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서 쓴 편지] 가만히 있지 않는 칸의 ★들

[제67회 칸국제영화제]

칸(프랑스)=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05.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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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프랑스)=뉴스1/AFP


칸의 하늘은 청명합니다. 하늘과 바다가 같은 코발트 빛깔입니다. 요 몇 년간 비가 내려 우중충했던 날씨와는 딴 판입니다. 이맘때면 전국적으로 파업을 하는 프랑스 사정도 비슷합니다.

영화제 개막 하루 전인 13일에는 택시가, 14일에는 버스가, 15일에는 공항 관제탑이 파업을 하더군요. 덕택에 칸에 가는 길이 녹록치는 않았습니다.


아직 영화제 초반이라 화제가 되는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재밌는 건 경쟁 부문에 오른 두 영화에 대한 프랑스와 영국의 반응입니다. 영국 마이크 리 감독의 '미스터 터너'와 프랑스 압데라만 시사코 감독의 '팀북투'에 대한 반응입니다.

영국 영화전문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미스터 터너'에 평점 3.6점을, '팀북투'는 2.6점을 줬습니다. 반면 프랑스 영화전문지 르 필름프랑세즈는 '미스터 터너'에는 별 4개 격인 황금종려를 하나만 주고, '팀북투'에는 4개를 줬더군요. 영국과 프랑스의 은근한 자존심 싸움이 느껴졌습니다.

영화제 초반 화제의 인물은 단연 니콜 키드먼이었습니다. 제67회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가 선정됐는데요. 니콜 키드먼이 모나코의 왕비였던 그레이스 캘리 역할을 맡았죠. 개막작 시사회에서 니콜 키드먼이 램버트 윌슨과 춤을 추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니콜 키드먼과 단독으로 인터뷰하는 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2500유로(약 380만원)만 내면 잡아준다고 하더군요. 허허.


할리우드 스타인지라 니콜 키드먼이 눈길을 끌었지만 정말 관심이 쏠렸던 건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인 제인 캠피언이었습니다.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칸은 성차별적"이라고 일갈했습니다. 67회 동안 황금종려상을 받은 여자 감독이 단 한 명밖에 없다면서요. 그 단 한명은 제인 캠피언 자신입니다. '피아노'로 받았죠.

영화제 가장 중요한 섹션에 가장 중요한 심사위원장이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영화제를 향해 일침을 놓을 수 있는 것, 멋졌습니다.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에는 전도연이 참여합니다. 한국배우 중 최초죠.

올해 칸영화제에는 한국영화는 경쟁부문에 초청받지 못했습니다.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가 주목할만한 시선에,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가 감독 주간에, 창 감독의 '표적'이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됐죠. '도희야'에는 배두나 김새론 송새벽이, '끝까지 간다'는 이선균 조진웅이, '표적'은 류승룡 유준상 김성령 등이 출연했습니다.

사실 올해 칸에 초청받은 배우들 중 일부는 칸을 찾지 않습니다. 배우로서 영광스런 자리 일 텐데도 그렇습니다. 다른 일정이 있는 배우들도 있지만 일부는 세월호 사태 때문입니다. 아직 슬픔이 가득한데 한쪽에선 레드카펫에 올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게 죄스럽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영화제에 참석한 다른 배우들에 누가 될까 말을 아끼더군요.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걸로 슬픔에 동참해야만 할까란 생각도 듭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올해 칸 경쟁부문에는 터키 누리 빌제 세일란 감독의 '윈터 슬립'이 초청됐습니다. '우작'으로 2002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감독이죠. 누리 빌제 세일란 감독은 16일 경쟁부문 공식 포토콜에서 '윈터 슬립' 출연배우들과 'SOMA'라고 써 있는 종이를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터키에서 일어난 최악의 탄광 사고인 소마탄광 사고를 뜻하는 것이죠. 300여명이 죽고, 100여명이 아직도 갱도에 갇혀있다는 소마 탄광 사고는 야당이 안전 진단을 요구했는데도 정부와 여당이 정치공세라며 거절했다가 벌어진 인재였습니다. 현재 터키에선 정부의 책임을 묻는 시위가 한창입니다. 누리 빌제 세일란 감독은 세계 취재진의 시선이 쏠리는 칸영화제에서 소마 탄광 사고를 기억해달라는 시위를 한 것입니다. 가만히 있지 않은 것이죠.

19일 칸에서 '도희야' 공식 시사회가 열립니다. '도희야'는 어느 외딴 시골에 의붓아버지 폭력에 시달리는 한 소녀가 개인 성향 때문에 그 마을로 전출온 파출소 소장을 의지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입니다.

'도희야'가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자식을 죽도록 때리는 아버지의 폭력,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폭력,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폭력에 그만큼 많이 노출돼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 마지막 파출소장인 배두나와 아버지에게 맞고 사는 김새론의 장면에서 그만 눈물이 흘렀습니다.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감동적이지도 않았죠. 그래도 왼쪽 눈에선 눈물이 흘렀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건 영화 속 선택처럼 비겁한 어른이 되지 않겠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자는 다짐을 서로가 합니다. 가만히 있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서로가 합니다. 올해 칸에서 가만히 있지 않은 사람들을 봤습니다. 굳이 정치적인 슬로건을 들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만히 있지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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