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구의 '짱구일기'⑥- 드디어 프로의 길로

[김재동의 레전드 드라마]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4.04.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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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가 ‘김재동의 레전드 드라마’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시대의 레전드들을 드라마로 읽는 연재물입니다. 전설로 남은 스포츠와 연예스타들의 삶속에 담긴 드라마틱한 석세스스토리를 드라마작법으로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기본적으로 인터뷰를 통해 레전드의 삶을 구축하는 다큐물이 되겠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드라마적 재미를 곁들여볼 예정입니다. 첫 회의 주인공은 지난 2000년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서 25인’에 선정된 ‘짱구’ 장정구입니다. 1983년 WBC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후 15차 방어에 성공하고 타이틀을 자진 반납했던 장정구의 삶을 시작으로 ‘김재동의 레전드 드라마’ 막을 올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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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체육관

장정구가 거울을 보며 섀도복싱을 한창하고 있으면 저만치 떨어져 역시 섀도복싱을 하던 강순중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여전히 거울속 자신의 눈만을 매섭게 노려보며 훅을 날리는 정구에게 강순중이 말을 걸어온다.

강순중 (건성으로 섀도복싱하며)들었나?


정구 (그제야 힐끔 보며) 뭘?

강순중 하얀 손 내려왔단 말 말이다.

정구 (여전히 거울속 자신의 눈을 노려보며) 뭐꼬? 말 똑바로 해라.

강순중 챔피언말이다. 김성준.

정구 (그제야 관심가 주먹에 열의가 빠진다) 성준이 행님 말이가?

강순중 차슥.. 누가 니 행님이고? 니 김성준이 아나?

정구 같이 꼰투하고 나이많고 하믄 행님이지 머 별기 있나? 근데 와?

S#2. 다방

이영래 사범 맞은편에 이종언관장과 김성준이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이종언 문제는 이 오쿠마 쇼지가 짝빼기 아입니꺼. 근데 이 부산바닥서 짝빼기 찾기가 해운대 모래밭에서 바늘찾는 폭이라예.

이영래 (찻잔 내려놓으며) 짝빼기는 아이고 우리 아 중에 스위치가 하나 있는데..

이종언 (급관심) 스위치요? 체급은요?

이영래 라이트 플라이...

이종언 (말 끊으며) 딱 맞네. 애는 어떻심꺼? 잘 합니꺼?

이영래 프로는 아이고..아마에선 부산바닥서 둘째라믄 서운한 정도는 됩니더.

이종언 그래예? (김성준 바라보며) 아주 맞춤이고만

이영래 성준선수는? 우예.. 괜찮겠나?

김성준 (수줍은 미소 띄며) 예. 전 좋습니다.

이영래 마 우리 애도 어차피 프로 돌 거고 지가 언제 챔피언이랑 싸와보노. 그래합시다.

이종언 고맙심더.

이영래와 이종언이 악수를 나누고 김성준 얌전하게 차를 마시며 그 모습 지켜본다.

강순중(E) 서울역은 이 김봉호파가 싹 다 접수했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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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링은 긴장감도 관중들의 호응도도 아마에 비해 크게 높았다.


S#3 체육관밖/밤

운동을 끝낸 장정구와 강순중이 밖을 나서고 있다.

강순중 거서 우리의 하얀손 성준이 행님이 빽따기, 니 아나? 빽따기? 그 기술이 기가막힜다카데. 이 행님이 우쨌거나 권투가 하고싶어 소매치기 하민서도 권투를 계속 안했나. 그래가 한국챔피언이 되긴 됐는데 크~ 이 양심이, 양심이 성준 행님을 드글드글 볶는 기라.

장정구 (뒷통수 치며) 소설을 쓰라 자슥아.

강순중 소설 아이다. 이기 다 신문에 난기다.

장정구 신문에?

강순중 하모. 신문에 난긴데 사실이지 지어낸 거겠나?

장정구 계속해봐라

강순중 내 어데까지 했노? 아 자슥이 말은 끊고 지랄이고..

장정구 양심이 드글드글 볶은데까지 했다.

강순중 그래. 그래가 이 행님이 지발로. 어이? 지발로 검사를 찾아간기라.

장정구 잡힌기 아이고? 잡힜다카드만

강순중 말 아즉 안끝났다. 이 행님이 검사앞에 딱 섰더만. 검사가 싹다 알고있는기라.

장정구 그래서?

강순중 검사 왈 김봉호랑, 또 뭐꼬. 행동대장. 그 두사람을 설득해가 자수시키라. 자수시키먼 고마 싹 다 훈방조치 해주꾸마. 이래 된기라.

