 미덕을 언급안할 수가 없습니다. 중간에 명성이 자자한 모 100W짜리 인티앰프로 바꿔 잠깐 들어봤는데 가슴이 짠 했습니다. 감동해서가 아니라 실망해서 짠 했습니다. 소리가 스피커에서 빠져나오다 맙니다. 오디오적 쾌감이 반 정도 줄어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제니퍼 원스의 1992년 앨범 'The Hunter'입니다. 첫 곡 'Rock You Gently'에서 저도 모르게 옅은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제니퍼 원스, 오늘 컨디션 좋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리듬감이 이날 따라 아주 좋습니다. 리듬섹션도 활기에 찼습니다. 예전 높이 2m짜리 어마무시한 스피커로 들었을 때의 '빅마우스' 느낌도 전혀 없습니다. 제니퍼 원스가 그냥 무대에 등장해 노래를 편하게 불러주는 그런 느낌입니다. (개인적인 취향과 판단이겠지만, 그리고 하베스 팬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여성보컬에 관한한 템포25는 제가 그토록 경애하마지않던 하베스 30.1보다 윗급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4옴짜리 템포25가 이렇게 편한게 놀 수 있는 것은 스펙트랄의 듬직한 구동력이 받쳐줬기 때문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오디오피직이 왜 자사 개발 유닛에 '홀로그래픽'을 쓰는지 'Somewhere, Somebody'를 듣다 무릎을 쳤습니다. 웅산, 사계, 그리고 제니퍼 원스에서 계속 느꼈던 오디오적 쾌감이 바로 '홀로그래픽'이었던 것입니다. 이날 템포25의 토인을 좀 더 공격적으로 잡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 트랙에서 들리는 사운드의 입체감이 그야말로 예술입니다. 피처링한 맥스 칼의 목소리도 이날 따라 유난히 돋보입니다. 또 하나. 소리가 단단한 게 아니라 단정합니다. 그렇다고 무른 소리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스피커 유닛 4개 진동판 모두가 금속제라서 그런지 펄프콘을 사용한 탄노이 스털링SE의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은 덜합니다.

'Way Down Deep'입니다. 웬만한 방바닥이라면 바르르 떨 정도로 초저역이 쿵쿵 떨어져 내리는 트랙입니다. 지금 DMC-12 볼륨이 10시반 방향인데 저역음이 장난 아닙니다. 아무리 총 4발의 우퍼라 하지만 그래도 7인치짜리 아닌가요. 이게 출력 80W에 두께 6.35cm짜리 얄팍한 앰프가 구동하는 소리인가요. 스펙트랄 파워앰프가 자사 프리를 만나니 힘이 펄펄 나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모델과는 달리 이 DMA-50이 좀 유별난 것일까요. 특히 음악신호가 멈추자마자 스피커 진동판을 꽉 틀어잡는 DMA-50의 제동력이 발군입니다. 덕분에 매 순간 나오는 소리가 깔끔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호랑이 발톱처럼 순간적으로 잘도 삐쳐나옵니다. 아무튼 대단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힘좋은 진공관 앰프에 물린 12, 15인치 JBL 같은 대형기처럼 바닥을 박박 긁어내는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역이 깊게 떨어지는데도 혼탁하지가 않습니다. 이 노래를 듣다 잠시 탄노이의 한 모델(12인치 동축 유닛 사용)로 바꿔봤는데 저역이 순식간에 퍼져버립니다. 템포25처럼 깔끔하지가 않습니다. 더군다나 갑자기 고역과 저역이 따로따로 노는 느낌까지 듭니다. 아, 다시 무릎을 쳤습니다. 스펙트랄 DMA-50과 오디오피직 템포25가 정말 대역 밸런스가 좋은 친구들이구나. 너무 자연스러워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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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라25(오른쪽)와 함께 한 템포25


