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구의 '짱구일기'④- 아마에서의 첫 시련

[김재동의 레전드 드라마]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4.04.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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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가 ‘김재동의 레전드 드라마’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시대의 레전드들을 드라마로 읽는 연재물입니다. 전설로 남은 스포츠와 연예스타들의 삶속에 담긴 드라마틱한 석세스스토리를 드라마작법으로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기본적으로 인터뷰를 통해 레전드의 삶을 구축하는 다큐물이 되겠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드라마적 재미를 곁들여볼 예정입니다. 첫 회의 주인공은 지난 2000년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서 25인’에 선정된 ‘짱구’ 장정구입니다. 1983년 WBC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후 15차 방어에 성공하고 타이틀을 자진 반납했던 장정구의 삶을 시작으로 ‘김재동의 레전드 드라마’ 막을 올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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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체육관 몽타쥬

-꽉 닫힌 창밖으로 눈발이 날리고 있다.

정구 이영래 사범이 받아주는 미트치기를 하고 있다. “원투, 원투, 원투쓰리, 원투 쓰리” 스텝을 밟으며 구령을 외치는 이영래 사범의 표정에 기특함이 담겨있다.


-화면 바뀌면 활짝 열린 창문밖으로 가로수잎이 푸르다.

정구 땀복을 입은채 샌드백을 치고 있다.

-다시 화면 바뀌면 땀복을 입은채 줄넘기하는 정구. 탁탁탁탁 정식 줄넘기외에도 휘리릭휘리릭 이단넘기에, 한발씩 교대로 뛰기등 발재간이 현란하다. 카메라 그 현란한 발재간을 따라잡다 다시 올라오면 이젠 청소년티가 물씬한 장정구가 있다.

-체육관 전체에 ‘땡’하고 공이 울리면 정구 줄넘기를 멈추고 쉰다. 3분-1분 간격으로 휴식과 연습시간을 알리는 공이 울린다. 정구 숨을 고르고있는데

이영래(E) 짱구야! 니 쫌 와보래이.

정구 예 갑니데이.(하고 사무실쪽으로 향한다)

S#2. 사무실

자막: 1978년 봄

이영래사범 출전신청서를 유심히 보고있고 정구 들어온다.

정구 부르셨심꺼?

이영래 그래. 여 앉아라.

정구 예.(자리에 앉으면)

이영래 니 전국체전 함 나가볼래?

정구 체전예? 저야 좋심더.

이영래 그럴줄 알았다. 쫌있으마 체전 대표선발전이 열리는데 니는 고등부대표로 나갈끼다.

정구 알겠심더.

이영래 (피식 웃으며) 뭘 아노 자슥아. 고등부대표라카믄 고등학교를 댕겨야 되는기라.

정구 (머리 긁적이며) 아 그기 그런 겁니까? 그럼 지는 못나가겠네예.

이영래 끝까지 들어라 자슥아. 그래가 일단 니 적을 협성실고로 올릴라칸다.

정구 그래도 되는깁니꺼?

이영래 뭐, 그냥 해보는거지 뭐. 니라꼬 맨날 부산대회만 나갈수 있나? 부산서 맨날 우승 준우승 해봐야 뭐하겠노? 우물안 개구리밖에 안된다. 인자는 전국무대 함 뛰봐야지. 안글나?

정구 (웃으며) 그렇심더.

이영래 자슥. 좋단다. 체급이야 코크급(45kg) 맞추는건 일도 아닐끼고. 선발전 얼마 안남았으니께네. 바짝 신경쓰래이. 알긋나?

정구 알았심더.(기분좋은 미소가 흐른다)

S#3. 골목길/ 밤

정구 운동가방 어깨에 걸치고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올라가고 있다. 저만치 어둠속에 서너명의 실루엣이 보인다. 정구 개의치않고 스쳐지나간다.

불량배1 (길 막아서며) 어이, 꼬매이. 기분좋네.

정구 보면 또래의 불량학생이다. 하지만 못보던 얼굴.

정구 (피식) 와? 내 기분좋은데 뭐 문제있노?

불량배1 문제 있노? 와따 말 짧네. 니 쫌 맞아야되겠구마이.

정구 니들 이 동네 새로 온갑네. 내 짱구다. 아미동 짱구. 몬들어봤나?