장정구 에이, 그기 어데 쉽겠나?

강순중 안쉽지. 안쉽지. 그래가 이 행님이 그카고 있는데 이 행님집으로 도망다니던 행동대장. 최 뭐라카든데. 최명수? 뭐 하여튼 그이가 피해온기라.

장정구 그래 자수는 시킸나?

강순중 자수시킸으마 와 빵에 갔겠노? 자수 못시키고 같이 있다가 같이 잡힌기지.

장정구 그 다음은? 담엔 어찌됐는데?

강순중 두달 빵에 살다 집행유예로 안나왔나. 그카고 그때 잡아넣은 검사가 후원회를 만들어가 포장마차도 사주고 그캤다 카더라.

장정구 와 검사 멋지네.

강순중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할수 없다 안카나. 그래가 소매치기할 때 성준행님 손은 깜장 손, 권투하는 성준행님 손은 하얀 손, 이래 부르는거 아이가.

장정구 성준행님도 참말로 맘고생 몸고생 많았고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멀어져가는 두사람.

S#4. 아미동 골목/밤

정구가 가방을 둘러맨채 골목을 오른다. 드문드문한 가로등만이 빛을 밝힐뿐 어둠이 짙은 골목이다. 익숙한 걸음으로 어둠을 헤쳐나가던 정구 문득 걸음을 멈춘다. 정구시선 따라가보면 저만치 가로등에 기대 주저앉은 사람모습이 보인다.

정구 (혼잣소리) 저 뭐꼬?.. 엥간히 퍼제낀나부네

하고 다가가는데 기대앉은 점퍼차림의 사내가 눈에 많이 익다. 게다가 술에 취한게 아닌 몸이 상한 듯 보인다.

정구 어어? 저, 저노마, 갑배? (하고는 쏜살같이 달려간다)

달려가보면 갑배가 맞다. 갑배는 누군가에게 많이 맞은 모양새다. 머리에서도 피가 나고 얼굴도 옷도 여기저기 찢겨있다.

정구 (몸흔들며) 갑배야! 갑배야! 일마야 정신 좀 채리봐라. 갑배야.

갑배 (힘들게 눈을 뜨며) 짱구네.

정구 그래 내다. 이 먼일이고? 누가 그랬나? 어이?

갑배 (피식 웃음 흘리고) 와? 니가 패주게?

정구 차라. 자슥아. (부축하며) 인나봐라. 병원부터 가자.

갑배 끄응.(정구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며) 가긴 가는데 병원은 아이다.

정구 와? 이래 다쳐놓고.

갑배 짭새 오고 마이 복잡타.

정구 그럼 어데? 집?

갑배 이꼴 보믄 우리 할마씨 넘어간다

정구 그럼 어데?

갑배 종점에 여인숙 안있나. 고까지만 데리다 도.

커다란 덩치의 갑배가 작은 정구에 의지해 위태위태 골목을 걸어간다. 가로등불빛을 벗어나며 발자국소리만 남긴채 시나브로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S#5. 체육관

정구 샌드백을 치고 있다. 하지만 어쩐지 맥이 풀린 기색. 그래도 몇 번 더 치다 그냥 맨 바닥에 주저앉는다.

S#6. 여인숙방/밤 (회상)

정구가 약국에서 사온 요오드팅크를 갑배의 깨지고 째진 상처 부위에 바르고 있다.

갑배 입에서 간간히 신음소리 나오고 정구는 그런 갑배의 눈치를 조심히 살피며 말문을 뗀다.

정구 말해봐라. 뭔일인지.

갑배 내 써클서 나올라고 안했나? 그랬더니 고마 뒤지게 패뿌는기라.

정구 와 패는데? 나간다믄 곱게 보내주고 말지.

갑배 원래 다 이래 쳐맞는기라. 그런 동네서 발빼기가 어데 쉬운줄 아노?

정구 그란데 와 갑자기 서클서 나올라 그랬는데? 니 좋다고 한참 몰려다니드마

갑배 자꼬 사람 패라 카고 돈 빼트러 오라카고 못된 짓만 하라 안하나?

정구 서클이 그런기가? 완전 깡패네.

갑배 내는 김두한, 시라소니, 협객, 의리. 머 이래 생각하고 했던긴데. 하이고마 참.

정구 그라모 인자는 깨깟이 끝난기가?

갑배 아즉 아이다. 당분간은 선배들 눈에 띄마 안되는 기라.