'드디어' 브람스 피아노 3중주 곡입니다. 제1번 1악장이 '연주'되고('재생'의 느낌이 아닌) 얼마 안 있어 허기가 돌았습니다. 무대에 펼쳐지는 사운드에서 카스테라 향과 촉감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보드랍고 풍윤한 그 달콤한 카스테라의 맛. 첼로의 통울림은 그윽하고, 바이올린은 흐느끼듯 바르르 떨어댑니다. 그리고는 순간 확 넓어지는 무대와 확 조여드는 공기감. 그동안 자신의 존재를 숨겨왔던 DMC-12의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프리앰프의 해상도와 분해능이 뛰어날수록 최종 재생음이 날카로워지는 게 아니라 이렇게 보드러워지는 것이구나. 가상의 재생음 무대가 넓어지면서도 청음공간을 채운 공기의 밀도는 높아지는 이 역설의 쾌감 혹은 깨달음. 그리고 피아노가 무대 약간 왼쪽에서 쑤~욱 올라와 붙박이로 연주를 하는 듯한 이 환영!

마지막으로 국내 인디아티스트의 음반을 들어봤습니다. 올해 2월 나온 여성 싱어송라이터 황보령의 미니앨범(EP)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입니다. 제니퍼 원스나 다이아나 크롤, 노라 존스, 에바 케시디, 수전 왕, 레베카 피전 등의 세계적인 여성보컬, 그것도 오디오파일급으로 녹음된 음반들만 접했던 분들이라면, 아마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황보령의 음색은 까실까실하고, 녹음 역시 세계적 레코딩 수준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피라미들의 눈부신 비늘처럼, 싱싱하고 생생하며 때묻지않은 매력이 숨어있습니다. 1번트랙 '매일매일매일'. 황보령이 아예 스피커 밖으로 뛰쳐나왔구나 싶습니다. 기타는 약간 부풀어진 모습입니다. 하지만 뭉개짐 없이 줄을 튕기는 느낌이 참 좋습니다. 이 노래는 1개월 여 동안 여러 스피커와 앰프 조합으로 들어봤었는데, 황보령이 노래하기 직전 숨을 들이키는 미세한 떨림이 비로소 들립니다. 중성적이고 거친 황보령 보컬의 새로운 맛이 느껴집니다.

2번트랙 '마법의 유리병'에선 기타, 드럼, 첼로가 빚어내는 둥둥둥 저역 사운드가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아주 푹 떨어지는 저역은 아니지만 싸이키델릭한 느낌을 줄 정도는 됩니다. 무대가 가라앉지도 높아지지도 않습니다. 또한번 템포25와 DMA-50의 탁월한 밸런스감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5번트랙 '어디로'는 진선의 반도네온 소리가 듣기 좋은 곡인데, 이날 따라 오른쪽 창문에서 석양이 지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이때 들리는 황보령의 절규.."Where Shall I Go?" "Where To Go?" 그녀의 목소리가 더 칼칼해졌고, 퍼커션 사운드가 갑자기 도드라집니다. 그리고 다시 눈 앞에 펼쳐지는 황무지의 환영. 황보령의 이 음반, 꼭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매칭으로 몇 앨범을 더 들어봤습니다. 아트 페퍼의 'Art Pepper Meets The Rhythm Section' 1번트랙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는 왼쪽 색소폰과 오른쪽 리듬섹션(베이스, 피아노, 드럼)이 너무 분리돼 있어 재즈 듣는 흥겨움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마치 양쪽 방에서 따로따로 녹음한 것 같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가운데가 텅 빈 느낌이라 할까요. 어쩌면 이게 이 음반의 실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템포25의 솔직한 음장 재현으로 지금까지 가려졌던 이 1957년 음반의 맨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생상스의 교향곡 3번 '오르간'(샤를 뮌쉬 지휘, 보스톤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에서는 확 밀고나오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2악장의 오르간 소리가 바닥에 안개처럼 깔리더군요. 풍성한 현악 사운드 밑으로 초저역이 깔릴 때 돋는 이 소름. 과연, 하이엔드다운 조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청음협조=원형사운드(www.whsound.com)

[김관명의 오디오매칭]

①바쿤 컴팩트프리,파워+탄노이 스털링SE ②KEF LS50+바쿤 컴팩트프리,파워 ③심플리투+탄노이 스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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