불량배1 짜, 짱구?.. 그.. 꼰투한다는..

정구 그래. 그기 내다.

불량배1 어.. 어.. 어

정구 그럼 쪼매 비키줄래? 내 배가 고파 막 승질날라카거든.

불량배1 어.. 어(비키면)

정구 또 보재이(하고 ‘강물은 흘러갑니다’ 흥얼거리며 멀어져간다)

불량배2 짱구가 누군데?

불량배1 (한심하단 듯 보고는) 그냥 있다. 아미동 통!

불량배2 토옹? 저 쪼맨기?

불량배1 그래. 갑배고 뭐고 우리 두세해 선배까지도 쟈한텐 다 접어둔다카드라.

불량배2 안쎄 보이는데.

불량배1 운동한다꼬 얌전해졌다카대. 그전엔 뿔나불믄 말릴 사람이 없다카드라.

불량배2 딱 한방이믄 보낼 것 같은데..

S#4. 정구집 안방

고봉밥을 놓고 정구 우걱우걱 밥을 먹고 있으면 어머니와 형이 지켜본다.

어머니 (물대접 건네며) 아이고 야야. 좀 천천히 먹으래이. 밥 많이 있다.

정구 (물마시고 트림한번 하고는) 어무이요. 지가 이번엔 전국대회 나갑니더.

어머니 전국대회?

정구 야. 사범님이 전국체전 고등부에 나가라카대예.

정구형 전국체전이먼 니 텔레비전도 나오겄다.

정구 올라가믄 나오지예. 근데 그 전에 부산 선발전부터 통과해야됩니더.

정구형 부산에서야 니가 최고 아이가.. 4월에 그 대회 뭐야?

정구 부산신인선수권대회예.

정구형 그래. 거서도 니가 우승했고 고전에..

정구 부산시 최고선수권대회. 그때는 2등였지예.

정구형 그래. 당연히 부산대표 안되겠나?

정구 지도 기대합니다. (기분좋게 웃으며 밥을 우겨넣는다.)

어머니 야야. 다 좋은데. 매맞지 말그래이. 젊어서는 몰라도 그기 나이들마 다 골병된다 아이가.

정구 어무이요. 많이 안맞심더. 걱정마이소.

정구형 어무이가 야 경기하는거 못봐 그런데예. 야 안맞심더. 얼매나 뺀질뺀질 하는데예.

어머니 그래? 그럼 다행이고...

정구형 근데 니는 대회있다캄서 그래 먹어도 되나?

정구 지가 모스키토 아입니꺼 모스키토. 모기. 모기가 먹어봤자지예.

정구형 니 별명 짱구에서 모기로 바뀠나?

정구, 재밌어서 웃으며 밥을 퍼넣는다. 기분 따스한 저녁식사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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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다니지않는 아마추어 선수에게 경기는 많지않았다. 그럴때는 임시로 특정학교에 적을 올려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S# 5. 부산실내체육관

전국체전 부산대표 선발전이 열리고 있다. 링이 두개 만들어져있고 한쪽에선 일반부 경기가, 다른 쪽에선 고등부 경기가 열리고 있다.

고등부쪽 링엔 정구가 상대 선수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마지막 라운드가 끝나고 코너로 돌아온 장정구, 심히 만족한 표정이다. 이영래 사범도 글러브를 벗겨주며 만족한 표정.

이영래 됐다마. 볼 것도 없는기라. 못해도 3점은 이깄다.

레프리 손짓으로 양선수 모으고 짱구 링 중앙으로 뛰어나간다.

S# 6. 관중석

불량배 1,2,3 한켠에 서 있다. 정구의 맞상대 응원석이다.

저만치 링중앙에 헤드기어 벗은 장정구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는 불량배1.

안내 고등부 코크급 8강전 승자는 홍코너 협성실고 장정구!

하면 레프리 장정구 손을 번쩍 든다. 장정구, 상대선수와 그 쪽 코너에 인사하고 자기 코너로 와 링을 벗어난다.

불량배1 자신들 앞을 지나는 정구를 유심히 지켜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S# 7. 롤라장

70년대 음악 흘러나오는 중에 남녀 학생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뱅글뱅글 돌고 있다. 한쪽에 갑배가 건들거리는 무리들중에 제법 포스를 풍기고 앉아있다. 그때 롤라장에 들어서는 불량배 1,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다가 갑배를 발견하고는 다가온다.