정구 부산바닥서 숨쉬믄서 우예 눈에 안띄겠노? 당장 학교도 댕기야 될끼고

갑배 내 서울로 튈라꼬.

정구 학교는? 또 니네 어매는 우야고?

갑배 어무이도 이해하실끼다. 이래 핵교랍시고 댕기봤자 내나 깡패밖에 더 되겠나? 서울 가 공장이래도 취직해 돈이나 벌란다.

정구 그게 그래 쉽겠나?

갑배 서울아이가. 서울. 먼 수가 있을끼라...그라고 니는 꼰투 참말로 잘했다. 니같은 주먹에 니같은 성깔에..운동안했으마 니가 얌전할라캐도 사람들이 가만 안놔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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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에서 여러차례의 아쉬움을 겪고 오른 프로의 링은 기대만큼이나 달콤했다.


S#7. 체육관

착잡한 심정에 한숨을 내쉬고 일어서는 정구의 눈에 체육관을 들어서는 이언종관장과 김성준의 모습이 보인다. 김성준은 트레이닝 가방까지 어깨에 매고왔다. 체육관을 스윽 둘러보는 김성준 눈에 정구가 든다. 정구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김성준은 그저 설핏 미소만으로 알은 체를 한후 사무실로 들어간다.

정구, 글러브를 벗고 밴디지까지 풀려는데 사무실 문이 열리며 이사범이 나선다.

이영래 짱구야!

정구 예.

이영래 들어온나(하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정구 고개를 갸웃하며 사무실로 향한다.

S#8. 사무실

정구 들어가보면 이사범 맞은편에 이언종과 김성준 앉아있다. 모두의 시선이 들어서는 정구를 향한다.

이영래 얍니더. 스위치에 발빠르고 눈빠르고 쓸만할 낍니더. (정구보며) 인사드리라.

장정구 (꾸벅 인사하고) 안녕하십니꺼. 장정구라캅니더.

이언종 어어 그래.. (이영래 보며) 우째 눈에 마이 익는데예?

이영래 이관장님도 몇 번 봤을기라예. 지 체급선 그래도 방구깨나 뀝니더.

이언종 눈 좋네. 눈이 반짝반짝하는기 깡다구 좀 있겠고마

김성준은 말없이 그런 정구를 살핀다. 정구는 엉거주춤 선채 난감한 기색이다.

이영래 니 여기 김성준 참피온 알제?

장정구 예.

이영래 니가 당분간 참피온 스파링파트너 좀 해야겠다.

장정구 지가예? 알겠심더.

김성준 일어나서 장정구에게 악수청한다.

김성준 잘 부탁해 아우님

장정구 (두손으로 맞잡으며) 열심히 하겠심더

두사람 눈이 마주치면 김성준 사람좋은 미소를 짓고 정구도 이내 웃음짓는다.

S#9. 체육관 몽타쥬

-헤드기어까지 쓰고 12온스 글러브를 낀 김성준과 장정구가 맞붙고 있다. 사우스포역을 맡은 장정구는 왼쪽으로만 돌고 링사이드 각각의 코너에 이언종과 이영래가 세컨을 맡아 지켜보고 있다. 박태훈 강순중 등 선수도 여러명 눈을 빛내며 보고있고. 김성준의 펀치가 장정구를 제대로 몰아세우지를 못한다. 정구 코너로 몰리면 잽싸게 클린치하며 빠져나가는 등 챔피언을 상대로 전혀 꿀리지 않는 모습.

-코너에서의 두사람 각각 액션을 곁들인 이언종과 이영래의 코치를 받고 있다.

-다시 링에서 맞서는 두사람. 둘이 양보없는 접전을 펼치는 중에 링사이드 한켠에 양복을 빼입은 사내가 언제부턴가 자리를 지키고 장정구를 유심히 보고 있다. 심준섭씨다. 장정구의 선전에 얼핏얼핏 미소도 지으며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S#10. 체육관 밖 공중전화

심준섭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심준섭 어, 어, 그래.. 성준이 잘하고 있어. 마침 스파링파트너를 잘 구했구만... 어.. 어.. 이 스파링파트너란 놈이 아주 물건야. 인제 열아홉이라는데 성준이가 절절 맬 정도라니까... 그래 눈 좋고 발빠르고 아주 영리해. 지금은 사우스포로만 하고있는데 원 래는 스위치래.. 그렇지 그렇지... 한번 눈여겨보라구.. 그래.. 그러자구

전화를 끊는 심준섭. 고개를 들어 체육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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