불량배1 갑배야!

갑배 (오만하게 돌아보고) 어쩐 일이고? 니도 여 다니나?

불량배1 아이 그냥.. 오래 안있을끼다.

갑배 그래. 너그학교 정태행님 요 위에 중탁에 와있더라마

불량배1 (불안한 듯) 정태 행님?

갑배 그래.

불량배1 나. 나 가께. 정태형한테 나 봤단 말 하지 마래이.

갑배 명령이가?

불량배1 아이다. 명령은 무슨. 그냥 동네 친구한테 부탁하는기다.

갑배 그래. 부탁... 알았다. 가본나.

불량배1 부탁한데이 (하고 돌아서다) 아 참, 갑배야.

갑배 또 뭐?

불량배1 니 친구 짱구 안있나?

갑배 그래. 짱구가 뭐?

불량배1 협성실고 다닌다캔나?

갑배 뭔 소리고? 짱구는 중학교도 안다닜다.

불량배1 아 그래!

갑배 짱구는 와? 와그라는데?

불량배1 아이다. 내 잘못 들었는갑다. 내 간다. 일보래이..(하고 서둘러 간다)

갑배도 더 이상 관심 끊고 일당들과 히히덕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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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에선 항상 이기려했고 이기는 법을 배워나갔다. 내게 모든 경기는 세계챔피언을 향한 한걸음 한걸음 이었다.


S# 8. 부산 실내 체육관

링에선 다시 짱구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이번 상대는 키도 크고 잽도 날카로운게 경기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공이 울리고 코너로 돌아가는 정구. 이영래 사범 의자에 앉히고 코치한다.

이영래 바라. 오소독스 스타일로는 절마 저 몬이긴다. 니 잘하는거 안있나. 스위치. 스위치 뽁싱으로 헷갈리게 해야되는기야. 알긋나?

정구 알겠심더.

이영래 이번엔 반대로 도는기다. 어이? 명심하그래이. 반대로 알긋제?

정구 알겠심더.

공 울리고

이영래 그래 일마만 이기뿔믄 니가 부산대표다. 가라.

정구 다시 링으로 나서고 이번엔 반대로 돌며 사우스포 스타일로 경기를 펼친다. 당황하는 상대. 경기는 정구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

S#9. 관중석 일각

전날 정구에게 패한 상대학교 선수와 코치가 경기를 지켜보는 쪽으로 불량배 1 다가간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은 불량배1, 코치에게 한참 무슨 이야긴가를 한다. 링위의 정구에게 시선 한번 준 코치. 빠른 걸음으로 본부석쪽으로 향한다.

S# 10. 링

공울리면 정구 코너로 돌아오고 이사범 물을 건넨다. 둘 다 만족한 모습.

정구 이겼심꺼?

이영래 됐다. 볼 것도 엄따. 니가 부산 대표다. 인자는 전국무대 가서 한번 휘저을 일만 남았다.

정구 그래예?

이영래 하모. 못해도 니가 3점은 앞선기라.

이때 안내방송 나온다.

안내 고등부 코크급 결승 판정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잠시 지연되겠습니다.

정구와 이사범 어리둥절한다.

이영래 뭐꼬? 뭐라카는기가? (하는데)

관계자(E) 이사범!

두사람보면 대회관계자가 엄숙한 표정으로 서있다.

(시간경과)

정구 헤드기어 벗고 글러브벗고 밴디지만한채로 링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본부석쪽을 본다.

본부석 쪽에선 관계자가 서류다발을 흔들며 이영래를 다그치고 있고 이 사범은 고개만 숙이고 있다. 정구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눈치를 챈다. 이내 관계자 자리에 앉으며 링을 향해 눈짓하면 레프리가 정구와 상대선수를 링중앙으로 부른다.

안내 고등부 코크급 판정을 내리겠습니다.

링중앙에 고개를 떨구고 선 정구.

안내 판정은...

소리도 들리지않는다. 여전히 정구는 고개를 떨군채 링 중앙에 하염없이 서있다.

이미 상대선수도, 레프리도 떠난 링 한가운데 고개 숙인 정구만 남아있다.

그의 발앞 캔버스에 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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